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형 어른 되기
모두는 어린이의 곁에서 어른이 된다. 구분 짓는 의미에서의 어른이 아니라, 어떤 동료 어른이, 시민이 될 지는 어린이의 곁에서 각자가 정하게 될 것이다.
글ㆍ사진 박형욱
202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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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손잡고 나란히 걷는 어른이 되어야지

어른이 됐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누군가는 파를 먹기 시작했을 때라고 했던 것 같고, 비슷한 결로 보면, 나는 제육볶음에 들어간 비계를 골라내지 않게 되었을 때라고 할 수 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타인의 강요 없이 크게 무리하지 않고도 수용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는 것인가.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결말을 확인하고 가는 친구가 있었다. 첫 장면부터 이야기를 하나씩 쌓아가면서 직접 발단 전개 위기 절정을 차례대로 맛보고 결말을 맞는 것을 좋아한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 사람의 취향이니 내가 참견할 문제는 아니라 그렇구나 했지만 마음으로부터 공감이 되지는 않았는데, 얼마 전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아, 그 아이는 결말이 어떻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보겠다는 마음이 더 큰 건가, 그럼 영화 자체를 진짜 즐기는 친구일 수 있겠구나. 그제야 그의 방법을 새롭게 보게 됐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알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알 것도 같다’, ‘그럴 수도 있지’의 범위로 들어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 걸 보면, 나이를 먹으며 갖게 된 여러 특성들 중 크게는 포용과 이해의 영역이 두드러지는 순간을 ‘어른’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면 나는 이제 충분히 어른스러운가 하면 이게 또 괴로운 지점이다. 현실과 이상이 충돌한다. 살면서 굳어져 스스로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편견 역시 잔뜩 안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작 가진 건 손바닥만 한 마음이면서 바다 같은 품을 가진 어른으로 보이기를 기대한다는 게, 괜찮은 걸까. 그렇다면, 시간이 준 것이 이해와 편견 모두라면, 편견은 줄여가면서 더 넓게 더 많이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겠지.

결국 살아온 시간이, 나이가 ‘어른’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니 어쩌면 우리가 이상으로 여기는 어른의 상은, 어른을 어른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세월의 편견을 덜어낸 어린이에게서 찾는 것이 빠를지도 모른다.



나는 예전에 ‘어린이는 어른의 길잡이’라는 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린이를 대상화하다 못해 신성시하는 듯해서였다. 어른이 어린이를 잘 가르치고 이끌 생각을 해야지, 어린이한테 길 안내의 책임을 떠맡기다니. 그리고 어린이가 길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무슨 신비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에게 할 말을 고르고, 그 말에 나를 비추어 보면서 ‘길잡이’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어린이가 나를 가르쳐 주어서 길을 아는 게 아니라 어린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심하면서 우리가 갈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

_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254쪽

내가 어른이 됐다고 느낀 순간이 또 있었다. 어린이에게 존댓말로 말을 걸 때. 꼬집어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어린이와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걸 보니 어른이 됐구나’라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리고 어느 날 만난 아이를 둔 친구는 그들 앞에서 전혀 다른 얼굴이 되었는데 그건 내가 본 그동안의 어떤 얼굴보다 믿음직스럽고 따뜻했다.

그러니까 모두는 어린이의 곁에서 어른이 된다. 구분 짓는 의미에서의 어른이 아니라, 어떤 동료 어른이, 시민이 될지는 어린이의 곁에서 각자가 정하게 될 것이다. 알다시피 대부분 문제의 시작과 끝은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다. 영원히 완수하지는 못할 테지만 어른 같은 어른이 되겠다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어딘가에 천재형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니 목표는 노력형 어른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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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저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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