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가 진행하는 글쓰기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대상 수상자들이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에세이스트의 일상에서 발견한 빛나는 문장을 따라가 보세요. |
“여기 어디야?”
우리집에 처음 놀러 온 지인들 대부분은 거실 책장에 놓여있는 내 독사진을 보고 궁금해했다. 그 사진은 신혼여행 때 빈국립오페라극장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신혼여행을 오스트리아로 다녀왔다. 그곳이 모차르트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 중심에는 모차르트가 있었다. 클래식을 좋아하긴 하나 깊이 알지 못했던 나에게 남편은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에 대해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지금도 ‘모차르트’ 하면 사랑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12년 전 나는 한 남자와 예술의전당 앞 카페에서 소개팅을 했다. 내가 묻는 말에 심드렁하게 답하는 그가 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를 또 만날 필요는 없겠다고 마음이 기울었는데 그에게서 중남미문화원에 가자는 문자가 왔다. 나는 남자보다 장소가 마음에 들어 두 번째 만남을 이어갔다. 그곳에 다녀오자 그에 대한 마음이 조금 열려 다음 약속을 잡았다. 우리는 창덕궁에 가서 후원을 느리게 걸으며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밤 그는 다음 주말에 같이 오페라를 보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였다. 이제껏 나에게 ‘마술피리’를 보러 가자는 남자는 없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예술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그를 좋아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무척 행복한 두 사람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청첩장을 돌리고 모차르트가 사랑한 도시로 갔다.
빈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 우리는 표를 예매하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우리가 볼 수 있는 오페라는 낯선 제목의 ‘엘렉트라’뿐이었다. 그래도 빈국립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표를 샀다. 그날 저녁 우리는 가져온 옷 중 가장 괜찮은 옷을 골라 입고 오페라극장에 갔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니 금빛 실내 장식과 붉은 꽃잎 같은 객석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두근댔다. 그곳은 마치 다른 세계 같았다. 영화제 시상식 때나 볼 법한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관객들이 많아 더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황홀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졸음이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다. 무대는 시종일관 어두컴컴했고, 두 여자가 싸우는 장면만 계속 나왔다. 출연자들의 실력이 좋은 건 알겠는데 도무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옆을 보니 남편도 잠이 와서 괴로워했다. 빈에서 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졸음을 쫓으려 남편 손에다 손가락으로 글씨를 썼다. ‘졸려.’ 남편도 내 손에다 글씨를 썼다. ‘나도.’ 우리는 오페라를 보는 내내 서로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가며 버텼다. 나중에 찾아보니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딸이 복수하는 비극적인 내용의 오페라였다. 결코 신혼여행에 어울리는 오페라는 아니었다. 우리는 가끔 그때 일을 얘기하며 웃는다.
그날의 사진을 거실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 건 그때를 자꾸 떠올리고 싶어서다. 나에게는 결혼식 당일보다 그때가 더 충만하고 행복한 날이었다. 남편이 찍어준 그 사진을 보면 그때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남편의 얼굴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진에는 70대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도 담겨 있다. 그 노부부는 우리 부부가 바라는 모습이기도 하다.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도 단정한 옷차림으로 서로 손을 잡고 음악회에 가길. 그렇게 함께 좋아하는 것을 나누며 늙어가길.
결혼을 해보니 내가 꿈꾸던 결혼생활과는 많이 다르다. 직장 다니랴, 아이 키우랴 매일 해야 할 일들에 치여 하루를 살아내기 바쁘다. 남편과 단둘이 한가로이 공연장을 찾을 시간과 여유는 없다. 대신 어쩌다 한 번씩 안방 천장에 빔프로젝터를 쏴서 아이와 함께 셋이 침대에 누워 유튜브로 빈필하모닉 연주 영상을 본다. 지금은 그렇게 산다. 이따금 사진을 바라본다. 그리고 웃는다. 그날 하루가 오늘을 살아가게 만든다.
*진혜련 ‘나아지는 것’ 그리고 ‘계속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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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련(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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