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책이 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이 책의 작가 전안나는 제목 그대로 ‘태어나서 죄송한’ 마음으로 살았다. 전안나는 친부모를 모른 채 보육원에서 ‘김주영’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시작했다. 입양된 후 그녀는 ‘전안나’가 되었고, 이때 처음으로 출생신고가 되었다. 새 이름과 함께 행복한 삶을 기대했지만, 그 이름은 ‘폭력의 대가’일 뿐이었다. 그 세월이 무려 20여 년, 모든 게 태어난 내 잘못 같았다.
그럴 때마다 전안나는 책을 읽었다. 책 속에서 그녀는 김주영도, 전안나도 아닐 수 있었다. 책은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고,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 주었다. 그렇게 전안나를 살게 한 책 서른 권을 『태어나서 죄송합니다』에서 소개하며 40년간 숨겨 왔던 아픔을 고백한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가 출간되었습니다. 40년간 드러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 마음먹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이 책을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영원히 저의 아동학대 사실을 숨기려고 했어요. 그러다 3년 전, 어느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마흔’이라는 주제로 독서 에세이를 쓰자고 계약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주제에 맞게 마흔 이후의 삶에 대해서 써야 하는데, 글을 쓰다 보니 자꾸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처음 입양되었던 다섯 살, 방황했던 학창기, 20대까지 이어진 폭력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내가 한 번은 내 과거를 객관적으로 정리를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다시 마음을 먹고 주제를 변경해서 썼습니다.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다시 되짚어가며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집필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었을까요?
아주 많이 어려웠어요. 쓰는 것도 어려웠고, 출판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책을 써야지 하고 마음을 먹으면 한 달, 두 달이면 집필을 끝내서 1년에 한 권씩 책을 냈는데요, 이 책은 2019년에 쓰기 시작해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처음 카페에서 글을 시작하는데, 자꾸 어린 시절 제가 생각나서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자기 연민이었죠…. 저는 여태까지 저 자신을 위해서 울어 본 적이 없는데, 다섯 살 ‘김주영’이 자꾸 생각나 눈물이 쏟아져 더 쓸 수가 없었어요. 한참 닫아 두었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열어서 쓰는데, 이번에는 저를 학대한 양어머니, 방임했던 양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폭발할 것 같았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또 너무 괴물 같아서 쓰다가 닫았어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 계약 완료 시점이 다가와, 다시 펼쳐서 김주영을 달래고, 전안나를 달래 가면서 마무리를 했어요. 여기까지는 쓰면서 겪은 어려움이고, 책 출판도 자체도 쉽지 않았습니다.
계약 해지 네 번, 다섯 번째 계약으로 겨우겨우 ‘가디언’ 출판사와 책을 냈어요. 출판을 위해 여러 곳에 문을 두드렸는데 주제가 이래서 그런지 관심을 안 보이더라고요. 계약한 곳 중 출판사가 문을 닫은 곳도 있고, 편집자님이 이 책을 너무 불편해하셔서 계약 해지를 한 곳도 있어요. 쓰면서도 어려웠고, 출판하기도 참 어려웠던 책입니다.
이 책은 ‘독서 에세이’로, 읽었던 책 서른 권으로 작가님의 아픔을 고백하는 책입니다. 처음으로 ‘책을 읽어야겠다, 책이 위안이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사람은 안 믿어요.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도망친다고 하던데, 저도 그랬습니다. 수전 손택은 ‘책은 나의 우주선, 작은 자살’이라고 말했는데, 제가 그랬어요.
저는 여덟 살 때부터 책으로 위안받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문학, 위인전을 많이 읽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 제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책 앞, 책상 앞이었어요. 슬플 때도, 위로가 필요할 때도, 아플 때도, 책을 펼치면 그 순간에는 현실을 멈출 수 있었거든요. 양부모님이 잠든 밤부터 새벽까지 책상 앞에서, 이불 속에서 책을 읽으면 무중력 상태처럼 책과 나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어요.
책을 읽는 순간에는 고아에다 양어머니에게 아동 학대를 받는 전안나가 아니라, 부모님을 다시 만나는 소공녀가 되었다가 입양된 집에서 사랑받는 빨간 머리 앤이 되었어요.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다가도 다시 책을 펼치면 나라를 세운 이성계가 되었다가, 충절을 지키는 정몽준이 되었다가, 살인사건을 밝혀가는 셜록 홈스가 되었어요. 그렇게 10대를 살아 낼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하루 한 권 읽기를 10년 넘게 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읽은 수천 권의 책 중에서 고른 서른 권은 아무래도 다른 책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인데, 어떤 기준으로 서른 권의 책을 고르셨을까요?
정희진 작가님이 말하길 ‘약자는 자기 언어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저도 그랬어요.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책 속 언어가 내 마음을 대변해 준 책을 골랐어요.
그리고 저에게 일어난 일들이 ‘네 잘못이 아니다’라며 용기를 북돋아 준 책, 네 이야기를 써보라고 등을 떠밀어 준 책 서른 권을 골랐습니다. 어쩌면 제 이야기를 그냥 할 자신이 없어서 책을 먼저 내세웠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현재 19년 차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계십니다. 작가님이 겪었던 일련의 일들이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에, 그리고 현재 일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을까요?
저는 삶의 목표가 ‘복수’였어요. 양어머니에게 복수하려고 ‘오기’로 살았어요. 어릴 때는 나도 크면 똑같이 해주겠다고 결심했어요. 양어머니가 나에게 한 것처럼 ‘매일 나가 죽으라고 욕하고, 집안일 시키고, 때리고, 똑같이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러면 제가 똑같은 괴물이 되잖아요? 그런데 똑같은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복수의 방법을 바꿨어요.
저는 ‘반드시 잘 살아야겠다,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죽어도 싼 사람이 아니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 우아하고 품위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어떻게 하면 미치지 않고 내 삶을 살아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매일 죽으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안 죽고 우아하고 품위 있는 복수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하다 보니 책도 많이 읽고, 사회복지, 심리상담, 심리검사, 가정폭력 상담, 아동인권. 부모교육, 신학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직업이 사회복지사, 아동인권 강사, 작가 그리고 엄마가 되었는데요, 저의 지금 직업은 잘 살아남는 복수의 결과입니다.
2022년은 어린이날 100주년입니다. 하지만 아동학대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무서운 뉴스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성인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분들께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네 잘못이 아니다’입니다. 후회와 죄책감은 피해자의 몫이 아니고 가해자의 몫입니다. 아동학대 피해로 인해 나타나는 역기능적인 모습이 있어요. 피해자들은 우울하고, 사회성이 없고,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내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복수는 내가 잘사는 것임을 기억해 주세요. 가해자보다 우아하고, 품위 있고, 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복수입니다. 꼭 복수하세요.
이 책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주세요.
저는 ‘퍼스트 펭귄’이 되고 싶어요. 펭귄들은 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다가, 처음 뛰어드는 펭귄 한 마리가 나오면 그때 모두가 바다에 뛰어든다고 합니다. 자극적인 아동학대 사건 보도 이후, 피해 아동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거의 처음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더 많은 목소리를 내면 좋겠어요.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아동학대의 가해자이거나 방임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아동학대를 모른 척하지 않는 시민이 되는 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기여하면 좋겠습니다.
*전안나 19년 차 직장인이자 『1천 권 독서법』, 『기적을 만드는 엄마의 책 공부』, 『초등 하루 한 권 책밥 독서법』, 『쉽게 배워 바로 쓰는 사회복지글쓰기』, 『초등 6년, 읽기 쓰기가 공부다』 등을 쓴 작가이고, 전국을 다니며 독서법을 강의하는 강사이다. 아동 학대 트라우마를 벗어나려 노력하다 보니 아동·청소년 담당 사회 복지사가 되었고, 가정 폭력 전문 상담사가 되었고, 아동 인권 강사가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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