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오늘 주제는 ‘나에게 좋은 자극을 준 책’입니다.
캘리: 작년에 은근히 자극적인 책이라는 주제로 녹음했었는데요. 오늘의 자극은 완전히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불현듯(오은): 그때의 자극이 약간 마라탕 같은 느낌이라면(웃음) 이번에는 피톤치드 같은 느낌이죠. 내가 건강해지고 있어,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느낌을 주는 자극이 아닌가 싶어요.
프랑소와 엄: 저는 책을 통해서라도 건강한 자극을 받아보자 하는 생각으로 강력 추천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볼프강 M. 헤클 저 / 조연주 역 | 양철북
카피 한 줄 꽂혀서 샀어요. 표지 뒤편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곧 내 삶이 된다.” 저는 스마트폰을 7년째 사용하고 있어요. 아직 꽤 쓸 만하거든요. 하나 아쉬운 건 배터리인데요. 하지만 나머지는 문제가 없고요. 신제품에 새로 나온 기능들도 내게 절실한 것은 아니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게다가 오래 사용할수록 여기에 나의 역사가 새겨지기도 하죠. 다양한 얘깃거리가 이 물건 안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이것을 잘 관리해서 오래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돼요. 또 그런 물건에 담겨 있는 기억 그 자체가 나의 삶이기도 하죠.
저자는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국립독일박물관 관장이에요. 이 사람은 자동차도 웬만하면 직접 수리를 해보려고 하고요. 집에 있는 수영장 펌프, 변기도 다 분해해서 직접 수리하는 일을 굉장히 좋아하는, 그 행위가 아주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에요. 저자는 직접 무언가를 고치고, 수리해서 사용하는 일이 우리에게 지속성을 경험하게 하고,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과 나를 의미 있게 연결해준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사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이 거리가 가까워져야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이 된다고 말하고 있어요.
내가 어떤 물건을 고칠 수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 자체가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주잖아요. 하다못해 전구 하나만 갈아도 속이 상쾌하죠. 저자가 물리학자라서 물리학에 대한 얘기도 있고, 그것을 리페어 컬처와 어떻게 연결해 이해할 수 있는지도 보여주는데요. 삶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거나 ‘나는 몰라’ 하고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을 끝까지 알아보려고 하는 과학적인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얘기해서 좋았어요. 저자는 수리하고 수선하는 사람이 되면서 근본적으로 무슨 일이건 끝까지 파헤치려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거든요. 그 태도가 큰 자극이 됐고요. 어떤 물건을 우리가 살 때 오래 쓸 수 있는지, 거기에 내가 돈을 조금 더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서윤후 저 | 바다출판사
제목부터 저를 사로잡은 책이에요. 목차를 보면 서윤후 시인이 그만둔 게 꽤 많더라고요. 일기 쓰기의 부끄러움, 꽃 정기구독, 빈티지 옷 쇼핑,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꿈, 빵 욕심, 무섭고 매운 것 먹기 등. 어떻게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요. 이 책은 한 권의 노트에서 시작됐다고 해요. 더운 나라에 갔다 온 친구가 서윤후 시인에게 노트를 건네면서 “너라면 이 공책을 기쁘게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한 거죠. 선물보다 그 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고 시인은 밝히고요. 며칠 동안 이 공책의 쓸모를 고민하다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이라고 말이죠. 시인은 그만두길 잘한 것들을 적다 보니 내가 해야 했을 일, 여전히 지키기 위해서 애쓰는 일 그리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목소리도 같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심리 상담’ 챕터가 있거든요. 시인이 심리 상담도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것을 그만두게 된 이유가 뭔지 아세요? 상담사에게도 잘 보이고 싶어서 부끄럽거나 감추고자 하는 것들을 끝내 말하지 않고, 다른 것들만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그만두기의 양상도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그만두게 될 때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기도 하지만 이것이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누군가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나를 꾸며내는 일을 또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시인은 그 중 일기만큼은 그만두지 않고 계속 쓰고 있다고 해요. 흥미로운 것은 20대 때의 일기와 30대 일기가 달라졌다는 점이에요.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했던 20대의 일기와 다르게 30대의 일기는 무언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 내용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는 거죠. 20대의 일기는 이렇습니다. “매운 것을 잘 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를 잘 품어주는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한편 30대에 쓴 일기는 이렇습니다. “속 좁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빈말로 안부를 전하지 말아야지. 내 슬픔을 모르는 척하지 말아야지. 희망을 촌스럽게 말하지 말아야지. 쇼핑을 그만해야지. 할 수 없는 건 못한다고 말해야지.” 새로 시작한 것뿐만 아니라 그만둔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면 나의 삶이 조금 보일 것 같아요. 책을 읽고, 각자의 목록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모빌스 그룹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책 표지 너무 귀엽죠. ‘마조’라는 캐릭터예요. 모빌스 그룹이 지은 책인데요. 이 그룹의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모빌스 그룹이라고 하면 큰 조직인가, 큰 회사인가 싶을 거예요. 하지만 세 명이 창업한 회사입니다. 일종의 그룹 사운드처럼, 작은 조직인데 어떤 멤버가 왔다가 갈 수도 있는 유연한 정체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저자는 ‘모춘’, ‘소호’, ‘대오’ 세 분이고요. 이들이 유튜브 채널 <모티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빌스 그룹이 어떻게 확장했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어요. 저는 책을 먼저 읽고 <모티비>를 구독하게 됐는데요. 영상이 진짜 재미있어요. 『프리워커스』를 예스24에서 검색하면 책 소개 페이지에 영상이 뜹니다. 북트레일러인데요. 이 영상을 보시면 이 그룹에 대해서 궁금함이 생기실 거예요.
일에 대해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창작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있는 시기인데요. 그런 찰나에 <모티비>를 보게 된 거죠. 요즘은 많은 분들이 좋은 조직에 있어도 내가 충만함을 느끼지 못하고, 조직 내에서 자기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 조직에 있는 것을 힘들어하시잖아요. 모빌스 그룹은 그런 20대, 30대들에게 어떻게 메시지를 줄 것인가 고민하는 회사거든요. 결정적으로 이 세 분이 추구하는 건 주어진 일이라고 하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좀 더 재미있게 일하자는 것이고요. 요즘에는 일보다 개인 삶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책의 저자들은 일하는 데서 충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런 태도도 정말 좋았어요.
<모티비>에 『프리워커스』 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도 영상으로 남겨 두었더라고요. 저자 분들이 디자인과 가독성을 고민하는 모습이 잘 담겨 있고요. 가독성만큼이나 엣지 같은 것들도 얼마나 신경 썼는지 볼 수 있어요. 약간 굿즈 같은 책이지 않을까 싶지만 내용도 굉장히 탄탄하고, 글도 아주 매끄럽고 잘 읽혀서 좋았습니다. 이런 조직이 우리나라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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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