그냥의 선택
문주희 저 | 유유
부제는 '손으로 마음을 전하는 일에 관하여'입니다. 편지 중에서도 손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혹시 '글월'이라는 공간을 아십니까? '글월'이 편지의 순우리말이라고 해요. 그리고 편지를 높여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글월'이라는 공간은 연희동과 성수동에 있는데요. 이곳이 '편지 가게'예요. 편지와 관련된 많은 것들, 편지지 편지봉투 우표 같은 것들도 판매를 하고요. 편지와 관련된 책들도 만날 수 있고, 편지가 교통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신개념 펜팔 서비스가 있는데요. 글월이라는 공간에 가서 수신인 불특정의 편지를 써서 펜팔 공간에 두고, 편지를 써놓고 간 다른 사람의 것을 하나 가지고 옵니다. 일대일 교환이에요. 편지를 가지고 가지만 답장의 의무는 없고, 답장을 하고 싶다면 글월을 통해서 편지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독특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 공간이에요. 그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한다고 해요. 출판사와 연계해서 편지 또는 편지지를 활용한 홍보 활동도 하고 있고요. 강연회도 열고요. 편지와 관련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저자인 문주희 님은 예전에는 잡지 에디터로 일하셨어요. 지금은 글월의 디렉터로 일을 하고 계시고요. 이 공간은 2019년에 처음 문을 열었어요. 저자가 에디터로 일을 하다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뭘까' 생각하던 중에 '내가 했던 인터뷰라는 일을 편지글이라는 형식에 담아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원래 그 목적으로 이 공간을 열었고, 공간 콘셉트에 맞춰서 편지지를 비치해놨는데, 사람들 사이에 편지 가게라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점점 지금 모습의 공간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글월의 디렉터로서 문주희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고요. 이 공간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편지를 가까이 하고 편지와 관련된 것들을 접하면서 생겨난 애정과 새로 알게 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손편지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 중에 가장 제 마음을 건드렸던 구절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편지는 수신인 혼자서만 읽는 호사스러운 문학이다." 대학교수이자 영인문학관장인 강인숙 작가의 말처럼 편지는 오롯이 한 사람만을 위해 집약된 사연과 정성, 사랑과 애씀의 모든 마음이 녹아있는 글입니다. _146~147쪽
손으로 편지를 써 내려간다는 것이 얼마나 정성이에요. 한 자 한 자 꾹꾹 힘주어서 눌러가면서, 그리고 오직 한 사람만을 오롯이 생각하면서 쓴다는 건 정말 엄청난 마음이죠. 그래서 우리는 편지를 받으면 너무 기쁘고, 내가 마음을 많이 내어준 사람에게는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도 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실제로 편지를 쓰는 데 필요한 깨알 정보들이 정말 많이 있어요. 우표와 편지 봉투에 대한 흥미롭고 실용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있고요. 우리에게 알려진 예술가들은 편지를 어떻게 썼을지 살펴보는 꼭지들도 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를 해드리면, 김상옥 시인은 딸에게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부산서 너를 만날 적에 네 얼굴이 해쓱해서 걱정이다. 집에 와서 그 말을 했더니 엄마가 앉으면 네 말뿐이다.' 알베르 카뮈는 장 그르니에게 보내는 편지의 끝인사로 이렇게 썼다고 해요. '선생님을 향한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을 믿어주십시오.'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도 내밀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게 또 편지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책의 초반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외국의 한 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편지 쓰기 과제를 내줬는데, 아주 많은 수의 학생이 편지를 직접 쓰거나 받아본 경험이 없다고 대답을 했대요. 어떤 세대에게는 편지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 문화일 수 있다는 거죠. 그 이야기가 책의 마지막에도 다시 한 번 나오는데요. 이 책은 편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나, 편지를 쓰고 싶은데 나는 항상 뻔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편지에 대한 경험이 없는데 한번 시작해 볼까라고 생각하는 분들 모두가 읽으면 좋을 만한 책입니다.
단호박의 선택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 저 / 강영희 역 /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네트워크 감수 | 사계절
'사진과 이야기로 보는 타이완 동성 결혼 법제화의 여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지은이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은 2016년에 만들어진 단체인데요. 타이완에서 결혼 평등권 법안을 추진하기 위해서 성소수자권리운동 단체라든지 여성 운동 단체가 모여서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연대체입니다. 이 책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타이완에서 어떻게 동성 결혼이 법제화가 되었는가, (어떻게) 법에 동성 결혼이 적혀 있는가, 거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이야기인데요. 맨 앞을 보시면 류민희 변호사의 해제가 붙어 있어요. '제목만 보면 타이완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된 게 마치 3년 안에 이루어진 것 같지만, 사실 타이완에서 수십 년간의 투쟁과 변화와 그런 운동이 있었기에 이 행동이 가능했다'라고 적고 있고요.
2016년에 타이완에서 비안성 교수의 자살 사건이 발생을 하게 됩니다. 이 분은 프랑스 국적이었고 타이페이에 거주를 하고 있었는데, 동성 파트너랑 35년 정도 함께 살고 있었대요. 근데 이 동성 파트너가 암에 걸리면서 어떤 치료를 결정할 권리가 비안성한테 있지 않고 가족한테 있고, 가족은 비안성의 요청을 거부한 채 치료를 결정하게 된 거죠. 그리고 비안성의 파트너가 사망하고 난 뒤에도 파트너의 남은 재산에 대한 권리라든가 그런 것들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서 아마 그것 때문에 비안성이 자살한 것이 아니겠나 추정이 되고요. 그 사건으로 인해서 계속 준비하고 있었던 민법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 거죠. 동성끼리의 반려자 관계라도 법적으로 보호할 권리가 있어야 된다는 개정안을 발의하게 되는데요. 결국에는 법제화되지 않았어요.
크게 전환점이 됐던 건 2017년이었는데요. 타이완 사법원에 동성혼 관련해서 헌법을 해석해달라는 요청 사항이 많이 들어와 있었던 거예요. 그걸 한꺼번에 해석을 해놨던 거죠. '이성만이 결혼할 수 있는 건 헌법에 위배된다'라고 결정이 났는데, 그 결정문 중에 하나는 '2년 안에 동성끼리 결혼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라, 2년이 지나면 동성 파트너끼리 결혼을 수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018년에 타이완의 보수 세력들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 국민 투표에 붙이자고 밀어붙였어요. '위헌인 건 알겠는데 실제적으로 법안을 어떤 식으로 만들지 국민 투표로 정하자'라고 해서 국민 투표안을 만들었는데,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등 시민적으로서 이 사람들의 결합을 보장하는 형태의 법안을 발의했던 거죠. 성소수자 인권에 반대하는 국민 투표가 총 3개 안이 상정이 됩니다. 그래서 성소수자 운동 단체나 페미니즘 관련 단체에서도 '기왕 국민 투표가 발의될 거라면 우리 안도 추가하자'해서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법안 두 개를 추가로 내놔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타이완에서 거대한 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결론은 성소수자 인권을 탄압하는 3개 안이 통과됩니다.
2019년이 되고 '국민 투표가 어떻게 나왔든 헌법을 위반하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어찌 됐든 (동성끼리도) 결혼을 해야 된다'라는 기조로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돼요. 실제로 법안이 발의되고 법령으로 시행이 됩니다. 그 법령의 이름은 '사법원 석자 제748호 해석 시행법'입니다. 이 법률이 정해짐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해결이 됐다거나 아니면 이 법률 전에는 모든 권리가 무시당했느냐, 그런 건 전혀 아니었고요. 입법 전에도 지방 자치 단체에서 각자 지방마다 파트너 등록하는 제도를 다 만들어 놨다고 합니다.
이 책의 의의는 류민희 변호사님이 적어준 마지막 문장이 아닐까 하는데요. "『비 온 뒤 맑음』이 전하는 교훈은 '왜 타이완인가' 보다는 '타이완은 되는데 왜 한국은 안 되는가'가 아닐까?"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타이완 동성 결혼 법제화의 여정을 다 글로 기록한 책은 아니고요. 사진이나 그래프나 이제까지 만들어왔던 포스터나 무지개 평등권 빅플랫폼이 해왔던 상황을 기록한 사진집에 가까울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해왔는가에 대해서 사진이 걸려 있고요. 인포그래픽으로 설명한 페이지도 있습니다.
한자(황정은)의 선택
희정 글 / 정택용 사진 / 반올림 기획 | 오월의봄
희정 작가님이 지난해 12월에 <야심한책>에 나오셨죠. 그때 다음 작업으로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를 다룰 계획이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희정 작가님이 10년 전에 반도체 직업병 문제로 삼성 기흥캠퍼스와 온양캠퍼스에서 일했거나 일을 한 노동자들을 만나서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2011년에 아카이브에서 출간된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었는데요. 당시에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화학 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되어서 몸이 아팠던 반도체 노동자들을 이번에 다시 만나야 했다고 합니다. 그분의 자녀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이 문제는 1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발생한 문제는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어 왔는데 당시에는 농담으로 가볍게 지나가거나 생리 불순, 난임, 유산, 태아 기형 등등 한국 사회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이거나 또는 개인적인 불행으로 간주되는 일이라서 당사자들이 굳이 말하지 않은 문제들이고, 그분들을 만난 활동가나 인터뷰와도 노동자의 말에 집중하느라고 놓친 문제들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가볍게 지나간 이야기들이 사실은 생식 독성이라는 직업병이었고 그 병이 부모의 몸을 거쳐서 그들의 자녀를 아픈 몸으로 살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책에 생식 독성 물질이 표로 소개가 되어 있는데, 산업보건부에서 2019년에 발표한 내용입니다. "생식 독성 물질이란 생식 기능, 생식 능력 또는 태아의 발생 발육에 유해한 영향을 주는 물질을 의미합니다"라는 설명이 있고 물질의 종류들이 대단히 많이 나열돼 있습니다.
이 책은 곧 여성 노동을 다룬 책이기도 합니다. 주로 삼성 기흥 캠퍼스와 온양 캠퍼스에서 일한 반도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반도체 공장을 캠퍼스라고 굳이 이름을 붙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는데요. 근면하고 순한 젊은 여성들이 거니는 캠퍼스 같은 이미지가 삼성이 만들고 싶은 반도체 산업의 이미지인 거죠.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를 다룬 이 책이 여성 노동 이야기가 되는 이유가, 기업이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말단 생산직, 즉 반도체 오퍼레이터 자리에 지방 출신에 지방에 사는 최종 학력이 고졸인 젊은 여성을 의도적으로 고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일자리가 없는 지방에서 고졸 학력인 딸이 대기업인 삼성에 취업하면 본인이나 가족들에게는 크게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인 거예요. 게다가 딸의 입장에서는 가족과 일 자체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느끼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러한 사정을 기업이 매우 잘 아는 거죠. 좋은 딸, 치밀하고 섬세하고 청순하고 근면한 ○○양, 이런 내용이 언론과 기업이 만들어낸 반도체 말단 생산직 노동자의 모습인데요.
정부는 반도체 산업이 국가를 살리는 산업이라고 대통령까지 방문해서 공을 칭찬하면서도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기업과 가족 그리고 정부까지 협업을 해서 어리고 젊은 여성을 안전하지 않은 말단 생산직에 몰아넣고 군대 같은 조직 문화로 통제만 할 뿐이고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를 빼앗는 이 시스템은 누가 만들었을까. 희정 작가는 우리가 사는 공동체가 이 여성들을 특히나 자원이 없는 이 여성들을 오퍼레이터로 태어나게 한 것은 아닐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책 속에 "이 사회가 오퍼레이터 자리에 들어갈 특정 정체성을 정해두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반도체 노동자 말고도, 공장 설비에 칠하는 저렴한 페인트를 다루는 여성 도장공의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의료원의 여성 간호사들 이야기도 실려 있고요. 제주의료원의 사례 같은 경우에는 인력이 충분히 보충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가 과다하게 부과되면서, 그 상황에서 노인들이 복용할 알약을 빻는 작업을 간호사들이 한 거예요. 원래 제약실에서 가루를 바깥으로 그걸 빨아내는 팬이 있어야 되는데, 이 팬이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제주의료원은 열다섯 명이 임신을 하면 그 중에 열 명이 유산한 사업장입니다. 이 사업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2020년에 한국에서는 최초로 2세 질환 직업병을 산재로 신청할 권리를 인정받았습니다. 이 판결을 받기까지 10년이 걸렸는데, 또다시 긴 싸움을 해야 하는 거예요.
(아픈 아이는) 아프지 않은 아이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더 챙겨야 할 것도 많지 않습니까. 그런 아픈 아이를 그럼 누가 돌보는가. 아픈 아이를 낳은 엄마들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그들의 책임이 아닌 일을 각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고, 엄마들은 나의 노동 때문에 아이가 아프다는 죄책감 혹은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 아이가 아프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후회를 떠안고 아픈 아이를 돌보고 있는 거죠.
이 모든 양상은 한국 기업이 진출한 저소득 국가로 수출되어서 같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는 이처럼 가족, 지역, 성별 그리고 국가 간 불평등까지를 다 아우르는 복잡한 문제인데,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적이 거의 없습니다.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라고 인식하거나 인정을 하지 않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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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