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소설/시 MD 김소정 추천] 떠돌이 개 다몬이 전하는 따스한 위로
『소년과 개』를 읽으며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날 받아준 바둑이가 생각났다.
글ㆍ사진 김소정(도서MD)
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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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개에 대한 추억이 있다. 나는 할머니의 시골집에서 만난 개를 잊을 수 없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몸집은 자그마했고 흰색 털에 검은 반점이 나 있어 할머니는 그 강아지를 ‘바둑이’라고 불렀다. 할머니의 작명 센스는 1차원적이어서 자연스레 흰 개는 흰둥이, 누런 개는 누렁이, 점박이는 바둑이가 되었다. 살며시 다가가자 바둑이는 공포에 질려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계속 같은 자리만 빙글빙글 돌았다. 할머니는 사람에게 맞고 있던 개를 데려왔다고 했다. 아, 그랬구나. 왠지 바둑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미안했다. 나는 할머니 댁에서 보내는 연휴 기간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바둑이와 산책을 했다. 바둑이는 처음에 자신에게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해서 스스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안 가 바둑이는 어색한 발걸음을 내디뎠고 생애 첫 산책을 했다. 바둑이는 용기 있는 아이였다.

산책 중에 앉아서 쉴 때마다 바둑이는 내 허벅지에 턱을 괴었다. 처음에 털을 빳빳이 세우고 경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편안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따금 나를 올려다보는 바둑이의 눈이 유난히 검고 슬퍼 보였다. 사흘이 지나고 집에 갈 때가 되자 바둑이는 내가 떠날 걸 알았는지 내 무릎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고 낑낑 울었다. 같이 가자-그러는 듯했다. 그게 바둑이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바둑이는 내가 서울로 올라가고 몇 주 후 할머니가 목줄을 놓친 틈을 타 멀리 달아났다고 한다.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는 손을 쓸 수 없이 재빨리 달아나는 바둑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줄에 묶인 채 떠나는 날 한참 동안 바라보던 바둑이의 모습이 종종 떠오른다. 바둑이는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음에도 다시 사람인 나에게 마음을 열어줬다. 그리고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슬프고 부끄럽다. 



『소년과 개』를 읽으며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날 받아준 바둑이가 생각났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몬은 자연재해로 주인을 잃은 떠돌이 개다. 다몬은 셰퍼드의 피가 섞인 잡종으로 깊은 담흑색 눈을 가지고 있다. 누구라도 진실하고 충성심 있는 다몬의 눈을 바라본다면 그를 외면할 수 없게 된다. 다몬은 고향에서 만난 소년 히카루를 찾아 무려 5년 동안 일본 전역을 돌아다닌다. 

길 위에서 다몬을 만난 사람들은 다몬을 통해 깊은 위로를 받는다. 생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도둑질에 가담해야 했던 가즈마사에게 다몬은 수호신이었고,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매춘부 미와에게 다몬은 작은 희망이 되어 주었으며, 혼자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고단한 현실에 지친 사에에게는 따뜻한 집이, 죽음을 앞둔 노인 야이치에게는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그들은 다몬의 존재만으로 이제껏 잊고 살았던 행복을 찾게 되었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개는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곁에서 그들의 삶을 구원한다. 

소설을 쓴 하세 세이슈는 25년 동안 개를 키워온 애견인이다. 그는 스스로 오만한 자신을 겸허하게 만들어준 건 개였다고 한다. 하세 세이슈에게 개는 가족이자 친구, 스승이었다. 주로 누아르 장르를 써오던 그는 40대 중반부터 개와 사람의 관계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소년과 개』로 2020년 나오키 상을 수상한다. 그는 다몬을 의인화하는 쉬운 방법을 택하는 대신 서로의 영혼으로 교감하는 장면을 여럿 그렸다. 종을 뛰어넘어 감정적으로 깊이 연결된 그들을 지켜보며 진정한 소통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언어는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다몬은 짙은 담흑색 눈으로 어리석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이길 수 있다고. 사랑은 무엇보다 강하다고.



소년과 개
소년과 개
하세 세이슈 저 | 손예리 역
창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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