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그넌트> 제임스 완의 지알로
제임스 완은 죽음이 주가 되는 장르의 영화를 현재진행형으로 만드는 좋은 의미에서 악성(惡性)의 감독이다.
글ㆍ사진 허남웅(영화평론가)
202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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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리그넌트>의 한 장면

제임스 완의 공포물은 클래식한 요소를 의도적으로 포함한다. 그래서 영감을 받은 해당 영화의 뿌리를 찾아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쏘우>(2004)는 난도질 영화로 해석할 수 있는 1980년대의 ‘슬래셔’를 제한된 공간으로 옮겨 고문의 유희(?)를 극대화한 작품이었다. <컨저링>(2013)은 <엑소시스트>(1973)의 ‘오컬트’를 ‘귀신들린 집’의 하위 장르와 결합하여 전 세계에 공포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쿠아맨>(2018)의 슈퍼히어로 장르로 잠시 외도(?)했던 제임스 완의 신작은 <말리그넌트>다. 

매디슨(애나벨 윌리스)은 몇 번의 유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무사히 낳고 싶었는데 역시나 실패했다. 폭력 남편의 영향 때문인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매디슨에게는 상상의 친구 ‘가브리엘’이 있는데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매디슨은 유년 시절 이후 가브리엘과 관련한 기억을 상실하고 지냈었다. 다시 떠올린 건 남편이 의문의 침입자에게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면서다. 침입의 흔적이 없는데 집 안에서 숨진 걸 확인한 매디슨은 그제야 가브리엘을 떠올린다. 

매디슨은 상상의 친구 가브리엘이 현실에 나타나 벌인 사건이라고 형사에게 진술하지만, 황당하다는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그렇게 형사들이 핵심을 놓치고 있는 사이 매디슨은 자신과 다른 공간에 있는 가브리엘과 이어지면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을 연이어 목격한다. 매디슨의 남편을 제외하고 이들 피해자의 공통점은 1990년대에 같은 병원에 근무한 의사라는 것. 매디슨의 동생 시드니(매디 해슨)는 현재는 폐쇄된 문제의 병원을 찾아 매디슨과 가브리엘과 관련한 놀라운 출생의 비밀을 확인한다. 

병원이 중요한 장소라는 사실을 공지하듯 <말리그넌트>는 1993년 시점에서 이곳에 근무하는 의사의 비디오 녹화 영상으로 시작한다. 이 오프닝은 노골적으로 공포영화 팬의 향수를 자극하는 데가 있다. 영상을 통해 의사는 병원 내의 위험한 환자의 존재를 알리고 아니나 달라, 곧이어 피가 난무하는 의문의 살육 장면이 펼쳐진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살인이 벌어지고 이후 살인자를 찾는 데 주력하는 전개의 장르를 두고 ‘후던잇 Who done It?’이라고 통칭한다. 이의 장르를 가장 개성 있게 표출한 공포영화가 바로 ‘지알로 Giallo’다. 

지알로는 이탈리아어로 ‘노랑’을 의미한다. 1920년대 중반 이탈리아의 한 출판사가 노란색을 표지로 한 저가의 장르소설을 발표하고 이것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싸구려 가판 소설을 일컫는 말이 됐다. 이를 읽고 자란 세대가 영화감독이 되면서 1960년대에 이르러 이탈리아에서는 살인을 다룬 영화들이 큰 인기를 끌게 됐는데 자연스럽게 지알로라는 장르 이름이 붙었다. 이를 선도한 감독이 마리오 바바와 다리오 아르젠토이었고 이에 영향받은 연출자가 브라이언 드 팔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등이었다.


영화 <말리그넌트> 공식 포스터

제임스 완은 <말리그넌트>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영감의 원천은 내가 보고 자란 다양한 작품이었다. 나는 과감함이 돋보이는 공포와 스릴러 영화를 좋아한다. 다리오 아르젠토, 브라이언 드 팔마, 웨스 크레이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공포, 스릴러 영화를 구현하면서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그의 말처럼 언급한 감독들의 대표작 <필사의 추적>(1981) <비디오드롬>(1984) <스크림>(1993) 등의 영향이 짙게 베어 있지만, 그중 다리오 아르젠토를 향한 제임스 완의 애정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말리그넌트>의 가브리엘이 등장할 때마다 입고 나오는 검은 가죽 코트와 장갑은 다리오 아르젠토가 데뷔작 <수정 깃털의 새>(1970)부터 살인자를 묘사할 때 즐겨 활용했던 의상 미장센이었다. 지알로의 거장답게 다리오 아르젠토는 살해 장면에 유독 공을 들였는데 희생자의 고통을 즐기는 듯한 악취미적 연출과 그롤 보조하듯 흘러나오는 고블린 풍의 아트록 또한, 제임스 완은 고스란히 영화에 반영한다. 심지어 독창적인 살해 장면과 리듬감 있는 장면 구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논리를 비약하는 전개마저 제임스 완은 서슴지 않는다. 

그 때문에 지알로에 생소하거나 <컨저링> <인시디어스>(2010)의 초자연적 존재의 공포를 기대했던 팬들에게 <말리그넌트>는 황당한 설정과 널뛰는 이야기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그와 상관없이 <말리그넌트>는 이 장르의 팬들에게 매혹하게 하는 지점이 상당하다. 클래식한 공포물을 떠올리면서 이를 현대에 맞게 어떻게 개비했는지 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제목 ‘말리그넌트 Malignant’는 진행성으로 악화되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종양을 의미한다. 제임스 완은 죽음이 주가 되는 장르의 영화를 현재진행형으로 만드는 좋은 의미에서 악성(惡性)의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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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