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만 둘인 집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아들이 없어 불쌍한 집’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학교에서는 21세기의 주역이라고, 남성과 여성은 다르지 않다고 배웠지만 명절, 가족친지의 행사 때는 ‘불쌍한 집’에 사는 아이였다. 그래서 부러 고정된 여성 역할에 대한 거부감을 대놓고 드러냈다. 명절날, 전을 부치자는 할머니께 ‘저는 나중에 더 중요한 일을 할 거라 전 부치는 것은 못 해요.’라고 말하고 사촌 오빠 옆에서 명절 특선영화를 보았다. 할머니는 ‘니가 셋째는 생기면 안 된다고 울고불고 난리 쳤으니, 아들 노릇 똑똑히 해야 헌다.’ 혀를 끌끌 찼다.
특히, 김장은 거부감이 큰 것 중에 하나였다. 날이 추워지면 엄마들은 김장 이야기를 했다. 그 집은 올해 몇 포기를 담을 것이냐고, 작년에 강원도에서 배달시킨 배추가 실했다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추운 김장철이면 몸도 성치 않는 할머니를 필두로 엄마가 힘겹게 배추를 옮기는 모습에 화가 났다. 고된 노동은 하지 않고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서 갓 삶아낸 수육과 막 담근 김치 속을 먹는 아빠가 미웠다. 평생 김치를 내 손으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장하는 행위로 나를 불평등의 세계로 밀어 넣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2019년 겨울, 처음으로 김장을 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시어머니를 도와서 여러 포기를 담았다. 김장에 대한 거부감을 알 턱이 없는 시어머니께서 김장을 처음 해본다는 나의 말에 놀라셨다. 그토록 거부했던 김장을 한 이유는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고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난소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그 당시 임신으로 입덧이 심했던 나는 엄마의 열무김치 한 입이면 속이 편해질 것 같았다. 김장김치는 할머니의 주도로 그녀의 손맛이 담겼다면 열무 김치는 온전히 엄마의 손맛이었다. 1년 내내 동나지 않게 우리 집 냉장고 한 켠을 차지했고, 엄마표 열무김치와 라면의 조합은 산해진미와 견줄 만 했다. 마늘을 많은 넣은 아삭아삭 씹히는 엄마의 열무김치면 입덧을 단번에 날릴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암과 싸우고 있는 엄마에게 말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엄마는 열무김치를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나는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서 화를 내고 말았다. 누가 이거 먹고 싶다고 했느냐고. 열무를 쪼그려서 다듬는 게 얼마나 무리인지 아냐고. 흥분한 나에게 엄마는 그냥 잘 먹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런 엄마에게 김장김치를 가져다주고 싶었다. 항암은 입덧과 비슷하여 엄마의 속도 말이 아닐 것이다. 돌이켜 보니 그 당시 나에게 김장은 ‘불평등’이 아니라 엄마를 향한 ‘희망’이었다.
작년 늦가을,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났다. 장기간 투병했다고 하여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날씨가 추워진 줄도 모르고 슬픔 속에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려 하는데 김치가 바닥나 있었다. 엄마의 부재가 실감되어 냉장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다. 그 날, 같은 동네에 사는 회사 선배가 전화가 왔다.
‘김 과장, 김장했어요? 우리 김장 많이 했는데 가져다주려고.’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겨우 목을 가다듬고 이미 주문을 했다고 전했다. 다음 날 동네 모임으로 알게 된 지인이 모임이 끝나고 헤어지는 길에 나에게 물었다.
‘김장했어요?’
그 말이 ‘엄마의 빈자리 위로하고 싶어요’라고 들렸다. 김장이 이렇게 따뜻한 단어였던가? 처음으로 김장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들렸다. 김장이 엄마와 같은 뜻을 가진 이음동의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감추고 싶어서 괜찮다고 외치고 뒤돌아섰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추운 겨울철, 행여나 엄마표 김치를 못 먹고 허전함을 느낄까 봐 걱정해주는 마음.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주려고 노고와 정성, 사랑이 담긴 김치를 나눠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김장’은 나에게 불평등의 상징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동네 엄마들은 서로의 김장김치를 나눴다. 김장은 고된 일었지만 한 포기 한 포기에 마음을 담아 가족들과, 이웃들과 나눠왔다. 겨울철 김장김치가 없는 사람들에게 십시일반 서로의 김치를 나눠주었다. ‘김장을 걱정해주는 마음’은 따뜻함 그 자체였다. 나는 지금까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김장을 하면 불평등의 길로 걸어간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겨울, 김장을 통해 나는 가장 따뜻한 위로의 말을 발견한 것이다. 언젠가 그 따뜻함을 위로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전달해 줄 있기를 소망해본다.
고밀도 지극히 개인적인, 하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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