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희 아나운서는 말했다.
"제 인생을 통틀어 보면, 방송 일을 하지 않았던 기간보다 한 기간이 더 길어요."
방송인으로 살아온 33년, 그동안 만난 인터뷰이만 헤아려도 3만 명에 이른다. 시청자들은 그와 함께 <아침마당>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그가 들려주는 <인간극장>에 귀 기울이며 저녁을 맞았다. '국민 아나운서 이금희'를 만든 것은 시간의 무게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공감하는 열린 자세,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끌어가는 능력, 단정한 말투와 부드러운 음성으로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기술이 있었다.
말하기의 태도와 노하우에 대해서 듣고자 한다면, 이금희보다 더 좋은 화자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그는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말하기를 가르쳐왔다.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22년 동안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말하기 수업을 진행해온 것. 『우리, 편하게 말해요』에는 방송국 안과 밖에서, 아나운서로서 교수로서 그리고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이금희가 쌓아온 '말하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말하는 일이 어렵고 두려운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인 조언은 물론이고 상대의 마음을 여는 말하기의 태도, 자신과 대화 나누는 방법을 전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나와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 관한 것이다. 추천사를 쓴 박상영 소설가는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사람의 기준이 되어줄 것"이라 말했다.
담아두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씻어내요
'지난 세기에(그래요, 1999년이었죠) 에세이를 한 권 내고 제 인생에 책은 다시 없을 줄 알았습니다'라고 쓰셨습니다. 이번에 두 번째 책을 쓰신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간에도 제안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쓸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죄송하지만 안 쓰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기가 막히게 시기가 맞은 게, 제가 지난 6월에 22년 동안 진행했던 수업을 마쳤어요. 코로나로 2년 정도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거든요. 저는 학생들과 직접 만나서 실습 수업을 해야 되는데 그걸 못하니까, 50명 정도 되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일일이 메일로 피드백을 해줬어요. 나중에는 온라인 수업도 반드시 해야 된다고 해서 했는데, 50명이 한꺼번에 접속하니까 집중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라디오 진행이 끝난 뒤에 보충 수업을 해줬어요. 실제 대면 수업에서 했던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학생들이 제일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7주 정도 하고 나니까 제가 너무 힘이 들더라고요. 이대로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하겠다 싶어서 다음 학기부터 수업을 그만하겠다고 했어요.
때마침 집필 제안을 받으셨나요?
작년 연말인가 제안이 왔는데요. 저는 책을 낼 생각이 없어서, 제가 왜 책을 써야 되냐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출판사에서) '젊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진짜 어려워해요. 말하기는 꼭 필요한데, 가르쳐주거나 알려줄 사람이 없어요. 물론 말을 잘하는 방송인도 많지만 그 사람들은 말하기를 가르쳐본 적이 없잖아요. 선배님(이금희 작가)은 수업을 오랫동안 하셨잖아요. 두 가지를 오랫동안 한 사람은 선배님밖에 없거든요. 지금까지 학교 수업에서 가르쳐주셨던 노하우를 그냥 알려주시면 돼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제가 설득됐어요. 그렇다면 내가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어서 쓴 거예요. 인생이 정말 뜻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웃음)
"젊은이들에게는 늘 빚진 마음"이라고 하셨어요.
네, 미안한 마음이 있죠. 정말로 미안하죠. 기성세대는 다 미안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젊은 시절을 열심히 살았지만 그 결과가 이런 세상일 줄은 몰랐거든요. 저희보다 나은 환경에서 젊은 세대가 살 줄 알았지, 이렇게 치열하고 더 힘든 세상이 될 줄 몰랐어요. 진짜 미안해요.
강의하시면서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을 더 자세히 알게 되셨을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이 너도 나도 휴학을 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부모님들이 이해를 못하세요. 빨리 졸업해서 취업하는 게 낫지, 아픈 것도 아니고 군대에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중간에 쉬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문턱을 뛰어넘느라고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요즘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바라보면서 공부하잖아요.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대학을 졸업해도 마찬가지죠. 회사만 들어가면 된다고 해요. 그러니까 너무 지치는 거죠. 최선을 다해서 골인을 하고, 이제 주저앉아서 물도 마시고 신발 끈도 풀어야 되는데 "빨리 다시 끈을 묶어, 취업해야지" 이러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 정말 미안하고 안쓰럽죠. 제가 모든 젊은이들을 다 도울 수 없지만 한 명의 젊은이라도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책 제목이 『우리, 편하게 말해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편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건 어렵죠. 저도 그래요. 처음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되지, 하고 걱정해요. 왜냐하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냥 알아서 배워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루에 한 번이나 두 번, 세 번 정도 밥을 먹잖아요. 밥을 먹는 게 건강을 위해서 정말 중요한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숟가락 젓가락질 정도만 알려주고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랑 밥 먹으면서 눈치껏 배우잖아요. 그런데 말은요, 하루에 세 번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밥 먹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하잖아요. 그리고 밥 먹는 걸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워요. 그런데 그냥 눈치껏 배우는 거예요. 눈치껏 하는 데는 한계가 있죠. 어떤 사람은 눈치가 있지만 어떤 사람은 없고, 주변에 좋은 본보기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려워요.
『우리, 편하게 말해요』는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것도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특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피곤해지기도 하는데요. 방송하면서 피로하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었나요?
그게 저도 신기한데요. 방송할 때는 정말 몰입하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려요. 만약에 잊어버리지 않고 다 쌓아두면 제가 너무 힘들겠죠. 그런 훈련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생방송이 끝나면 꼭 손을 씻는데, 루틴 같은 거예요. 손을 씻으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느낌이에요.
처음부터 그러셨어요?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고요. <아침마당>을 진행하면서 엄앵란 선생님을 벤치마킹한 것 같아요. 선생님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혜를 말씀해주시는 분인데, 한 번은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아침에 생방송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늘 공원에 가셔서 연못을 보면서 "아이고, 네가 뭔데 그 사람들한테 그런 말을 했냐, 그래도 애썼다, 그 사람한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이렇게 혼잣말을 하신대요. 그 말씀을 듣고 참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고, 저는 방송이 끝나면 항상 손을 씻으면서 그날 방송을 생각해 보고 정리했어요. 굳이 담아두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그런 식으로 씻어냈던 것 같아요.
방송을 좋아하는 이유는 '교감'
실제로 말하기에 도움 되는 팁들을 많이 알려주셨는데요. '머릿속으로만 할 말을 생각하기보다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죠?
정말로 그래요. 우리가 축구 경기를 열심히 본다고 해서 축구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무리 EPL을 열심히 봐도 거기 나오는 발 기술을 직접 해봐야 실력이 느는 거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것 같아요. 아무리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보고 사람들의 유머를 보면서 웃어도, 머릿속으로만 해보는 건 도상 훈련에 그쳐요. 실제로 내가 해봐야 되거든요.
발표 연습을 할 때 제일 안 좋은 방법은 '말할 내용을 모두 써서 그대로 외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하면 글쓰기만 늘어요. 절대로 말이 늘지 않아요.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글로 쓴 걸 다 외울 수는 없고, 더군다나 긴장하면 외웠던 것도 잊어버려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다 쓰시면 안 되고요. 키워드만 쓰고 키워드들을 연결해서 말하는 연습을 하셔야 돼요. 또 발표할 때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나를 평가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내가 발표하는 내용을 듣고 평가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나'와 분리를 시켜놓으면 조금 편해요. 나는 내용을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한 거예요. 발표를 잘하면 도구가 괜찮아서 훨씬 잘 쓰이겠죠. 발표를 잘 못하면 도구가 부실해서 들으시는 분들이 받아들이기 조금 어렵겠죠. 그 차이일 뿐이에요. '나와 발표는 별개다, 저 사람들은 나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나의 발표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셔야 해요. 그게 맞아요.
방송하실 때도 대본 내용을 키워드로 정리하세요?
그렇죠. 그렇게 해서 머릿속에 넣는 거죠. 중간에 생각 안 나면 키워드를 보기도 하고요. 키워드를 쓰실 때, 키워드만 쓰면 불안하니까 옆에 중요 문장도 쓰실 텐데요. 발표하다 잊어버리면 얼른 짚을 수 있도록 키워드는 굵고 큰 글씨체로 쓰고, 문장은 그보다 작게 써놓으시면 좋아요.
말하는 중간에 포즈(pause), 즉 쉼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도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은 제일 중요한 기술이에요. 연기 잘하는 분들 보면 몰아칠 때는 쫙 몰아치게 하다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때 끊거든요. 그러면 긴장이 되면서 확 집중이 돼요. 책에도 '호흡도 말'이라고 썼는데요. 연기 잘하는 배우 분들도 그걸 정확히 아시는 거예요.
생방송에서 말실수를 하게 되면 어떻게 하시나요? 생각과 다른 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잖아요.
제일 좋은 건 바로 사과하는 거예요. 저는 제작진한테 물어봐요. "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진짜요?"하고요. 그러고 나서 "아, 제가 그랬다고 하네요.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드리죠. 저는 그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단어를 썼을 테니까요. 솔직하게 사과하는 것, 그게 제일 좋아요.
그럴 때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지는 않으세요?
잊어버려야죠. 운동할 때도 제일 좋은 선수는 방금 전의 실수를 잊어버린 선수라고 해요. 실수한 걸 계속 안고 있으면 남은 경기를 어떻게 하겠어요. 김연아 선수도 중간에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셨잖아요. 하지만 그걸 잊어버려야 다음 연기를 하실 수 있는 거잖아요. 잊어버리세요. 쌓아두지 마시고.
30년 넘게 현역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계세요. 후배 여성 아나운서들은 작가님을 보며 힘을 낼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윤여정 선생님이 많은 여성 배우들에게, 그리고 다른 분야에 있는 저에게도 '할 수 있어'라는 걸 보여주셨잖아요. 몇 년 전에는 나문희 선생님이 여든이 넘은 나이로 여우 주연상을 받으셨는데, 그러면서 살아남으라고 하셨거든요. 그런 분들이 계시죠. 제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오래 방송을 하고 싶어요. 요즘은 1인 매체들도 많이 생기고, 저도 유튜브를 하고 있는데, 변화되는 매체에 적응하면서 일을 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꼭 후배들을 생각해서 일을 하는 건 아니고, 일하는 게 좋고 재밌기 때문에 하는 거지만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잖아요. 서로를 보면서 나를 보는 것이기도 하니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윤여정 선생님이나 나문희 선생님에게 그런 영감을 받았고요. 작고하신 송해 선생님처럼 저도 90대까지 방송을 하고 싶어요.
후배들이 '선배님처럼 롱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실 것 같으세요?
방송을 좋아하면, 할 수 있다고 말하겠죠.
결국 방송을 좋아하는 사람이 계속 방송을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방송을 좋아하는 것보다 다른 데 욕심이 있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분들은 한때 정말 눈에 띄는 방송인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일을 하시더라고요. 그분은 관심사가 다른 데 있었던 거죠. 저는 그게 당연한 것 같아요. 관심사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게 맞잖아요. 그분들도 그쪽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고 계세요. 방송에 국한해서 말을 한다면 저는 방송을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방송의 어떤 점이 좋으세요?
'교감'이요. 제가 지금 라디오 프로그램 <사랑하기 좋은날 이금희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어제도 청취자가 보낸 사연 때문에 다 같이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웃음) 집에서 영화를 볼 때랑 극장에서 많은 사람들이랑 같이 웃으면서 볼 때랑 다른 것처럼, 그냥 교감인 것 같아요. TV는 시청자와 진행자 간의 직접적인 교감은 없지만, 저는 토크쇼를 오래 하면서 출연하신 분들과 교감하는 것이 제일 재밌고 흥미롭고 소중했어요. 제가 방송을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이자 마지막 이유도 되지 않을까요.
이 책은 '한 사람'에게 선물해 주세요
박상영 소설가와 사제지간으로 만나 인연을 맺으셨다고요.
네, 제가 강의한 곳이 여대이기는 하지만 학점 교류로 남학생들이 꽤 왔어요. 그런데 박상영 작가처럼 두 학기를 계속 들은 학생은 없었어요. 제가 봄 학기에 하는 수업하고 가을 학기에 하는 수업이 달랐거든요. 다른 남학생들은 수업을 듣고도 여학생들이 너무 많으니까 다음 학기에 수강 신청을 안 하더라고요. 그런데 박상영 작가는 1학기, 2학기를 다 들었어요. 그래서 친해졌어요. 또 너무 고맙게도, 그 친구가 자기가 등단한 문예지를 저한테 보내왔어요. 아마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을 통해서 (이후에) PD 몇 명을 거쳐서 보내온 거예요. 연락처를 적어서 보냈더라고요. 너무 반가워서 만나서 밥을 먹었어요. 그래서 다시 친해지게 됐어요. 저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너무 고맙죠.
두 분이 방송 프로그램도 같이 진행하셨죠. (왓챠 오리지널 예능 <조인 마이 테이블>) 작가님의 유튜브 채널 <이금희 '마이 금희'>에도 박상영 소설가가 출연하셨고요.
네, 같이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진짜 재밌었어요. 앞으로 하게 될 북토크도 박상영 작가님이 사회를 봐주세요. 재밌을 것 같아요.
박상영 소설가가 추천사에 쓰길 "누군가에게는 삶의 기준이 되어줄 것이다"라고 했는데요.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어요. "원치 않는 헤어짐으로 힘이 든다면 '나는 지구다'라고 되뇌어보세요. 그리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내 궤도를 도는 겁니다. 명왕성이나 천왕성 어느 곳에 가 있을 그 사람도 그러기를 바라면서"라는 구절도 인상 깊었습니다.
정말로 제가 겪었던 일이었어요. (글에서 이야기한) 그 선배 언니랑은 진짜 평생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만큼 가까운 사이였어요. 그래서 멀어지는 걸 견디기가 정말 힘들었는데요. 나는 지구다, 라고 되뇌라는 말이 저한테 힘이 됐어요. '그래, 완전히 헤어지는 건 아니잖아'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연륜이라고 하죠. 삶의 경험이 쌓이면 누군가 오고 또 가는 것도 그저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걸까요?
아니요, 힘들어요. 쉽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그 말 덕분에 덜 아프게 되더라고요.
너와 내가 각자의 궤도를 돌다가 주기가 맞으면 또 만나겠지, 하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실제로 그렇더라고요.
'아나운서의 바탕을 만들어주신 분'은 어머님이라고 하셨는데요.
맞아요.
어머님이 일을 하시면서 다섯 아이를 키우셨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항상 작가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시고 재밌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또한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너무 놀랍죠. 그러기가 어렵잖아요. 제가 운이 좋았던 게, 제가 어렸을 때 너무 아팠기 때문에 일찍 죽을 거라고 생각하셨대요. 그러면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저한테 신경을 정말 많이 쓰신 거죠. 어렸을 때 약했던 게 오히려 엄마가 저한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계기가 됐으니까, 저에게는 다행이었죠.
유튜브 채널 <이금희 '마이 금희'>에서 굉장히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계세요.
어떤 것이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고 이것저것 해보고 있어요. 최근에는 『우리, 편하게 말해요』를 조금씩 읽어서 숏츠(shorts, 숏폼 영상 콘텐츠)를 올리고 있어요. 뭐라 그럴까요, 구독자들은 저에게 친한 친구나 기댈 언덕 같아요. 박상영 작가님이 사회를 봐주시는 북토크에도 구독자 분들을 모시려고 하는데, 어떤 분들이 오셔서 어떤 분위기가 될지 기대가 돼요. 그냥 좋아요.
구독자 애칭이 '맑음이' 맞지요? 맑음이 분들을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세요?
그렇죠. 제가 코로나 때 (유튜브를) 시작했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해보고 싶은 건 많아요. 같이 영화도 보고 이야기 하고 싶고요. 저희가 멤버십 제도를 만들기로 했거든요. 한 달에 3900원씩 내시면 레터도 써드리고 숏츠도 올려드리려고 해요. 내년부터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직접 만나서 책 모임도 하려고 하고요. 책 모임도 기대가 돼요.
유튜브는 기획부터 제작까지 함께 하시는데요. 재미있으신가요?
재밌어요. 정말 든든한 내 사람들이 생긴 것 같은 느낌? 정말 좋아요. 제가 팬카페 같은 게 전혀 없거든요. 저 없이 활동하던 모임들이 좀 있었는데 저는 가입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다 없어졌고요. 그래서 이런 경험이 처음이에요. 익명의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느낌이 처음이어서 신기하고 재밌어요. 그리고 맑음이 분들이 너무 훌륭한 게, 해마다 3월 말쯤 경매를 해요. 저랑 작가님, PD님이 애장품을 내놓으면 경매를 해서 사시거든요. 그 수익을 모아서 푸르메 어린이재활병원에 기부해요. 그런 분들이라서 너무 고마워요. 지금까지 두 번 했는데, 해마다 어린이날을 맞아서 꼭 할 거예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요?
이 책을 읽고 괜찮다고 느끼신다면, 누군가 한 사람에게 선물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으면서 분명히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 친구가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이 책에 있어'하면서 떠오르는 사람, 그 분에게 선물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확률은 낮겠지만, 그 분이 이 책으로 뭔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떠오르는 한 분한테 선물해 주세요.
*이금희 1989년 KBS 16기 아나운서에 합격해 <6시 내고향>, <사랑의 리퀘스트>, <파워인터뷰> 등과 같은 굵직한 프로그램들을 거치면서 KBS 간판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특히, 18년간 <아침마당>의 진행과 10여 년간 <인간극장>의 내레이션을 통해 프로그램의 색깔을 만든 아나운서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았다. 아픔과 상처를 가진 이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 이금희의 능력은 돋보인다. 이외에도 수많은 대표 프로그램과 극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내며, 국민 아나운서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KBS FM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를 통해 청취자와 만나고 있으며 유튜브 <이금희 '마이 금희'>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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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