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매니지먼트'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인 이구용 대표는, 축구로 치면 적재적소에 공을 뿌리는 능력 있는 미드필더 역할을 한다. 해외로 간 한국문학의 역사에서 그가 보여준 종횡은 그야말로 헌신적이고 눈부시다.
‘판권 수출 전문 에이전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작가 즉 지식재산권 소유자를 대신해 원고부터 작품까지 관리하고 해외 출판시장에 유통하는 일련의 과정을 컨트롤한다.
처음 수출을 계약한 책이 궁금하다.
영미권을 기준으로 하면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한국문학 첫 해외 수출 사례다. 2005년의 일이다. 그 뒤로 조경란의 『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한강의 『채식주의자』 등이 이어졌다.
에이전트는 1995년에 시작했다고 들었다. 첫 수출 계약을 한 시점과 무려 10년의 시차가 있다.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문학에 대한 해외 인지도와 관심은 전무한 수준이었다. 일본만 해도 무라카미 하루키 등 여러 작가의 책들이 영미권에 유통 중이었는데, 한국문학은 존재감이 미미했다.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많은 작품이 번역 출판됐지만 독자와의 접점이 당시 일본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다.
아시아리터러리에이전시 켈리 팰커너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더라. “『엄마를 부탁해』의 미국 시장 진출이 해외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면, 『채식주의자』의 맨부커 국제상 수상은 센세이션이었다.” 이 두 가지 상징적 사건이 모두 당신의 손에서 빚어진 일이다.
2011년 4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곧장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지금까지도 유일한 사례다.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맨아시아 문학상까지 수상하며 문단과 언론과 시장의 반응을 모두 이끌어냈다. 41개 나라에 판권이 팔렸고 현재까지도 번역 출판 중이다. 그 시점부터 리액션이 없던 해외 출판 관계자들의 피드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30개 나라에 판권이 팔리고 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다음엔 맨부커 국제상을 거머쥔 『채식주의자』가 바통을 이었다. 명실상부, 한국문학의 위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상황을 맞은 것이다.
문학 판권을 수출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한다면?
일단 매일 책을 읽어야 한다. 여러 작가,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해야 해서 일일 드라마 보듯 조금씩 읽는다. 책을 읽을 때는 겹눈으로 봐야 한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자 문화 상품인 소설을 찾아내는 눈, 해외에 어필할 작품을 찾는 에이전트의 눈, 해외 편집자나 에이전트가 만족할까 고민하는 눈. 최종적으로 책이 서점에 갔을 때 독자들이 낯선 작가의 작품에 10달러를 지불하고 읽을까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그 다양한 시선을 만족시키는 공통분모가 확실한 작품을 적극적, 전략적으로 진행한다. 우선 작품이 정해지면 영미권 담당자들이 읽을 수 있게 샘플 번역과 시놉시스를 준비한다. 샘플 번역은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맛없는 음식이면 구입하지 않는 걸 떠올리면 된다. 최상의 퀄리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작품에 어울리는 번역가가 번역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현지 출판사의 검증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샘플 번역이 아무리 베스트여도, 함께 제공한 한국어판 본문 자료를 리포트할 사람을 찾아서 별도의 피드백을 받는다. 그런 다음 편집, 마케팅 부서가 전체 회의를 하고 압도적인 의견 일치를 본 다음이라야 계약에 이르게 된다.
결과만 전해 듣는 일반 독자 입장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긴 시간이다.
평균 얼마나 걸릴 것 같나.(웃음) 『채식주의자』는 책이 나오자마자 해외에 소개했는데 최종 계약까지 7년이 걸렸다. 편혜영 작가의 『재와 빨강』은 6년 걸렸다. 10년 넘게 소개 중인데 아직 계약이 안 된 작품도 있다. 한 권의 책을 수출하는 데 통상 1~2년 정도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수입은 제로다. 문학 수출 에이전트의 리얼한 고충이다. 긴 호흡인 문학 수출뿐 아니라, 그림책과 비문학처럼 빠른 순환이 가능한 타이틀을 아시아권으로 수출하는 걸 병행하는 건 그 때문이다.
언어권에 따라 특별히 선호하는 한국문학이 있을까?
어떤 나라든 공통적으로 묻는 건 있다. 한국에서 몇 부 팔렸냐, 몇 개 언어권에 팔렸냐, 어떤 상을 받았냐, 독자와 시장, 문단에서의 평은 어떠냐. 달리 말하면,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확보한 작가를 고른다는 의미다. 물론 둘 중에서 우선 고려하는 건 단연 작품성이다.
‘해외에서 관심을 끄는 작가’라고 하면 유명 작가들이 줄줄이 호명된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해외에서 기대를 모으는 작가를 호명해본다면?
『망원동 브라더스』로 세계문학상을 받은 김호연 작가는 『파우스터』가 독일에 팔렸는데, 전문 작가 영역에선 살짝 미지의 작가지만 잠재력과 비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재한 작가의 『미남당 사건수첩』은 대중적 코드의 미스터리물인데, 프랑스에 번역 출판됐다. 이런 스타일의 작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고 있다.
비유하면, 문학작품이 수출 원자재인 셈이다. 수출 시장의 전위를 누빈 경험을 바탕 삼아 한국 작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국 작가들은 굉장히 감각 있고 내공도 깊다. 쓰고 싶은 걸 쓰는 게 작가지만, 가끔 작가들이 해외 출판 시장에 대한 이해, 해외 독자 트렌드를 조금만 염두에 두고 작품 활동에 참고한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로벌 작가로서 70억 인구를 잠정적인 독자라고 생각해 작품을 쓰는 거다. 그런 부분에 관심 있는 작가에게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기회나 공간이 제공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지금의 성과를 좀 더 확장하려면 미래의 스탠스를 어떻게 취해야 할까?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작품을 해외 시장에 소개할 필요가 있다. 예술성 있는 작품, 대중적 서사에 강점을 지닌 작품, 카테고리를 나누면 SF, 추리, 호러, 스릴러 등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이 나가야 한다. 해외 출판 관계자들이 ‘한국문학에 이런 스타일도 있네’ 하는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연착륙했을 때 산업적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본다.
KL 매니지먼트가 기대하는 올해의 성과가 있을까?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 시장에 나간 지 딱 10년인데, 우연히도 신경숙 작가의 신작 『아버지에게 갔었어』가 해외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샘플 번역과 시놉시스 준비가 끝났고, 조만간 판권 세일즈와 관련한 성과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올해 1월 26일 미국에서 번역 출판됐는데,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반응이 꾸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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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