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어느 날 갑자기 인디씬에 등장한 검정치마는 데뷔작 <201>의 수록곡 '강아지'에서 '시간은 29에서 정지할 거야 라고 친구들이 그랬어 / 오 나도 알고 있지만 내가 19살 때도 난 20살이 되고 싶진 않았어'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2022년, 스스로 '사랑 3부작'이라 이름 붙인
그가 정리한 사랑의 종착은 보통의 보편적 사랑
이를 증명하는 건 'Flying bobs'에서 '매미들'로 이어지는 앞부분의 수록곡이다. 업 템포로 폭발하는 검정치마 표 록의 진수를 보여주는 '불세례'는 '오늘은 너의 세상이 부서지는 날이야 /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춤과 노래는 갑자기 멈춰버렸고' 외치며 식어가는 청춘을 그린다. 색소폰 선율로 감정을 끓게 하는 '어린양',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데뷔 초를 떠올리게 하는 'Sunday girl'까지. 아니, 계단에서 40oz (알코올을) 하나씩 때려 박는다는 'Friends in bed', 주문처럼 '밝고 짧게 타올라라'는 외침으로 치기 어린 젊음을 정확하게 대변하는 '매미들'까지 음반의 시작부는 생기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무뚝뚝하고 시크한 조휴일스러움이 조금씩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은 그가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룰 때부터이다. '우리가 알던 여자애는 돈만 쥐여주면 태워주는 차가 됐고 / 나는 언제부터인가 개가 되려나 봐 손을 댈 수 없게 자꾸 뜨거워'('강아지'), '나는 음악 하는 여자는 징그러 / 시집이나 보면서 뒹굴어 / 아가씨'('음악하는 여자'), '더러워질 대로 더러운 영혼 / 내 여자는 어딘가에서 울고 / 넌 내가 좋아하는 천박한 계집아이'('빨간 나를') 등 전체 커리어 퍼져있던 솔직함(혹은 발칙함)으로 포장된 여성 비하적인 비유, 표현 등이 신보의 발목을 잡는다.
그것은 그가 'John fry'에서 '통통한 손이 내 바지로 들어와 / 근데 니 생각이 났어 / 참 이상한 날이야'라며 야릇하게 사랑을 노래하거나, 'Garden state dreamers'에서 '열일곱 내 생일을 막 지나서 나쁜 걸 좋아하게 됐을 때 / 그녀는 슬로우 머신처럼 날 다스렸고'하며 일면 과감하고 섹슈얼하게 속 얘기를 꺼내는 것과 명백히 분리, 단절된 문제이다. 조휴일이 소환하는 '사랑'은 늘 같은 표현과 비유, 통속적인 클리셰의 반복에서 피어난다. 사랑은 늘 '뜨겁게' 몸과 마음을 달구고('Power blue'), '예술가'는 늘 여성의 마음을 빼앗는다.('99%') (그리고 그것을 은근하게 비하한다) 달아오른 화자를 '개', '강아지'에 빗대는 비유 역시 마찬가지.
음반의 구성력, 선율의 흡입력 등으로 무장했지만 표현력이 제동을 건다. 더 정확하게 그 표현은 그가 이성 간의 사랑을 다룰 때 청자를 멈칫거리게 한다. 즐길 수밖에 없는 사운드, 내 청춘의 한 가운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과감하고 직접적인 개인 서사 앞에서 끝끝내 검정치마 음악의 한계점이 계속해서 드러난다. 후반부 'Ling ling', 'Our summer'가 17살 조휴일의 개인적인 회고에서 시작한 이 음반을 보다 범대중적인 '청춘에 대한 회고록'으로 끌어올릴 만큼 두꺼운 힘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몰입,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 역시 분명하다. 같은 방식으로 그려지는 어떤 사랑의 묘사가 점점 더 검정치마의 음악을 얇고 묽게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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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