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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적인 책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91회)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욕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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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 삼천포책방입니다. (2021.06.10)


삶의 비어있음을 탁월하게 다룬 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경쾌한 궁궐 이야기가 담긴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여성의 욕구에 대해 솔직하게 쓴 에세이 『욕구들』을 준비했습니다.


톨콩(김하나)의 선택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저/김승욱 역 | 문학동네



2014년에 ‘맨부커상’을 받은 책이에요. 심사위원장이 뭐라고 표현했냐면 ‘몇 해간 정말 좋은 작품들이 맨부커상을 받았지만 올해 수상작은 그야말로 걸작이다.’ 그러니까 ‘맨부커 오브 맨부커’라고 얘기를 한 거죠. 리처드 플래너건은 1961년생이고 호주 남단에 있는 태즈메이니아라고 하는 섬 출신입니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이라고 하는 제목은 바쇼가 쓴 하이쿠 모음집의 영어 제목으로 나왔던 거고요. 목차를 봐도, 하이쿠 거장들인 바쇼와 잇사의 하이쿠 한 편 한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은 도리고 에번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어 있어요. 이 노인은 호주에서 아주 유명인사이고 직업은 의사입니다. 유명인사가 된 이유는 전쟁 영웅이었기 때문이에요. 중년 즈음에 다큐멘터리가 나오면서 이 사람의 삶이 조명을 받고요. 지금은 결혼한 지 아주 오래된 아내와 살고 있지만 이 사람은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고 있어요.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맨 처음에는 아주 어린 시절로 시작하지만 지금 노인이 된 상태가 나왔다가, 이 사람이 젊은 시절에 전쟁터로 가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2차 대전 때 징집되어서 갔다가 일본군의 포로가 된 거예요. 그래서 아시아를 가로질러 태국으로 가게 됩니다. 당시에 일본은 점점 열세로 몰리면서 이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태국에 철로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워요. 거기에 도리고 에번스와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는 거죠. 철로를 짓기 위한 기둥들이 심어져 있는 현장을 사람들은 ‘라인’이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보면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그런 철로를 놓기 위해서, 나중에는 결국 철로를 놓지도 못했고, 거기에서 제대로 된 자원이나 어떤 시스템도 없이 엄청나게 계속해서 동원되어서 헛짓거리를 하는 거죠. 그러고 난 뒤에 죽어갑니다. 전염병도 돌고요. 너무 비위생적이고 비인간적이고 엄청난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차례 바로 직전에 헌사가 있습니다. ‘335번 포로에게’라고 적혀 있어요. 이 포로는 리처드 플래너건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바로 그 징용 현장에서 호주군 포로로서 일하다가 돌아온 사람인 거죠. 그리고 한 장을 넘겨보면 파울 첼란의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 그들은 시를 써요’라고 되어있어요. 제가 방금 개죽음의 현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 때는 이 소설에 대한 인상이 너무 참혹하고 르포적이고 그렇게 받아들여지지만 ‘어머니, 그들은 시를 써요’라는 말처럼 이 책은 너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적인 책이에요. 

도리고 에번스라고 하는, 한때 아주 영웅적인 인간이었고 지금은 타락했다고 할 수 있는 말년을 살고 있는, 하지만 어떤 영웅성이 자기 인생 안에는 있었던 어떤 사람을 통해서 인생과 의미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아까 철로를 놓는 것이 ‘라인’이라고 불렸다고 했잖아요. 선과 원에 대한 어떤 것이 상징으로 등장을 하는데, 원이라고 하는 것도 아주 미세하게 잘라 들어가면 거의 직선에 가까운 데까지 가죠. 이 선들이 다 모이게 되면 원이 될 수도 있죠. 근데 한 개개인의 삶은 결국 선이 원이 되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끝이 나죠. 그 선과 원 사이가 서로 울림을 만들어내면서 이 두꺼운 책을 쌓아 가는데, 아주 사실적인 핍진한 묘사와 너무나 아름다운 삶의 어떤 깨달음 비어 있음이나 무상함 같은 것을 너무나 탁월하게 잘 다룬 소설이었습니다.



그냥의 선택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김서울 저 | 놀



올해는 봄이 굉장히 짧았던 것 같지만, 5월 말에 너무 좋은 날씨들이 며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을 만났을 때 ‘그래, 이 시점엔 이곳으로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이야 사시사철 언제 가도 좋지만, 이렇게 봄꽃이 피고 공기가 조금 나른하고 바람이 살랑 불 때 가면 정말 끝내주지 않습니까? 

김서울 저자는 대학에서 전통 회화를 전공했어요. 아무래도 박물관이나 아니면 유물 유적 보관 장소에 자주 드나들게 됐고, 스스로를 ‘유물 애호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앞서 쓰신 책으로는 『유물즈』, 『뮤지엄 서울』이 있습니다. 

첫 장의 제목이 ‘초심자도 마니아도 궁며드는’이에요. 그리고 다른 내용을 보면, 경복궁에 가면 홀로 키가 훤칠하게 크고 좌우로 시원하게 뻗은 나무가 한 그루 있대요. 저자가 그 나무를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데, 관련 기록을 찾아봐도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나무에 이름을 붙여주셨어요. ‘댄스댄스 레볼루션’이라고. (웃음) 이 책의 결이 어떤지 아시겠죠? 경쾌함과 캐주얼함이 있는 책이에요. 띠지에도 ‘태정태세문단세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이상하고 재미있는 궁궐 탐방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학술적인 딱딱한 내용으로 궁궐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고 궁궐을 다니면서 우리 눈에 포착되는 것들,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성, 그걸 보면서 하는 상상, 그것에 얽힌 이야기들을 함께 볼 수 있는 책입니다. 

1장에는 서울에 있는 다섯 궁에 대한 간략한 내용, 소개가 나오고요. 조선의 궁은 나무와 돌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하는데요. 2장은 돌에 대한, 3장은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궁에 가시기 전에 이 책을 읽고 가시면 예전과 다른 것들이 보이실 것 같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욕구들』

캐롤라인 냅 저/정지인 역 | 북하우스



캐롤라인 냅은 최근에 『명랑한 은둔자』라는 책으로 사람들한테 많이 소개된 적이 있죠. 저도 『명랑한 은둔자』를 읽고 나서 이제 이 분의 글이 좋아서 『드링킹』이라는 전작을 읽고, 세 번째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캐롤라인 냅은 엘리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는 정신분석가였고 어머니는 화가이자 주부였고, (작가는) 브라운대학을 졸업하고 저널리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했었습니다. 1959년생인데 2002년에 돌아가셨어요.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셈이죠. 이 분의 책을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인텔리적인 삶에 비해서 굉장히 모든 것에 중독이 돼 있는 상태의 사람이었어요. 

『욕구들』이라는 책은 (작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탈고를 한 유고작에 가까운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원제는 ‘Appetites’예요. 욕구보다는 욕망 혹은 식욕에 가까운 건데, 에피타이트라는 단어 자체가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음식에 대한 갈망이 첫 번째 뜻이고, 두 번째는 음식이 아닌 어떤 것이라도 뭔가를 원하거나 욕구하는 것을 에피타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을 한다면 ‘구미가 당긴다’라고 했을 때의 뜻하고 거의 비슷할 것 같아요. 식욕에 대한 얘기고 먹는 것에 대한 얘기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어떤 것을 원하는 상태에 관한 에세이이고요. 이 분이 글을 잘 쓴다는 거는 익히 다들 알고 계신 바여서 문장이나 글쓰기 솜씨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게 없을 것 같아요.  내용을 위주로 말씀을 드리면, 캐롤라인 냅이 20대였을 때 거식증에 상당히 오래 빠져 있던 때가 있었어요. 37kg까지 살을 뺐던 적이 있고 그 기간 동안에 자기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 책을 쓰다 보니까 ‘내가 겪었던 경험이 단순히 식욕의 문제가 아니고 따지고 보니까 모든 종류의 여성의 욕구랑 연관이 되어 있더라’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돼요. 작가가 봤을 때는 쇼핑 중독에 빠진 여성이나 폭식증에 걸린 여성이나 거식증에 걸린 여성이나 어떤 관계에 집착해서 섹스 중독에 걸린 여성이나, 어찌 됐든 어떤 뿌리 같은 것은 같다는 느낌이 있는 거죠. 내가 지금 뭔가가 부족하고, 그럼 그걸 채울 뭔가를 찾아내고, 그걸 사거나 아니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걸로 수렴이 된다는 거예요. 

여성의 욕구라는 면에서 10년 넘게 생각을 하고 계셨던 분인 것 같아요. 그런 글이 이렇게 나와 있다는 것도 반가웠고요. 읽으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공감하는 것도 있지만 ‘이 정도로 욕구를 생각하고 이 정도로 처절하게 썼구나’라는 생각에 공감이 돼요. 내가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솔직하게 쓰거든요. 이 정도로 쓸 수 있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그리고 여러 모로 지금 상황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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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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