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이력, 경력, 전문성, 돈, 재능…. 모든 게 ‘애매하다’고 생각하던 92년생 애매한 인간이 카페사장이 되었다. 나고 자란 진주에 셀프 인테리어를 거쳐 만든 작은 카페. 금방이라도 폐업할 것처럼 아슬아슬했지만 어느덧 4년차에 접어들었다.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장소에서, 책과 문화가 함께하는 곳으로 변모했다. 애매한 그의 공간을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단골손님과 친구들도 늘었다. 때로는 서글프지만 대체로 꿋꿋한 그동안의 기록을 한 권의 책 『엄마가 카페에서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로 엮었다. 가감 없이 투명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누구라도 진주 ‘읍’에 위치했다는 그의 카페와 카페 주인장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인생 첫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출간 작가 된 기분은 어떠세요?
나와 가족, 그리고 단골손님들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모두가 기뻐했어요. 저 또한 설렘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불안감도 분명 느꼈어요. ‘내가 종이 아까운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사람들이 과연 이 책을 좋아할까?’, ‘출판사도 나와 같은 자영업자이자 소상공인인데, 출판사에 부담을 주는 건 아닌가?’ 책이 나온다니 무척이나 좋지만, 또 마냥 좋지만은 않은 그런 애매한 기분이 들었답니다.
책 속에서는 카페를 위해 가족들이 함께하는 모습이 따뜻하게 그러지던데요. 때수건을 만들어서 팔라고 하시고, 매일 문을 열고 청소도 해주시고... 출간 후 부모님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따스한 눈으로 바라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책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부모님은 어떤 내용의 책일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요. 마침내 종이책이 출간되자, 부모님은 각자 한 권씩 사서 읽으셨더라고요. 그리고 며칠 뒤 엄마와 아빠에게 연락이 왔어요. 저는 부모님이 제게 ‘대견하다’, ‘자랑스럽다’라고 말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먼저 “미안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빠의 은퇴 과정, 엄마의 외로움, 할머니와의 씨름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을 딸이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지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고. 뒤에서 우리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게 해서 미안하다고. 딱 그말을 하시더라고요.
현재 저는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지만, 부모님의 마음의 깊이는 애를 낳은 지금까지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한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부모님께 “우리 행복하자”라는 말만 건넬 뿐이었습니다.
작가의 일상은 좀 어떤가요?
여전히 카페 사장이죠. 요즘은 손님들이 카페에 때수건을 사러와요. 때수건은 이 마을에서 입소문도 났거든요. 한 손님이 때수건을 목욕탕에 들고 갔는데, 다른 분이 “뭐 저리 예쁜 걸로 때를 박박 밀고 있소?”라고 물어봤다는 거예요. 우리 손님은 아프지도 않고 때가 국수처럼 나오는 인견 때수건이라고 자랑을 했다고. (웃음) 그 뒤로 손님들이 때수건 한 장씩 장만하러 오세요. 카페 문을 열고 “여기가 거기 때수건집 맞소?” 이러면서요.
하지만 카페는 늘 그렇듯, 진주 문산읍 그 자리 거기서 늘 일상을 유지하고 있어요. 4년 차가 되자 이제는 익숙한 풍경들이 있어요. 매일 오전, 오후에 두 번씩 경운기가 왔다 갔다 하고요, 폐지를 모으시는 어르신들은 부부인데, 정말 부지런하셔서 하루에도 수십 번 이 앞을 오가곤 하죠. 일흔이 넘은 어르신은 이제 친구가 되어서, 가끔 주전부리를 가져다주셔요. 그러면 저는 보답으로 커피믹스를 타드려요(아메리카노는 영 맛이 없다나). 건너편에는 비어있는 땅이 있는데, 어르신들이 거기다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었어요. 이제 배추가 제법 자라 풍성한 머리숱을 자랑한답니다. 열심히 농사지은 밭을 어루만지는 어르신의 굽은 허리가 보이네요.
연령대가 높은 동네라, 어르신 돌봄이나 자원봉사자들과도 가끔 인사를 나누기도 하죠. 그들의 일과는 정말 바쁘게 돌아가요. 혼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병원도 가고, 은행도 가요. 집에서 반찬도 넉넉히 해와서 나눠드리기도 한답니다. 경비아저씨는 ‘경비’ 그 이상의 일을 해내죠. 어르신들의 말동무도 해드리고, 밭에서 캐온 무나 상추 같은 것들도 나눠줘요.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술은 제발 끊으라며 잔소리를, 아주 기가 막히게 한답니다. 가끔 어르신들은 이 앞에서 모여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춰요. 저 속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될 만큼 정말 재미있게 노시거든요. 저는 가끔 초코파이며 카스테라 같은 걸 드리곤 하는데, 박수치며 좋아하신답니다. 나이 들어도 단 걸 좋아하는 건 똑같나 봐요. 요새는 날이 추워져 낮에 햇볕이 들 때 잠깐씩 모였다가 또 헤어지는데, “날 따수워지면 또 보입시더” 하는 어르신들의 인사는 언제 들어도 정겹답니다.
카페 매출은 좀 나아졌나요? 카페 들러보고 싶다는 리뷰가 많던데...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고, 매출은 아직 제자리걸음이지만, 카페에 방문해주시는 새로운 얼굴의 손님들이 많이 늘었어요. 예전에는 아는 사람만 오는, 단골손님만 오는 그런 카페였거든요. 이제는 ‘거기 카페에 진짜로 때수건을 팔까?’ 호기심을 안고 오는 손님도 생겼고, 순수히 때수건만 사러오는 손님도 생겼고, ‘마음을 담은 커피맛 좀 봅시다’라고 말하고 오는 손님도 생겼어요. 모두 모두 반가워요!
작가님 스스로 ‘애매한 인간’이라고 하셨는데, 다들 ‘나도 애매하다~’라는 소리가 많습니다. (웃음) 그런데, 작가님은 좀 덜 애매한 게 아닌가 이런 문제 제기도 많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의 성격, 취향, 취미는 모두 다 다르죠. 우리가 가진 돈, 능력, 재능의 영역도 모두 다르고요. 그래서 애매함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각자가 애매하다고 여기는 분야도 다르겠죠.
책을 보고 ‘작가는 전혀 애매하지 않다’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저는 그 말씀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는데요. 제가 애매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애매해서 나쁘다고 여겼던 것들, 애매한 것을 고치고 수정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여겼던 것들, 그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봐주신 거잖아요. 애매해도 꽤 괜찮다고요.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들도 가지고 계시는 애매함도 꽤 괜찮다고, 그대로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공기업으로 돌아갈 마음은 있으세요?
직장에 다닐 때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할까?’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이 공간에서 많은 손님들과 다양한 추억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하지만 언젠가 멈춰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면,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 거라 생각해요. 취직을 한 것도, 퇴사를 한 것도, 창업을 한 것도 모두 그때 제 자리, 제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저만의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있다면?
제가 평소에 너무나 좋아하는 시가 하나 있는데요.
행복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애매하고도 어중간하게요. 길을 걷다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행복할 때도, 괴로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불행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우리에겐 우리네 일상을 열심히 살아냈을 때 주어지는 행복이 있다고 믿습니다.
*채도운 1992년생. 자격증, 이력, 경력, 전문성, 돈, 재능 등 모든 게 애매한 인간. 무난하게라도 살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다 마침내 공공기관 입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힘겹게 4년을 버티고 퇴사, 나고 자란 진주에서 무작정 카페를 열었다. 그게 온통 애매하기만 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주인을 닮아서일까? 카페도 애매하다. 카페인가, 서점인가, 마을회관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매함이 주는 힘을 믿기에, 이 공간을 방문해주는 손님, 친구들, 가족과 함께 하루하루를 충실히 잘 살아내고 있다. 애매한 인간의 카페 창업기를 브런치에 연재하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엄마가 카페에서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전자책을 출간했다. 오늘도 진주에서 카페&서점 ‘보틀북스’를 애매하게 운영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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