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신입사원 이세일과 탐정 전일도가 조우한다면?
괴기 단편집 『넷이 있었다』의 작가 이시우와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의 작가 한켠이 서로의 작품을 읽고, 주인공들의 조우를 가정하여 엽편 소설을 창작했다.
글ㆍ사진 이시우(소설가)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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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기 단편집 『넷이 있었다』의 작가 이시우와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의 작가 한켠이 서로의 작품을 읽고, 주인공들의 조우를 가정하여 엽편 소설을 창작했다. 상상력 가득한 두 세계가 만난 ‘특급 콜라보’를 즐겨 보자.


(좌) 이시우 소설가 (우) 한켠 소설가

『넷이 있었다』에 수록된 단편 「신입사원」의 주인공 이세일은 50번이나 취직에 실패한 취준생이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병환으로 대학 졸업하는 것조차 그에게는 기적적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채용 공고에 이끌려 51번째 구직 활동으로 이어진다. 어마어마한 보수와 안정적인 직장, 그런데 직장은 차 한 대 지나다니지 않는 벌판 위에 홀로 서 있는 콘크리트 건물이고, 하는 일이라곤 휴대폰도 인터넷도 안 되는 어느 방에서 멍하니 시계만 지켜보는 일이다. 그런데 계속 무언가에 시달리듯 피곤해진다. 왜 그런지 의문을 품은 채 세일은 오늘도 퇴근 길에 오르는데... 


신입사원 이세일, 하드보일드 누아르 탐정에 관한 소문을 듣다(by 이시우)

“학생. 학생 맞죠? 이 시간에 택시 타고 가는 거 보니깐……. 직장인은 분명 아닐 테고.”

또 시작이다. 문뜩 친구들이 세일에게 ‘너는 택시 기사님들이 말 걸고 싶어서 환장하게 만드는 얼굴을 가졌다’라고 농담을 건넸던 게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뇨. 직장 다녀요. 3교대 근무라 지금 퇴근하는 거예요.”

“3교대? 요새도 그런 회사가 있나? 그거 좀 이상한 회사 아닌가? 그래서 학생. 아니 승객님 얼굴이 그렇게 죽을상이었구나?”

“이상……하긴 한데 그렇게 나쁜 회사는 아니에요. 얼굴은 요새 영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시달려서 그런 거고요.”

“시달려? 뭐에?”

‘꿈’이라는 대답이 입 끝에 걸렸지만, 세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하기 어려운 그런 게 있지? 그래서 그렇게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하였던 거고. 남들이 말하기 어려운 거, 부끄럽거나 원통하거나 그래서 그런 것들. 아니면 그냥 남들이 불편해서 듣기도 싫어하는 그런 거 잘 들어 주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지.”

한참이나 곁눈질로 세일의 눈치를 살피던 택시 기사가 목을 가다듬고 길게 말을 이어 나갔다.

“뭐 하는 사람인데요?”

“어? 탐정.”

“탐정이요? 탐정이면…… 살인 사건 수사하거나 그러는 사람 아니에요?”

“그렇지 일단은. 그런데 그 양반이 되게 유명한 탐정 집안의 후계자? 뭐 그런 건데 사람이 나이는 어린데 되게 뭐랄까. 그런 게 있어.”

“유명한 탐정…… 집안이요? 뭐로 유명한데요?”

“아. 그러니깐 일단은 부모님들은 불륜 탐정. 그런데 그 양반은 그쪽은 아니고.”

“불륜 탐정…… 유명…… 아, 네…….”

“아 그 양반은 그쪽 아니라고! 뭐 하드 뭐시기, 누아르 뭐시기 탐정이라 하는데 보면 귀신이며 외계인이며 그런 일도 잘 처리하고. 하여간! 잘해.”

“귀신…… 외계인. 탐정이 원래 그런 일도 하나요?”

“그렇지?? 그렇지 않을까? 하여간 내가 그 양반한테 쿠폰을 하나 받았거든? 의뢰 열 번 하면 한 번 더 의뢰 들어주는 쿠폰. 그래서 이제 학생. 승객님이 영 눈에 밟혀서 말이야. 그냥 이거 줄까 해서 이야기한 거야.”

“의뢰를 열 번이나 하셨다고요? 기사님은 뭐 때문에요? 귀신? 외계인? 아니면 혹시 불륜…….”

“아니! 도대체 뭘 들은 거야. 그 양반이 사람 말을 잘 들어 준다니까? 그 내가 답답하고! 낯뜨거워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겠고! 어! 친구란 놈들한테 말해 봐야 ‘뭘 그 정도로 그렇냐’ 같은 소리나 듣고 할 때! 나랑 별 상관도 없던 양반이 사람 말 들어 주는데, 그저 열심히 들어 주는데. 고맙지! 안 그래?”

갑작스럽게 폭발한 택시 기사의 기세에 눌려 세일은 엉거주춤 쿠폰을 받아들였다.

“아. 네……. 저도 그럼 시간 되면 한번 가볼게요. 그런데 그 탐정분 이름이 뭐라고요?”

“전일도.”



대대로 탐정 집안의 후계자인 전일도는 부모님 댁에 얹혀사는 반백수다. 유쾌하고 겁 없고 돈 밝히고, 일단 내뱉고 수습하며, 마음은 ‘본격 하드보일드 느와르 첩보 액션 탐정’이지만 현실은 ‘할인은 되지만 할부는 안 되며 열 번 의뢰하시면 한 번 공짜’인 생계형 탐정. 불륜 전문 탐정인 부모님처럼 되기는 싫어서, 실종 탐정으로 갈아탔다. 그간 고단한 청춘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해 주던 전일도에게, 이번엔 실로 괴이한 청춘 하나가 상담을 하러 온다. 자신이 이상한 회사에 취직했다나?

20대 생계형 탐정 전일도, 블랙회사에 취업한 의뢰인을 만나다(by 한켠)

“안녕하십니까. 이세일입니다. 취업한 회사가 아무래도 수상해서, 정체를 알고 싶습니다.”

일은 적고 월급은 많이 주는 회사의 신입사원이라는 의뢰인은 약간 겁먹은 얼굴로 ‘1분 자기소개’를 하듯이 의뢰했다. ‘세일’이란 이름대로 쇼핑몰에 취직했으면 좋았을 텐데 의뢰인은 ‘성별, 학력 무관, 하여튼 다 무관, 3교대, 업계 최고 대우, 정년 보장’이라고만 적혀 있는, 누가 봐도 수상한 회사에 취직했다. ‘업계 최고 대우’라니 그 업계가 무슨 업계인지도 모르면서. 공고문을 내려놓았다.

“장기 밀매를 하려고 해도 이것보단 상세하게 지원 자격과 입사 시 혜택을 써 놓을 텐데요.”

요즘 세상에 우편으로 입사 지원을 받는 데다 근무지는 과천 그린벨트 내에 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사무실 내에서 고구마나 구워 먹는 어르신 세 분에 하는 일이라곤 시계나 보다가 세 시가 되면 전화 수화기를 드는 일뿐이었는데 취업한 이유는 뻔하지, 뭐. 거기밖에 세일 씨를 뽑아 준 회사가 없어서, 였겠지. 하루 여덟 시간 근무도 지켜 주었고. 그러나 제정신으로 다닐 직장은 아니었다.

“입사 건강검진 받을 때 ‘원숭이들의 법칙이 먼저 온 자의 권능 앞에서 작용할 수 있을지, 어머니를 죽여서 전 인류를 구할 수 있는지’ 뭐 그런 거 물을 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하는 일에 비해 연봉이 너무 높았다. 어머니 병원비도 다 내주고. 그러나 덥석 받기엔 회사가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다. 대가 없는 보상은 없다. 내가 질문했다. 

“돈 많은 집안 도련님이 심심풀이로 ‘회사 놀이’ 했던 걸까요? 세상에는 별별 중소기업이 다 있으니까.”

“그건 아닙니다. ‘국민안전처’라고, 정부 기관입니다.”

그게 뭐야, 정부 조직도에도 안 나오는데. 이 의뢰인, 밀항선에 태워도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출발할 인간이구나. 세일 씨가 변명했다. 세일 씨의 눈이 얼핏 광기로 번들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 따위는 모르고 일하지 않습니까. 저는 꿈꾸는 자의 종복이었습니다. 원숭이들 문명의 파수꾼이었습니다. 저는 꿈꾸는 자의 꿈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근무할 때마다 꿈을 꾸었고, 결혼도 했고, 그런데 같이 근무하던 영감님 중에 한 분은 자해를 하고 한 분은 자살하고…….”

세일 씨의 말은 점점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군고구마 트리오 중에 두 명이 잘못되었으면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하단 얘긴데…… 다음은 세일 씨 차례인가. 과연 이게 내 선에서 해결될 문제일까. 세일 씨를 정신과에 데려가야 할까. 노동청에 신고해야 할까. 하지만 뭘로……? 세일 씨가 안절부절못했다.

“이제 곧 3시가 됩니다! 그 전까지 알아야겠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선영이가, 와이프가 지금 임신 중이란 말입니다!”

시계를 보았다. 2시 59분.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

“일단 전화 수화기에 손을 대 보죠. 꿈꾸는 자가 꿈에서 깨어나는지 한번 볼까요?”



*이시우

바닷가 태생. 호러 소설 창작 그룹 괴이학회의 창립 멤버이다. 현재는 딥러닝 AI 회사의 프로그래머로 생업을 유지하며 주로 공포와 판타지 색채가 강한 작품들을 집필 중이다. 장편 『이계리 판타지아』와 『과외활동』 등을 출간하였고 개인 작품집  『과외활동』 , 그리고 단편집 『단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에 「이화령」을 단편집 『출근은 했는데, 퇴근을 안 했대』에 「솔의 눈 뽑아 마시다 자판기에 잡아먹힌 소년 아직도 학교에 있다」를 수록하였다. 괴이학회의 여러 소설집에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로 참가하였고 참가할 예정이다.



*한켠


『탐정 전일도 사건집』과 『탐정도 보힘이 되나요』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을 지었으며 『7맛 7작』, 『야운하시곡』, 『사건은 식후에 벌어진다』,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 『출근은 했는데, 퇴근을 안 했대』에 단편을 수록하였다.

한국에서 산다는 게 고단하고 불안할 때가 있다. 사는 게 힘들어질 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해결해 달라고 매달리고 싶어서 전일도 탐정을 만났다. 내가 “아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하면 “네가 왜 사라져. 사라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라고 하는 탐정 친구를 얻었다. 뭔가 지독하게 안 풀릴 때 전일도 탐정이 “네 잘못 아니야.”라고 말해 주는 친구가 되길 바란다.



넷이 있었다
넷이 있었다
이시우 저
황금가지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
한켠 저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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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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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켠

역사물을 쓰는 작가는 죽은 귀신의 말을 산 사람에게 전하는 샤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몇 번 더 역사물과 동양풍 판타지의 쌍작두를 타 볼까 한다. 지은 책으로 일제강점기에 축구 하고 연애하는 여학생들 이야기인 《까라!》, 20대 비혼 여성 탐정이 현실적인 고민들을 해결해 주는 《탐정 전일도 사건집》 등이 있고 브릿G(https://britg.kr/novel-author/1437)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무대 위의 정교하게 세공된 격렬한 감정을 안전한 객석에서 관극하러 주말마다 대학로를 드나드는 사람. 극이 시작될 때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는 순간이 늘 두근거린다. 무대와 근대를 사랑한다. 지은 책으로 《까라!》, 《탐정 전일도 사건집》,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 《누구도, 아무도》(리디북스)가 있으며 브릿G에서 글을 쓰고 있다. 『탐정 전일도 사건집』을 지었으며 『7맛 7작』, 『야운하시곡』, 『사건은 식후에 벌어진다』, 『라오상하이의 식인자들』, 『출근은 했는데, 퇴근을 안 했대』에 단편을 수록하였다. 한국에서 산다는 게 고단하고 불안할 때가 있다. 사는 게 힘들어질 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해결해 달라고 매달리고 싶어서 전일도 탐정을 만났다. 내가 “아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하면 “네가 왜 사라져. 사라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라고 하는 탐정 친구를 얻었다. 뭔가 지독하게 안 풀릴 때 전일도 탐정이 “네 잘못 아니야.”라고 말해 주는 친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