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마음에 제주를 품고 산다. 그곳에 가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을 마주하고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사진작가 신미식에게도 제주는 그런 곳이다. 오랫동안 아프리카를 기반으로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해온 신미식 작가의 서른일곱 번째 책 『나에게만 보이는 풍경-제주』에는 우리가 꿈꾸는 제주의 위로와 휴식 그리고 생동하는 자연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신미식 작가가 10여 년간 카메라에 담아온 제주의 풍경들과 지난겨울 한동안 제주에 머물며 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숲이 생각나면 숲으로 들어가고, 바다가 부르면 바다로 달려가고, 가끔 육지에서 손님이 오면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보낸 편안한 시간이 그 자체로 위로와 휴식이 되고, 다시 살아갈 동력이 되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제주만이 간직한 매력을 이야기해줄 신미식 작가를 만나본다.
먼저 이 책이 작가님의 서른일곱 번째 책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 책을 내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2002년에 첫 책을 출간했고 그 이후 사진집과 포토에세이 작업을 꾸준히 병행했습니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쓰는 습관 덕에 책을 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이번에 낸 『나에게만 보이는 풍경-제주』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동안 전 세계 120개국 정도를 여행했는데 코로나19로 갑자기 갈 수 있는 나라가 없어진 상황에서 제주에 한 달 정도 머물 계획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예정보다 길어져 거의 두 달 가까이 머물렀고, 그러고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 책까지 내게 되었습니다.
제주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다녔는데, 이번에 좀 오래 머물면서 제주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겨울 끄트머리에서 만난 제주의 풍경들은 지금 제가 처한 현실과 많은 부분 같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고요. 그런 마음을 글과 사진에 담고 10여 년 전부터 기록했던 사진들도 더해서 한 권의 책을 내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주에 대해 자기만의 이미지나 의미를 간직하고 있을 텐데요. 작가님에게 제주란 어떤 곳인가요?
사실 그전까지는 제주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제주에 갈 때도 항상 가던 곳에 들르고 가끔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정도였습니다. 여행자들이 흔히 다니는 곳들을 다녀서인지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제주를 왜 사랑하는지, 그리고 제주의 본모습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곳들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 덕분인지 조금 쓸쓸할 때도 있긴 했지만, 제주에서 위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다른 곳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고민과 외로움을 털어낼 수 있었으니까요.
책 속에는 제주의 오래된 돌담집, 낡은 창고, 허름한 가게 같은 풍경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 풍경을 많이 찍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이상하리만치 오래된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물건도 그렇고, 건물도 그렇습니다. 멋지고 잘 지은 건물보다 낡고 오래된 건물을 보면 먼저 다가가게 돼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잘 살펴보면 그곳엔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가 있고 삶의 애환이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저를 자꾸만 이끄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제주에 갔을 때 우연히 바닷가에 있는 오래된 돌창고를 발견하고 네 번이나 그곳에 들렀습니다. 그곳에 나만의 작업실을 만드는 상상을 하면서요. 주인을 만난다면 떼를 써서라도 창고를 임대하고 싶었는데, 결국 주인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어요. 하지만 돌창고에 나만의 작업실을 만드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저와 비슷한 로망을 갖고 있을 것 같아요.
책 속에 등장하는 사진이나 이야기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세요.
이번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눈 내리는 숲 속을 담은 사진이에요. 겨울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 더 이상 눈은 없을 거라고 포기했을 때 갑자기 눈을 만났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마치 하늘에서 하얀 밀가루를 골고루 뿌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 일직선으로 곱게 내려오는 눈을 보면서 몇 시간을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어요. 사진가에겐 참 행복한 시간이었던 거죠.
제주 여행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단 한 곳만 추천한다면 어떤 곳이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숲을 좋아해서 동백동산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별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제주 특유의 정취를 품고 있는 숲길을 걸으며 사색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가면 숲의 생명력과 에너지가 분명 특별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보통 일 년에 절반가량은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보냈는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떠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가장 먼저 어느 나라를 여행하실 생각인가요?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지면 일단 마다가스카르에 가고 싶어요. 저에겐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니까요. 그곳 도서관에 제가 기증한 자동차가 있는데 그 차를 타고 한 달 정도 지방을 다닐 생각입니다. 다시 외국에 가게 되면 많은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더 소중하게 다가오겠죠.
마지막으로 사진을 잘 찍는 방법, 혹은 원하는 사진을 찍는 작가님만의 비법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의 의미와 방법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저도 여전히 그런 고민을 하고 있고, 다른 작가분들의 사진을 보면서 참고하기도 합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우선 다른 사진들을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보는 눈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현장에서는 기다리는 것이 중요해요. 인물도 그렇고, 풍경도 그렇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대상에 한 걸음 더 깊이 다가가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생각보다 한 템포 느리게 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미식 신미식은 아프리카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2006년 처음 아프리카를 여행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70회 이상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1년에 절반 가까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본인이 꿈꾸었던 삶을 살고 있다. 글과 사진으로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특별함을 꿈꾸게 하는 사람이다. 서른에 처음 카메라를 장만했고, 포토에세이 ‘머문자리’로 데뷔했다. 이후 20여 년 동안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매체에 글과 사진을 연재했다. 36권의 책을 펴냈으며, 20여회의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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