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법을 종결하고 또 다른 길을 포장하는 빈스 스테이플스
작가적 의도를 너른 스펙트럼과 변색 능력으로 구현한 는 그래서 그의 행보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작품이다.
글ㆍ사진 이즘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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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출신 래퍼 빈스 스테이플스의 신보가 발매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꽤나 낯설다. 여러모로 빈스 스테이플스처럼 들리지 않는 작품이다. 날 선 감정과 냉소적인 통찰로 게토 현장을 보고하던 와 DJ 소피, 플룸 등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을 대동해 화끈한 사운드 실험을 감행한 를 즐긴 이들이라면 그가 가진 폭로의 미학과 섬뜩한 사운드의 맛을 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셀프 타이틀 앨범 에서 그는 과거 전법을 종결하듯 그와 또 다른 길을 포장(鋪裝)해 나아간다.

가장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지점은 프로덕션이다. 스타일리쉬하고 억센 사운드를 기반으로 짜릿한 청각적 쾌감을 자아내던 기존 문법에서 벗어나 미니멀한 비트를 속속 채웠다. 직전작 에서 예고된 간결함이기도 하나, 뾰족한 전자음을 더욱 억제하고 건조하고 흐릿한, 한편으로 편안하기까지 한 음향으로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또 다른 승부수다. 이 바탕에는 전작에서 빈스 스테이플스의 음반을 총괄하며 신뢰를 쌓은 프로듀서 케니 비츠가 중심을 잡고 있다. 모난 데 없는 전개, 일률적인 무드 형성이라는 취지의 단일 프로듀서 구성이다.

래핑 역시 이전과 궤를 달리한다. 특유의 강성 플로우와 타격감 있는 발성이 자취를 감추고 나른한 분위기에 맞춘 힘을 뺀, 웅얼거리는 랩이 대신 청각을 겨냥한다. 유행과 상업성으로의 편승이라는 의구심은 그 완성도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첫 곡 'Are you with that?'은 선명한 팝 멜로디를 지녔고 'The shining'의 랩과 노래 병렬은 안정적이며, 전염적인 훅의 'Mhm' 역시 새 국면의 그를 멋지게 장식하는 피날레다.

특히 메시지에 귀 기울이다 보면 생경한 변화의 의도를 십분 납득할 수 있기도 하다. 과거 빈스 스테이플스는 모든 것에 날카로웠다. 의 현실이라는 배경은 참혹했으며 그에 대한 복수는 과격한 수위의 비판, 폭로였다. 그러나 스물여덟 그는 시선을 보다 자신에게 돌리는 모습이다. 과거와 현재 심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끄집어내는 서사는 갱스터 생활의 거친 바닥에서 친구의 죽음 등을 목격하며 형성된 불안한 자아를 '팬들마저 믿지 못해 / 내가 너무 편집증적이어서'라는 'Sundown town'의 동정 없이 들을 수 없는 처연한 진술로 피워내는 식이다.

도처에 '죽은 녀석들!(Dead homies!)'이라 옛 친구들을 소환하거나, 친모의 법정 일화를 녹음한 스킷 'The apple & The tree'가 사실성을 부각하는 장치로 기능할 때는 실재적인 현장감이 정면에 펼쳐진다. 알앤비 가수 포우쉐(Foushee)가 피쳐링한 'Take me home'의 '내가 저지른 일들에 대한 꿈을 꾸고 싶지 않다'라는 구절이 상처받은 영혼을 압축한다. 그러면서도 확고한 긍지만큼은 여전해서, 'Lil fade'에서는 죽음의 위협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놓치지도 않는다.

이전 그의 까칠한 스탠스나 'Big fish' 같은 중독성 강한 뱅어를 원했다면 심심하게 다가올 수도 있으나, 음반은 특정 관습으로의 매몰을 견제함과 동시에 반대표를 던지기 어려운 수준급의 응집력과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이 게토 '르포'였다면 이번에는 탕아의 쌉싸름한 '일기장'이다. 작가적 의도를 너른 스펙트럼과 변색 능력으로 구현한 는 그래서 그의 행보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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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