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스릴러 『기억의 해부학』이 상권과 하권, 전2권으로 출간되었다. 감각적인 표지와 보편적인 출판 만화 문법과 연출을 충실히 따라 편집되어 높은 몰입감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기억의 해부학』은 무고해 보이는 여성과 진범 찾기로 시작한다. 화재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지안', 평범한 주부 지안의 완벽한 알리바이가 의심스러운 경찰, 죽은 남편과 몰래 만나온 혜정. 그리고 자신의 두 아이를 저울에 달아보는, 엄마 지안의 기억까지... 서로를 향한 의심과 분노의 날들 속에 켜켜이 쌓인 인간의 기억을 해부하는 동안 이 만화를 관통하는 뜻밖의 감정, '슬픔'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웹툰으로 1년 이상 연재한 <기억의 해부학>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단행본 출판은 첫 경험이실 텐데 소회가 궁금합니다.
피너툰에서 연재가 끝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단행본으로 나올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단행본 제의를 주신 문학동네에 감사드립니다.
독립 연재로 시작한 『기억의 해부학』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첫 장면이 계속해서 반복되는데, 반복될 때마다 다른 의미와 다른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도돌이표 속에서 목도한 진실'이라는 소개도 거기서 나왔고요. 꼭 영상을 보는 듯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연출은 어떻게 고안하였으며, 같은 장면이 자아내는 다층적인 느낌을 염두에 두신 건가요?
현재가 아닌 시점의 이야기를 하면 지루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거 혹은 미래 이야기를 할 때는 이야기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했어요. 캐릭터들의 관계성이 밝혀지면서 다시 등장한 첫 장면이 아까와는 다르게 보이게 되죠. 과거 내용과 현재 내용이 수평선처럼 자연스럽게, 현재 진행형인 듯 이어지다가 어느새 만나 같이 후반 내용으로 달려가길 바랐어요. 처음 기획할 땐, 거의 영화 <메멘토>급으로 무한 도돌이표였는데, 이러다 나 혼자 재밌겠다 싶어서 많이 쳐낸 기억이 나네요.(웃음)
'아이는 반드시 세 명을 낳아야 한다'고 말한 남편 세영의 말이 몹시 의미심장합니다. 저는 오늘날 가장 섬뜩하게 재해석한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라 생각이 들어요. 또 '가정 스릴러'라는 말처럼 '가정'이라는 좁은 사회 속에서 사건과 관계를 구성해야 해서 더 어려운 영역일 듯해요.『기억의 해부학』을 떠올리며 참고하거나 착안한 작품, 또 평소에 좋아하시는 작품들이 궁금합니다.
작업하면서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스토커>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많이 회고했어요. '가정 스릴러'라는 장르와 긴장감을 주는 연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제가 <스토커>를 좋아하는 이유는, 뱀파이어가 나오는 장르인데 절대 뱀파이어 장르라고 말하지 않는 점이에요. 뱀파이어 장르 특유의 서사나 문법을 클래식하게 따르고 있는데 가장 상징적인 걸 숨깁니다. 그러면서 감독님이 보여주는 이야기와 제가 알고 있는 장르적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계속 혼합되니까, 제가 영화를 보는 건지 꿈을 꾸는 건지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웃음) 그 매력에 한번 푹 빠지고 나니까 저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어요.
'선녀와 나무꾼'이 모티브지만 그걸 빼더라도 이 극, 이 캐릭터와는 무관하게 만들고 싶었고 그런 장치를 작품 곳곳에 깔아놨어요. 지안이가 수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선녀와 나무꾼에 비유하여 지금 상황과 엄마의 마음을 이야기해주는데요. '선녀와 나무꾼'과 별개로 독해된다고 해도, 이 말이 유치한 말로 치부되어도 상관없게 그렸어요. 끝까지 동화 속에서 중요하게 등장했던 '그 동물'의 이름은 안 나오잖아요? 마지막쯤 '아이는 반드시 세 명을 낳아야 한다"라고 짐승이 말했다고 한 이유도, 우리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짐승이라고 부르니까. 독자분들이 '선녀와 나무꾼'과 연관하여 『기억의 해부학』을 볼 수 있으면서도 확실히 독립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아내'이자 '엄마'인 지안의 모습과, '선녀'이자 '인간'인 지안의 모습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특히, '나는 엄마가 되지 못한 건가? 아니면 인간이 되지 못한 건가'라는 대사가 인상 깊습니다. 정말 복잡하고 잘 만든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유지안'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만든 인물인가요?
세 가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다 보니 지금의 지안이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어떨 땐 '유지안' 그 자체, 어떨 땐 전 부인이라는 귀신이 씌여 전 부인으로서 말하고 행동하는 캐릭터입니다. 둘째, 스스로 생을 마친 전 부인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그 죄책감으로 이성적인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셋째, 분명 무고한데도 이제까지의 상황이 쌓여, 지금의 모습이 된 안타까운 인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남편, 아들, 딸, 동창 친구이자 남편의 상간녀 혜정 등 지안이 작품 속 인물들과 보여주는 관계성도 흥미롭습니다. 지안 입장에서 분명 죽일 듯이 미워해야 할 인물 같지만 그렇지 않고, 누구보다 사랑해야 할 인물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죠. 지안이 가장 사랑한 인물과 가장 미워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이건 위 답변과 이어서 지안이 '지금 누구인가'에 따라 다른 거 같아요. 지안의 탈을 썼어도 지안은 지안이니까요.(웃음) 그래도 역시 가장 사랑한 인물은 아들 배성이. 가장 미워한 인물은 세영에게 "아이는 반드시 세 명을 낳아야 한다"라고 말한 대상이 아닐까요?
연재를 하며 독자들의 반응을 꾸준히 보셨을텐데요. 마음에 남아 있는 독자 리뷰가 있으신가요? 그러한 독자들의 반응이 작가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요.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캘시퍼가 된 기분이랄까요. 한쪽의 심장이 식으면 그 관계는 끝나버리는 게 작가와 독자의 관계 같다고 생각했어요. 매 화를 올릴 때마다 읽어주시고 조금이라도 반응해주시는 게 연재하면서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마감하고 소진된 캘시퍼에게 반응이라는 땔감을 던져주셨다고나 할까요. 그럼 전 또 활활 타올라서 다음 마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웃음)
책으로서 『기억의 해부학』을 처음 접하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세지를 듣고 싶습니다.
처음 출판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초지일관 '출판 편집은 재창조의 분야다'라는 입장이었는데요. 문학동네에서 멋있게 편집과 디자인을 해주셔서 책 『기억의 해부학』만의 매력이 확실합니다. 흑백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은 물론이고, 서스펜스와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거라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작품 속 계절과 같은 계절에 출간하게 되었어요. 적막하고 서늘한 가을밤, 조금은 잔혹한 설화 한 편 어떠신가요?
*Add August (글·그림)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기억의 해부학>을 연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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