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지난해는 갔다. 떠나간 해도 많은 태어남과 죽음이 있었다. 그 속엔 누군가의 희망 담긴 결단이, 고통을 담은 포기가 있다. 고통과 희망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것일지 모르는 인생. 지금을 숨 쉬는 우리는 결국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살아있다.
동생의 등록금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 소식 없던 아버지의 사망을 알게 된 청년 진아. 무연사로 사망한 아버지의 사망 신고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진아의 삶 속에는 길가의 사슴 사체, 자살 시도를 한 옆방의 이웃 등 여러 죽음이 지나쳐 간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중년이 되어 급작스러운 임신을 한 수진. 아들의 혼전임신 소식, 새끼를 밴 길고양이. 수진의 삶은 진아와 반대로 여러 시작을 마주한다.
그러나 나이도 직업도 다른 진아와 수진의 인생은 닮았다. 탄생과 죽음 뒤에 남겨진 이들이 겪는, 무엇이 정답인지 모른 채 남아있기에 사는 삶. 그들은 비슷하게 혼란하고 비슷하게 괴롭다. 진아와 수진이 잠시 마주했던 그 날 밤 차 안. 그 잠시에 담긴 호의와 공감은, 서로를 닮은 삶에 그들도 모르게, 우러나왔던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누구는 그냥 살라 하고, 누구는 대비하라 하고. 대비하면서 하루하루를 그냥 살면 끝인가…? 사는 의미는 뭔지 모르겠고 산만큼의 세월은 더 남았는데 그 세월은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 수진
허탈하다. 그때는 안됐지만, 오늘은 된다. 신청한 사람은 같고 처리한 사람만 다르다. 죽음에 있어서는 나와 아버지의 거리보다 공무원이 더 가까운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 받았다. – 진아
책은 삶이 이렇다고 정의하지 않는다. 그저 그 속에 살아가는 비슷한 숨들을 그릴 뿐이다. 삶은 하나의 커다란 가정(假定) 같다. 매 순간 고민하는 삶의 의미. 살아감의 이유. 매번 모르겠다는 결론이 이른다. 나는 이제 관점을 바꿔,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삶의 이유를 내가 직접 부여하려 한다. 삶이 고통이라면 그것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고, 삶이 기쁨이라면 그것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걸 이유로. 모르기에 고요히 그려보는 희망과 그렇게 나아가는 하루하루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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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도서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