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고르 인생관』은 북극서점 책방지기 슬로보트가 우체고양이 고르고르를 통해 전하는 24가지 인생관 편지가 담긴 책이다. 자신에게 꼭 맞는 행복의 모양을 찾아 멈추어 선 보통 사람들의 동그랗고 따스한 이야기가 『고사리 가방』, 『귤 사람』을 만든 김성라 작가의 선선하고 귀여운 그림으로 펼쳐진다.
두 고양이가 함께 먼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표지가 예뻐요. 표지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해야 하는 일들에 치여서 살다 보면 스스로가 물건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표지의 고양이들처럼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자체가 귀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있는 시간 동안 마음속에서 다양한 질문과 해답이 떠오르니까요. 어쩌면 ‘나’라고 여기는 가장 진한 것들이 튀어나오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제 동생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을 쓰고 싶었어요. 동생이 상처를 받고 오래 집에 머물면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잊어버린 채 살고 있었거든요. 무너진 마음에 다시 생기가 돌도록 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스스로를 평가하고 남과 비교하며 그것을 잊고 사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상태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노고를 알아주는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동생은 물론이고 상처받았을 때의 저, 주변 사람들, 고유한 삶을 꿈꾸는 많은 사람에게 푹신한 곳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썼습니다.
주인공 고르고르의 모델은 직접 키우고 있는 고양이 ‘금동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고양이 금동이를 10년 동안 키우며 정말 커다란 사랑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언젠가는 저의 인생에서 사라지겠죠. 주인공 고르고르는 이미 한 번 생을 다 한 고양이입니다. 생을 다한 후 영혼의 안내자인 고양이 언니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만들었던 따뜻한 에너지를 그대로 품고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언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끝을 시작으로 하는 책입니다. 환생을 구조로 재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김성라 작가님과 함께하며 어떤 점이 좋았나요?
김성라 작가님의 첫 책 『고사리 가방』을 읽고 우리나라에도 산들바람 같은 책을 만드는 작가가 나왔다는 것에 너무 반가웠고 팬이 되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북극서점의 작은 미술관 북극홀에서 작가님의 개인전을 열게 되며 처음 만났어요. 작가님이 직접 만든 책 속의 아름다움을 정면으로 알아들었기 때문에 김성라 작가님께 제 책의 그림을 부탁 드렸습니다.
김성라 작가님께서도 제 초고를 보시고 답변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굉장히 정성스럽게 읽어 주셨고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만화의 콘티를 짜본 경험이 없이 무턱대고 시작했기 때문에 어설픈 부분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텍스트로 대사와 지문만 드렸다가 그것이 어려운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중에는 칸칸에 대사와 지문을 넣어드린 후 작가님께서 더욱더 풍성한 느낌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글을 쓰며 마음에 품었던 풍경과 리듬이 있는데 성라 작가님께서 그것을 정확히 캐치해 주셨어요. 그림의 스타일과 배경, 표정 모두 제가 꿈꿨던 것보다 더 훌륭한 책으로 완성된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인생관은 무엇일까요?
제 이야기가 책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하는데요, 다른 인물들의 인생관을 적절히 배치해야 했기 때문에 실제와는 다르게 실렸지만 사랑, 자유, 자아실현, 자연의 아름다움, 마음의 평화가 제 실제 인생관입니다. 초등교사로 일했을 때는 저 자신과 몸담은 세계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어요. 나름의 기쁨도 있었지만 제 삶을 이방인의 감각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꾸준히 스스로를 사랑하며 행복한 미래를 확신하기 어려웠어요. 인생을 끌고 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이 부족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책장 뒤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 달라고 소리치잖아요. 제 안의 작은 제 자신이 계속 소리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중요한지 소리치고 있었는데 저는 그것을 들을 수 없는 상태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는 이런 게 중요한 사람인가 봐.’ 라고 깨달은 순간 제 안의 작은 사람이 안심하고 위안을 얻었을 것 같아요. 『고르고르 인생관』을 읽고 여러분도 어쩌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책 속의 주인공들에 대한 인물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되도록 소수자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었어요. 티라노 엄마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여성입니다. 안 무서운 유령 언니는 생계와 예술 사이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예술가, 자연에서의 새로운 삶을 모색하며 환상은 깨지지만 나름의 적응 방법을 찾아가는 귀촌 청년 이야기가 차례로 나와요. 네 번째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시각 장애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멀리 이사를 가며 마음의 동요를 겪게 되어요. 자신의 삶이 깜깜해질 때 누군가에게 쉽게 기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기대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거든요.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하고요. 이 이야기를 할 때 특히 고민이 많았어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동물은 굉장히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잖아요. 날개가 있기도 하고, 비늘이 있기도 하고, 다리가 없기도 하고. 인간 각자 하나하나를 인간종이 아니라 각자의 유일한 생물 종으로 본다면 사실은 거리낄 것이 없죠. 모든 것들이 개성으로 보일 뿐이죠. 지능, 신체 일부의 유무, 생김새, 성향, 모두 그렇습니다.
저 또한 정상과 비정상의 감각이 몸에 각인이 되어 있지만, 조금씩이나마 다양한 시각을 가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년을 주인공으로 선택을 하게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히말라야 할머니는 성 소수자입니다. 오래 함께했던 소울메이트가 세상을 떠난 후 유언에 따라 히말라야에 가게 됩니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100% 확신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요. 저 또한 그런 시절이 있었고요. 다양한 각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고르고르는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나요?
그것은 책을 통해서 확인해 주세요. 하하.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인생을 다시 겪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너무나 힘겹게 버티며 살기 때문이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을 다시 반복한다는 것이 버겁기도 해요. 그렇지만 제가 현재 알고 있는 저의 인생관을 좀 더 일찍 깨달을 수 있다면 한 번 다시 살아보고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더 너그러워지고 지금까지 살아온 제 인생의 많은 장면에서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르고르 인생관』을 통해 조금 더 단단한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슬로보트 (글) 초등교사를 그만둔 후 노래를 만들고 작은 서점을 열었다. 씩씩하게 걷는 편이고 몰래 웃긴 춤도 춘다. 하나의 인생에서 여러 번 살아보는 것. 그것을 탐구하며 지금은 주로 북극서점에 앉아 있다. 슬로보트 정규 1집 <섬광>, 독립출판물 『각자의 해변』. 『스스스스스』를 만들었고 김성라 작가님의 동그랗게 따스한 그림을 좋아한다. ▶ 인스타그램 : @bookgeuk *김성라 (그림) 그림과 글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산책도, 저의 고양이 프린도, 좋아하는 그림과 글이 가득한 북극서점도 좋아합니다. 태어나고 자란 제주의 이야기를 담은 <고사리 가방> <귤사람> 등을 쓰고 그렸습니다. ▶ 인스타그램 : @seong_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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