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비유〉의 2021년 12월호에 「어떻게 MBTI는 과학이 되었는가」라는 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주인공 마음은 자신의 직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심리학자인데, 언젠가 심리학 붐이 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모든 사람은 “대체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딴 짓을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는 MBTI를 좋아할 수가 없다. 그는 MBTI가 대중심리학의 선두에 서서 심리학이 응당 지녀야 할 권위를 탈취한다고 믿는다.
이건 대단히 편하게 쓴 소설이다. 어느 정도 자전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수식하려고 해도 공부를 잘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소설의 주인공 마음은 심리학 박사지만, 나는 모교 대학원도 떨어졌다. 어쨌든 한때 그 학계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고 자부심도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MBTI를 좋아하지 않았다. MBTI가 학술적인 장면에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걸로 알기 때문이다.
MBTI가 가정하는 불연속적인 성격 유형 모델 자체가 인간 성격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자연계의 수많은 양적 수치들은 평균값이 제일 많은, 종 모양의 정규 분포를 띤다. 키가 2m거나 140cm인 성인 남성은 만나기 쉽지 않지만, 키가 170cm인 남성은 아주 찾기 쉽다. 성격도 비슷하다. 극단적으로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인 사람은 찾기 쉽지 않고(극단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은 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애매모호하게 어떤 상황에선 외향적이고 어떤 상황에선 내향적인 사람은 흔하다. 성격은 연속적인 스펙트럼이고, 유형이 아니라 점수로 표현하는 것이 현대적인 성격 검사 방법론이다. 하지만 MBTI에서는 단 몇 점의 차이로 성격 유형이 바뀐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그에 대해 굳이 더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사실 MBTI에 대한 이런 비판이 딱히 신선한 이야기는 아니다. 구글링을 딱 3분만 해봐도 훨씬 더 많은 근거를 이용해서 정확하게 사실 관계를 지적하는 글이 수십 수백 개는 될 것이다. 그 글들의 조회수를 다 합쳐도 커다란 블로그에 있는 ‘MBTI 유형에 따른 연애 방법’ 같은 제목의 조회수 하나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긴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재미를 좇으니까. 인터넷에서 심리 검사를 한다고 수십 문항의 검사지를 집중해서 채웠는데, 한 검사는 애매모호하게 “음… 당신의 외향성은 몇 점이고 개방성은 몇 점이고 신경성은 몇 점인데… 이런이런 경향이 있고…” 같은 식으로 말하고 또 다른 검사는 “당신은 호기심 많은 예술가 유형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당연히 후자가 재밌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인지 자원에는 한계가 있는데, 여가 시간에 인터넷에서 하는 심리 검사는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을 바라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나.
사실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분명히 세상을 설명하는 더 나은 방법이 있는데 쉽고 재미있는 것을 더 선호하는’ 문제에 대해 대단히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왜 ‘대중’이 ‘비과학적’인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매사에 진지해야 하고 언제나 빛나는 진리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나도 전혀 그렇지 못했는데… 하하하… 20대 초반에는 사람이 좀 이상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이 열풍이 단지 여가 시간에 하는 유희나 소개팅 대화 소재 정도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소설에서 나는 ‘MBTI 유형을 기대 연봉이 가장 높은 유형으로 바꿔주는 스피치 학원’에 대해 간략히 썼는데, 한 기사에서 진짜로 취준생들이 취업 잘되는 MBTI 유형으로 자신을 바꾸려 한다는 사실을 보고 기함했다. 기업에서 MBTI로 사람을 걸러내는 건 인사 담당자의 나태의 소산이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도 이 검사가 트렌드가 되었기 때문이겠지. 재미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정말 강력한 무기임을 실감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자! 어쨌든 사람들이 MBTI를 즐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유형을 묻는 이유는 “대체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딴 짓을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모두가 마음 깊이 품기 때문 아닐까. 다행히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건 썩 기분 좋은 일이다. 외계인이 지구를 관찰하다가 “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족속들이 추잡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꽤나 귀여운 면도 있네”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하다.
그리고 십 년 전 즈음에 우리는, 적혈구 세포막에 붙은 당단백질의 유형, 그러니까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다는 ‘이론’을 신봉하기도 했다. 그에 비한다면 MBTI는 열역학 법칙에 버금가는 진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 산수로 따져도, 4개의 유형에서 16개의 유형으로 늘어났으니 지수적인 발전이 있었다. 다수의 이견이 있지만, 역시 역사는 필연적으로 진보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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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너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