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히 숫자만 보고 지나치는 달력, 그 안에는 많은 기념일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식목일’, ‘지구의 날’은 물론이고 ‘사막화 방지의 날’이나 ‘오존층 보호의 날’처럼 경각심을 심어주는 날도, ‘종이 안 쓰는 날’처럼 환경보호 실천을 장려하는 날도 있다. 각각의 기념일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전 세계 인류는 왜 달력에 이토록 많은 기념일을 새겨 넣은 걸까?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은 생태·환경·에너지 전문가 최원형의 신작으로 역사, 과학, 정치, 문화 등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환경 기념일의 기원과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나아가 환경오염이 먼 나라의, 타인의, 다른 동식물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향유하는 일상이 자연과 어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51가지 환경 기념일 이야기를 통해 친근하게 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최원형 작가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신작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은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달력 속 환경 기념일에 주목한다는 점이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어떤 책인지, 왜 ‘달력’이라는 컨셉으로 책을 쓰시게 되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축하 고맙습니다. 이 책은 세계 여러 나라가 따로 또 같이 환경⋅생태와 관련해서 기념하는 51가지나 되는 기념일을 담았습니다.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잡거나 어떤 일을 계획하기 위해 달력을 보잖아요. 그럴 때 날짜 곁에 깨알같이 적힌 글자가 제게 자꾸 말을 걸어오더라고요. 2011년 9월 순환 정전을 기억하시려나요?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막 들어서던 9월 15일, 기온이 35도까지 오르면서 냉방기 가동이 늘면서 전력소비량이 급증했어요. 전력부족이 우려되어 자칫하면 블랙아웃이 올 수도 있다고 판단한 전력거래소와 한전이 예고 없이 전력을 차단하는 일이 벌어진 거죠. 그래서 여러 학교와 기차역, 야구장이 갑자기 정전되었고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히는 등 혼란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보다 일주일 전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가 있었거든요. 이미 기온이 떨어져 이슬이 맺히는 날이어야 하는데 한여름 기온으로 올랐던 거예요. 날씨가 뒤죽박죽이구나를 그때 실감했달까요? 그 후로 계절이 흐를 때 절기와 날씨, 기온의 변화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어요. 폭염이 굉장했던 2018년 여름 한복판을 지나고 지쳐있을 팔월 초에 ‘입추’라는 글자가 들어왔는데 너무 반가웠어요. ‘곧 시원해질 거니깐 조금만 참어’, 라고 달력이 절 위로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어느 달력이든 절기는 다 적혀 있잖아요? 그러면서 달력과 가까워졌는데 ‘지구의 날’ ‘자원순환의 날’ 같은 기념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기념할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 달력에 적혀있을 텐데 생각보다 그 기념일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고요. 그래서 환경 관련한 기념일만이라도 사람들이 기억하면 좋지 않을까, 일상에서 환경을 생각하게 되면 우리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역사, 과학, 정치, 문화 등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환경 기념일에 얽힌 인문학 이야기를 다채롭게 설명해 주시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평소 환경과 관련된 다양한 배경지식은 어떻게 얻으시는 편인가요?
글을 쓰는 일이 업인 사람들은 너나없이 독서를 즐기잖아요? 많이 읽어야 또 쓸 거리가 생기니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제 전문분야는 환경, 생태지만 여러 영역의 책을 읽는 편이에요. 원래 호기심이 많기도 했고, 환경을 공부하다 보면 인문학적인 배경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고 그렇게 시작한 인문학 공부가 역사, 철학, 미술, 음악까지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어요. 깊이 있는 지식은 아니어도 요즘은 재밌고 읽기 쉬운 책이 워낙 많이 나와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다 보면 제 시야가 트이는 걸 느끼거든요. 너무 교과서 같은 대답이네요.
9월 29일 덴마크에서 정한 음식물 쓰레기의 날처럼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는 환경기념 일들이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우리나라에 꼭 만들어졌으면 하는 환경 기념일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중고의류 수출량이 전 세계 5위더라고요. 인구 규모로 보면 28위쯤이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만큼 옷을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집집이 옷장이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최근에는 집 사이즈가 커지면서 아예 옷방이 생기는 추세예요. 이건 정말 잘못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해서 ‘새 옷을 사지 않는 날’을 봄이 올 무렵 하루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미 유행이 지난 옷은 치워버리고 새 옷을 사려는 생각이 드니까 이 마음을 다잡기 위한 날이라고 할까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 있긴 한데, 특히나 옷 소비는 젠더, 인권, 불평등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이런 날이 하루 만들어지면 좋겠다 싶어요.
다른 하나는 ‘일주일에 하루 육식하지 않는 날’이에요. 육식 소비가 계속 증가추세인데요. 사스, 메르스도 그랬고 코로나19를 비롯한 인수공통감염병은 공장식 축산, 육식과 깊은 연결지점이 있어요. 그렇다고 채식이 완벽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쯤은 육식 없이 지내는 날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책에는 10월에 6가지나 되는 환경 기념일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중 독자님들께 소개해 주고 싶으신 환경 기념일이 있을까요? 짧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책에 소개한 모든 기념일이 사실은 다 기억해주셨으면 하는 날이어서 고르기가 어려운데요. 제가 이 책을 쓸 때 꽤 많이 울었어요. 가령 코끼리의 날이 있는데요. 장식으로 쓰기 위한 상아를 얻으려고 살아 있는 코끼리에게 전기톱을 들이대고 상아를 잘라요. 코끼리뿐이 아닙니다. 바닷속 상어도 비슷한 일을 겪어요. 사람들은 샥스핀 요리에 쓰려고 상어를 잡아서는 지느러미만 잘라내고 상어를 바다에 던져버리거든요. 상어는 부레가 없는 물고기라 헤엄을 치지 않으면 가라앉는데 지느러미가 없으니 어떻게 헤엄을 칠까요? 산 채로 서서히 가라앉으며 죽음을 맞이할 상어를 떠올리니 너무 힘들었어요. 동물과 관련한 기념일들은 꼭 한 번씩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비단 동물뿐이 아니에요. 세계 난민의 날, 국제 빈곤퇴치의 날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해요. 난민이나 빈곤 문제는 저개발국가 사람들만의 책임이 아니에요. 따지고 보면 가장 많은 책임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로 점령했던 유럽 여러 나라와 우리나라처럼 잘사는 나라에 있습니다. 잘사는 나라에서 배출한 온실가스로 기후가 변화하면서 가뭄과 홍수로 농사를 망치고 그로 인해 불안해진 사회에 내전이며 갈등이 악화되어 결국은 나라를 등지고 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니까요. 이런 기념일에 그들을 생각하고 도울 방법도 모색하면 좋겠습니다.
책 속에는 ‘전 세계가 깨끗한 물을 평등하게 누릴 방법은 없을까?’,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동물의 생명을 마음대로 빼앗아도 될까’ 등 환경과 관련하여 뜨거운 화두를 던지는 주제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주제들은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냥 모르고 지나쳐도 괜찮은 일과 몰랐기 때문에 불행이 커지는 일이 있다면 후자는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아로 만든 물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모른 채 좋아한다는 것은 코끼리에겐 더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지구 저편에서 벌어지는 고통을 우리가 외면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했을 때 그 고통은 끝내 우리의 고통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목숨과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게 이어진 끈이 있으니까요. 이 책을 읽는 독자님들은 그런 관점에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달이 바뀔 때마다 이 책에 담겨있는 기념일과 기념일에 담긴 의미를 주변에 널리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실천이 자기 자리와 목소리를 잃은 존재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첫 시작이라 생각하니까요.
책 속에 각 환경 기념일에 맞춘 ‘지구를 위한 오늘의 실천’이 110여 가지나 수록되어 있습니다. 평소 자연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생활을 지향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작가님께서 추천하시는 일상 속 실천법이 있을까요?
제 지론은 ‘착한 소비는 없다’입니다. 가능하면 물건을 사지 않아요. 필요한 물건이 떠오르면 일단 집에 있는 것들,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걸로 대체 가능한가를 먼저 생각해요. 이건 제가 환경을 생각한다기보다 물건 사는 일을 귀찮아해서 생긴 버릇이에요. 요즘은 선택 과부화 시대잖아요. 어떤 물건을 사려면 종류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어요. 그러니 점점 안 사게 되고요. 결과적으로 환경을 일상에서 실천하게 되었어요. 또 물건이 내 품격을 대신해준다는 게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알고 나니 비싼 물건, 유행하는 물건에 대한 흥미보다는 우려가 먼저 들거든요. 물건 소비는 결국 우리의 미래를 소비하는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이 책은 어떤 독자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까요? 책을 곧 만나보실 예비 독자님들께 한 마디 부탁드려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환경을 실천하고 싶은 교사, 집에서 환경친화적인 삶을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은 학부모, 환경에 이제 막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분들, 너무 공포스럽지 않고 가볍게 환경문제를 알고 싶은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기후가 ‘위기다’, ‘비상사태다’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인류 모두가 손 놓고 지구를 망가뜨리는 일만 했던 건 아니라는 걸 이 책을 쓰면서 저 역시 깨닫게 되었거든요.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놓인 생명들의 마지막 숨을 부여잡고 그들을 살리려는 인간의 뜨거운 마음이 기념일을 만들었구나 생각하며 ‘숭고함’이란 낱말을 자주 떠올렸어요. 이렇듯 기념일을 만든 모든 분께, 지금도 현장에서 자기 목소리와 자리를 잃은 이들을 대변하려 고군분투하는 이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독자님들도 저와 같은 마음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최원형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잡지사 기자와 EBS, KBS 방송 작가로 일했다. 서울시 에너지정책위원회에서 에너지 시민협력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대』,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선생님, 기후 위기가 뭐예요?』, 『착한 소비는 없다』, 『라면을 먹으면 숲이 사라져』, 『최원형의 청소년 소비 특강』, 『왜요, 기후가 어떤데요?』, 『10대와 통하는 환경과 생태 이야기』 등이 있다. “우연히 자작나무 한 그루에 반해 따라 들어간 여름 숲에서 아름답게 노래하는 큰유리새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와 자리를 갖지 못한 존재들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뭇 생명과 조화로운 삶이 세대에 걸쳐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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