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두려움의 문이 있다. 그 문 안에서 운명에 이끌려 갈 것인가, 문을 넘어 직접 운명을 이끌 것인가? 여기, 죽음과 삶의 경계인 ‘시구문’을 넘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특별한 아이들이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성문 안에서의 삶을 끊어내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아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 『시구문』이다. 조선시대 무당의 딸이라는 독특한 이야기지만 공감하기 충분한 것은, 시대가 변해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의 고민과 마음은 한결같기 때문이다.
운명을 넘어서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며, 자신 역시 두려움을 문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는 지혜진 작가. 그와 나눈 대화에 귀 기울여보자.
작가님의 첫 작품인 만큼 출간까지 참 많이 기다리셨을 것 같아요. 첫 소설을 집필하는 일은 어떠셨나요? 집필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요?
첫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저에겐 글을 쓰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재미와 의미를 흠뻑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방향을 잡고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저 자신도 놀랄 정도로 굉장히 빠르게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하루하루 작업량을 확인하며 늘어나는 매수를 볼 때마다 특별한 성취감이 느껴져서 힘든 줄도 몰랐거든요.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나 저를 이끌어가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되었고요. 그렇지만, 호흡이 긴 장편소설인 만큼 제가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흩어질까 봐 그 점은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작은 소재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했고요. 결국 글을 쓰며 가장 어려운 건, 자신을 믿고 집중하는 일인 것 같아요.
조선시대 ‘시구문’이라는 배경이 참 독특합니다. 시신을 내어가는 문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시구문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이야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몇 해 전, 국회방송을 며칠간 시청할 일이 있었는데, 중간 정회 시간에 5분가량의 역사기행을 방송하더라고요. 사실 국회방송도, 역사기행도 평소에는 시청하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시구문’ 편을 방송할 때는 저도 모르게 집중을 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제가 어려서부터 죽음이라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했었고, 나이를 먹은 지금도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게 죽음이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방송을 본 후 오히려 ‘삶’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삶과 죽음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 그사이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도 진지하게 해보았고요. 자료조사를 하며 시구문의 역사적 의미를 찾다 보니 그 문을 드나들었을 법한 아이들 몇 명이 순식간에 선명해졌어요. 그 아이들이 금방 도망갈까 봐 노트북 앞에 앉아 부리나케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무당의 딸과 양반가의 아씨, 신분의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우정이 마음 따뜻해집니다. 기련은 소애 아씨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감정적 친밀감을 느끼는데요, 기련은 소애의 어떤 부분을 발견하고 끌리게 된 것일까요?
기련이는 슬픔과 두려움을 온전히 끌어안고 있는 인물이지만, 소애는 기련이가 갖지 못한 밝음과 따뜻함을 갖고 있는 인물이에요. 기련이는 자신이 갖고 있지 않지만 늘 바라던 것들을 갖고 있는 소애를 동경하게 되는데 그것이 친밀감으로 이어진 것이고요. 저 역시도 제가 갖고 싶고 닮고 싶은 점을 지닌 사람에게 굉장히 끌리는 경향이 있는데, 기련이가 소애 아씨에게 끌리는 것은 저의 이런 무의식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어머니에 대한 오해로 갈등하는 기련,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가진 백주 등 조선시대 배경이지만, 요즘 청소년들이 공감할 만한 요소가 많은 소설인 것 같아요. 작가님은 『시구문』을 어떤 아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으세요?
시대가 달라졌어도 우리가 갖고 있는 고민과 두려움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책 속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현재의 청소년들에게 연결 지어도 무리가 없으니까요.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 같고, 나는 늘 나약한 것 같고,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들은 더 견고해졌고요.
혹시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또는 ‘이번 생은 망했어’라며 홀로 울고 있다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아 두렵다면 자신의 숨소리를 천천히 들어보세요. 두려움의 문 앞에 서 있어도 여러분은 아직 숨 쉬고 있고,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온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요.
『시구문』에 등장하는 세 아이는 모두 다른 아픔을 지니고 있지요. 각자 개성이 뛰어난 등장인물들인데, 이런 아이들을 설정하실 때 의도하신 바나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나요?
시구문은 죽음과 맞닿은 장소이지만, 저는 이곳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어요. 주인공들이 이 문 안에서의 자신을 훌훌 벗고, 문밖으로 멋지게 달려 나가는 모습을 매일 상상했거든요. 그래서 가혹하지만 세 아이들에게 도전 과제를 하나씩 만들어주어야 했어요. 그 과제가 현재의 청소년들에게도 의미를 줄 수 있기를 바랐고요. 결국 기련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운명을, 백주는 삶에 대한 나약함을, 소애는 역전된 신분의 굴레를 갖게 되었지요. 하지만 세 아이들은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찾아낸 방법으로 삶의 진실을 찾아내려 애써요. 또 아이들의 마음은 서로를 향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돕는 것을 망설이지 않고요. 내가 애써 찾은 진실은 나를 어떤 식으로든 성장시킬 것이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이 첫 출간인 만큼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보여주실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작가님께서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린 감정들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포착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나 자신을 이루고 있는 건, 커다란 목표나 눈에 도드라지는 화려한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무심코 넘겨버린 작은 감정들이 오히려 제 자신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고 버려뒀던 감정들을 찾아내서 의미 있는 이름표를 붙여주고 싶어요. 저는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믿는 사람이거든요.
마지막으로 『시구문』을 읽는 청소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걷는 길이 있다면, 저는 그 길에 수없이 많은 문이 세워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벌컥 열 수 있는 문이 많으면 좋겠지만, 두렵고 아픈 마음으로 열어야 하는 문이 훨씬 더 많더라고요. 혹시 어느 문 앞에서 좌절하고 있다면,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다면 그때가 바로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 누군가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다정히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두려움은 누군가의 손을 잡았을 때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요.
*지혜진 서울에서 태어났다. 지나치기 쉬운 누군가의 마음에 대해 오래도록 쓰고 싶은 소망이 있다. 2017년 계간 [어린이와 문학] 청소년 단편소설을 통해 등단했고, 2020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시구문』은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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