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 흐름을 잇는 다섯 편의 팝
음악 팬들은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새로운 것, 즉 '뉴스탤지어'(new-stalgia)라서 반갑게 받아들인다. 레트로 흐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글ㆍ사진 이즘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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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의 호쾌한 역습이었다. 듀오 실크 소닉(Silk Sonic)의 'Leave the door open'은 현재 R&B 트렌드와는 다른 외형이었음에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다. 물론 히트의 동력으로 멤버들의 높은 인지도도 한몫했을 테다. 앤더슨 팩(Anderson .Paak)은 흑인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하며, 브루노 마스(Bruno Mars)는 세계적인 스타라서 인기를 얻기가 수월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1970년대 솔뮤직을 근사하게 복원했기에 음악 팬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실크 소닉만 예스러운 스타일을 소화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화되는 경우가 적으며, 상업적인 성공을 맛보는 이가 얼마 안 될 뿐이다. 복고는 한철 반짝하지 않고 음악계 곳곳에 자리해 있다. 어떤 뮤지션은 출범부터 복고를 아예 자신의 지향으로 삼기도 한다. 젊은 세대는 이런 음악이 익숙하지 않기에 신선하게 여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음악 팬들은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새로운 것, 즉 '뉴스탤지어'(new-stalgia)라서 반갑게 받아들인다. 레트로 흐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앤 마리(Anne-Marie) 'Friends'

국지성 복고다. 영국 가수 앤마리의 2018년 싱글 'Friends'는 특정 부분에서만 타임머신을 가동한다. 노래를 프로듀스한 미국 디제이 마시멜로(Marshmello)는 팝의 자재를 쌓아 올리다가 2분 31초부터 2분 49초까지 19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마감재를 붙인다. 얇게 고음을 내는 신시사이저 연주. 미국 서부 힙합의 특산물인 지펑크(G-funk)가 나타낸 특징적 사운드다. 미국 펑크 밴드 오하이오 플레이어스(Ohio Players)가 1972년에 발표한 'Funky worm'의 신시사이저 연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프로듀서 겸 래퍼 닥터 드레(Dr. Dre)는 이를 샘플로 활용하면서 지펑크의 주요 틀 하나를 완성했다.

마시멜로는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을 하지만 파 이스트 무브먼트(Far East Movement), 릴 핍(Lil Peep), 주시 제이(Juicy J), 미고스(Migos), 로디 리치(Roddy Ricch) 등 여러 래퍼와 활발하게 협업해 오고 있다. 이제는 그가 힙합 비트를 만드는 게 어색하지 않다. 'Friends'에 지펑크 요소를 넣은 것으로도 힙합에 대한 애정이 각별함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그도 90년대 힙합을 그리워하는 듯하다.




데스티니 로저스(Destiny Rogers) 'West like'

미국 가수 데스티니 로저스가 5월에 발표한 'West like'도 청취자들을 90년대로 안내한다. 이 시기 미국 서부에서는 지펑크와 함께 치카노 랩(Chicano rap)이 성행했다. 멕시코계 미국인을 칭하는 스페인어 '치카노'가 이 음악을 하는 집단을 직접적으로 알려 준다. 이와 함께 치카노 랩은 펑크에서 추출한 묵직하면서도 느긋하게 연출한 드럼 비트, 연하게 들어간 신시사이저, 토크박스 보컬을 음악적 특징으로 둔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를 찬양하는 'West like'는 랩은 하지 않지만 치카노 랩의 전형을 전시한다. 사실 치카노 랩의 음악적 속성은 지금도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치카노 랩의 영토가 현저히 좁아져서 'West like'가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추억의 부피가 곱절이 된다. 서부에서 유행한 로우라이더 자동차와 로우라이더 자전거, 멕시코계 사람들이 즐겨 입는 디키즈 면바지, 컨버스 운동화, 체크무늬 셔츠 등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차량과 출연자들의 복장이 또 한 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데스티니 로저스가 캘리포니아주 태생인 데에다가 어머니가 멕시코 혈통이라서 음악뿐만 아니라 영상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2019년 데뷔 싱글 'Tomboy'에서 자신은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라고 천명한 데스티니 로저스는 'West like' 뮤직비디오에서도 활달한 면모를 보여 준다.




듀랜드 존스 앤드 디 인디케이션스(Durand Jones & The Indications) 'Love will work it out'

미국 인디애나주 출신의 듀랜드 존스 앤드 디 인디케이션스는 솔뮤직 리바이벌을 기치로 내걸고 결성됐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재키 윌슨(Jackie Wilson), 샘 쿡(Sam Cooke), 임프레션스(The Impressions) 같은 가수들이 떠오른다. 그만큼 옛날 솔뮤직의 질감을 잘 구현한다. 하지만 거칠고 투박했던 2016년의 첫 앨범과 달리 2019년에 낸 2집에서는 훨씬 부드러운 사운드를 들려줬다.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이나 필라델피아 솔 그룹들이 연상되는 음악이었다. 그래도 두 음반 다 멋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듀랜드 존스 앤드 디 인티케이션스는 7월 말 세 번째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정식 출시 전에 싱글 세 편을 공개한 상태. 'Love will work it out'은 R&B의 인자를 주입한 80년대 소프트 록에 보비 콜드웰(Bobby Caldwell)의 1978년 싱글 'What you won't do for love'를 섞은 느낌이다. 'Witchoo'는 가벼운 펑크이며, 'The way that I do'는 디스코다. 이번에도 그룹의 음악적 방향은 과거에 닻을 내리고 있지만 곡은 점점 매끈해지는 중이다.

밴드의 드러머이자 세컨드 보컬리스트인 에런 프레이저(Aaron Frazer)도 올해 첫 솔로 앨범 을 발표했다. 애초에 그룹을 만들기 전부터 에런 역시 옛날 솔뮤직에 강한 애정을 갖고 던 터라 솔로 앨범도 당연히 과거의 정서를 복원한 노래들로 꾸렸다. 가성을 활용해 곡들은 무척 부드럽게 느껴진다. 6, 70년대 솔뮤직을 좋아하는 이라면 웬만해서는 반한다.




덤프스타펑크(Dumpstaphunk)

펑크가 흔하지 않은 시대다. 아주 가끔 마크 론슨(Mark Ronson)의 'Uptown funk' 같은 히트곡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브루노 마스의 인지도 덕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게다가 미끈하고 댄서블한 맛이 있어야 뜰 수 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괄괄하고 진한 음악을 들려주는 미국 밴드 덤프스타펑크는 단비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올해 발표한 세 번째 정규 앨범 도 매우 억세다. 그러면서도 매력적이다. 관악기로 경쾌함과 풍성함을 발산하는 가운데 힘찬 보컬이 노래들의 열기를 높인다. 때로는 하드록을 접목해 펑크 록을 들려주기도 하며, 어떤 곡에서는 가스펠 형태를 내보이기도 한다. 앨범 사이사이 위치한 연주곡들은 현장감 넘치는 공연처럼 느껴질 듯하다. 펑크가 고사해 버린 지 오래됐지만 덤프스타펑크의 음악으로 70년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로라 음불라(Laura Mvula)

이렇다 할 히트곡은 없지만 영국 가수 로라 음불라(Laura Mvula)는 오묘하면서도 단단한 음악으로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3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은 체임버 팝, 오케스트럴 팝에 근간을 둔 네오 솔 스타일로 독자성을 뽐냈고, 2016년에 낸 2집 은 넘실거리는 리듬을 추가한 얼터너티브 R&B로 또 다른 특색을 내보였다. 또한 R&B의 유연한 창법을 사용하는 대신 보컬을 여러 겹 포개는 연출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다.

R&B를 주메뉴로 삼던 로라 음불라는 이달 출시한 3집 에서 팝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가 하는 팝은 밋밋한 팝이 아니다. 80년대의 사운드를 재현한 음악이라서 흥미롭다. 그 시절의 신시사이저, 드럼 톤을 흡족스럽게 흉내 냈으며, 여백이 있는 믹싱까지 완수해 과거를 되살린다. 팝을 하든 신스팝을 하든, 그때의 분위기가 진하게 묻어난다.

영국 록 밴드 비피 클라이로(Biffy Clyro)의 프런트맨 사이먼 닐(Simon Neil)과 함께 부른 어덜트 컨템퍼러리 'What matters'의 뮤직비디오도 재미있다. 의상, 소품, 마이크 모두 80년대에 익히 보던 것이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얼핏 보면 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와 마이클 맥도널드(Michael McDonald)가 듀엣을 하는 그림이다. 복고로 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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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