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첫 출간 후 지금까지, 많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기차 ㄱㄴㄷ』의 박은영 작가가 새로운 작품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그림책으로는 12년만이다.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며 해외 독자들에게도 이름을 알린 박은영 작가는 리듬감 있는 글과 자유분방한 그림이 돋보이는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아이는 물론 성인 독자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 왔다. 오랜 시간 기다려 온 독자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박은영 작가를 만나 보았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무려 12년 만에 새로운 그림책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림책이 아이들의 감성 발달과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면,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로서 가장 기본적인 자질은 아이들을 올바르게 잘 키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기차 ㄱㄴㄷ』 출간 당시, 큰 아이가 한글을 배우고, 둘째 아이가 막 태어났을 무렵이었죠. 그 아이들이 이제 모두 커서 대학을 갔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잘 자라 주었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웃고 울었던 경험이 쌓여 아이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깊어지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비로소 작가로서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을 갖추게 된 셈이죠.
또한 영국에서 시퀀셜 이미지(Sequential Image)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했습니다. 그림책이 갖는 구조적 특징과 이에 맞는 일러스트의 연결성을 연구했지요. 더 좋은 그림책을 만들기 위한 토대를 다졌고, 이와 같은 시간을 통해 의욕과 열정이 앞서던 젊은 날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겸손하게 작품을 대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책 작업은 오랜만이셨을 텐데 『사랑은 널 자라게 해』를 만드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오랜만의 그림책 작업이라 감개무량합니다. 이 책은 아버지의 부음이 계기가 된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드는 중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책입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아버지에게서 자전거를 배우던 때의 느낌이 떠올랐어요. 중심도 잡지 못하고, 미숙하고, 불안했던 제가 넘어지지 않게 뒤에서 잡아 주던 아버지의 모습도요. 아버지는 딸이 자전거를 곧잘 타게 되자, 슬그머니 잡고 있던 손을 놓으셨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열심히 페달을 밟다가, 어느새 혼자서 잘 타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제목만 보아도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작가님께서 책 안에 담고 싶고 싶으셨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사랑은 널 자라게 해』 의 기본 콘셉트는 ‘부모님의 무한 사랑’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해’로 비유되어 표현되어 있지요. 우리는 싫든 좋든, 자의든 타의든 그 무한 사랑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시점에 이르게 돼요. 그리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지요. 부모님이 주셨던 사랑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고, 구석구석에 남아 또다시 나의 아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전해집니다. 이 사랑들이 모여 세상은 따뜻해지지요.
책 속의 해는 각자에게 다른 존재로 투영될 수 있습니다. 아빠, 엄마, 친구, 나를 성장시키는 꿈이나 어떤 것 등으로 대입할 수 있지요. 또한 아이들의 성장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대상은 모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아기 나무는 해의 사랑을 받는 동안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로 성장하게 돼요. 그리고 이제는 고양이와 새들의 보금자리로 거듭나 자신이 받은 사랑을 또 다른 누군가에 전해 주게 되지요. 사랑을 받은 아이가 마음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해 다시 사랑을 나눠 주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대목이랍니다.
이 책에서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나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마지막 장면이에요. 저는 이 장면에서 풍성한 초록의 색감이 마을 정경과 어우러져 평화롭고 행복한 느낌을 낼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사랑은 널 자라게 해』 는 노란 해와 파란 아기 나무가 중심어 되어 전개됩니다. 이 아기 나무의 색이 초록이 아닌 파랑인 건 노란 해를 만났을 때, 온전한 초록의 나무로 성장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초록색은 파란색과 노란색이 하나가 되었을 때 나오는 색이니까요. 파란 아기 나무는 노란 해를 만나 마을에서 가장 큰 초록 나무로 성장하지요. 서로 북돋우며 보듬는 과정에서 ‘초록’이라는 세상을 만들어 낸 거예요. 무한 사랑의 결과가 초록의 어우러짐으로 재탄생한 감동적인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판화로 작업한 밝고 화사한 색감의 그림이 무척 돋보이는 책입니다. 작업하실 때 중점을 둔 부분이 있으신가요?
『사랑은 널 자라게 해』 는 판화로 작업한 그림 위에 색연필과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입혀 완성되었습니다. 판화에 의한 선은 무작위적인 굵기와 강약이 드러나, 붓이나 펜 등으로 자유자재로 매끄럽게 그어진 일반 선에 비해 독특하면서도 깊은 맛을 주지요.
그림에서 선맛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하는 데 상당히 중요합니다. 전 이 책에서 판화의 선맛을 최대한 끄집어내려 노력했어요. 얕은 감각이 아닌, 마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닮은 것 같은 그 무엇이 느껴지도록 말입니다.
또한 본문의 배경을 모노톤으로 처리하면서 부드러운 음영을 주었는데, 이는 일반 물감이 아닌 커피를 푼 물로 수채화 느낌이 나게 작업한 것이지요. 때문에 물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깊은 색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모노톤의 배경과 대조되게 해와 아기 나무는 선명하고 밝은 색감을 더욱 살려 캐릭터의 성격과 감정이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오게 했지요. 특히 해의 색감은 ‘봄 같은 노랑’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해는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뜨지만, 아기 나무에게 해는 ‘봄의 해’여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만큼 특별해야 한다는 거지요.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처럼 더욱 화사하고 밝은 노랑, 추운 세상을 따뜻함으로 녹인 노랑, ‘사랑을 품은 노랑’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책 속 해가 아기 나무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것처럼 작가님께서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재는 누구인가요?
제게 무한 사랑을 베풀어 준 존재는 돌아가신 부모님이셨고, 이제는 제가 받았던 사랑을 저의 아이들에게 나누고 있어요. 그 옛날 부모님이 하셨던 것처럼요. 아이들 또한 제 편에 서서 전폭적으로 믿어 주며, 제게 무한 사랑과 행복을 주고 있지요. 따뜻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진실한 사랑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작품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현재 작업 중이신 책이나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빨간 고양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예쁘고 작은 아기 그림책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어요. 아기 그림책은 아기들이 태어나 처음 접하는 책이면서 책에 대한 호감을 키워 주지요. 게다가 인지와 감성 발달에 기초적인 역할을 해 주고요. 전작 『기차 ㄱㄴㄷ』이나 『빨간 단추』처럼 아기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그들의 호기심과 감성을 자극하고 오래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와 더불어 『어린 왕자』처럼 스토리가 있는 어른을 위한 그림 에세이도 한 권 기획하고 있는데요, 어른이들이 잊고 있던 순수한 감성을 자극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박은영 이화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브라이튼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그래픽 디자인, 광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에서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림책 『기차 ㄱㄴㄷ』, 『엄마는 항상 네 곁에 있어』를 쓰고 그렸으며, 그 외 작품으로 『밤과 여름 사이의 맛』,『너는 얼마나 자랐을까』, 『사랑해』 들이 있습니다. 작가 홈페이지 www.redhom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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