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쓰레기가 됩시다
문이라도 벌컥 열고 드라마 주인공처럼 소리치고 싶어진다. "나만 쓰레기야? 어? 나만 이래?"
글ㆍ사진 정의정
20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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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첫 플라스틱 쓰레기. 드립백 커피의 포장재는 폴리에틸렌과 크라프트지였다.

서울환경연합에서 진행하는 #플라스틱일기 챌린지를 시작했다. 12월 한 달 동안 내가 만든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된다. 스스로 얼마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내는지 깨닫고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자는 뜻이었다. 

무엇을 먹었는지 말하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말이 떠오른다. 미식 문화의 자부심을 보여주던 이 말은 건강식품의 마케팅 용어로 쓰이다, 요새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식품을 소비하라는 권유로도 쓰인다. 잊을만하면 '당신이 OO 것이 곧 당신이다'로 변화하는 이 문장은 이번 주 나에게 '당신이 버린 것이 곧 당신이다'라는 말로 들렸다. 셜록 홈스가 내 SNS를 봤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바로 맞출 수 있겠지. 탕수육이 담긴 자그마한 플라스틱 통에서는 외식한 후 한 줌 남은 음식을 싸 오는 행태에서 쪼잔한 성격과 경제적 여건을 추측할 테고, 칫솔과 치약, 물티슈와 정전기 청소포, 세제 통을 버리는 주기를 통해 나의 위생 상태를 예측할 수도 있겠다. 사이다와 주스 포장재가 나온 거로 봐서는 과당 음료를 하루에 한 컵씩은 먹는다. 특히 사이다를 여섯 캔 들이로 샀다는 건 과당 음료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하이볼을 말아 먹기 위해 샀을 터인데 과당 음료를 좋아했다면 큰 통으로 사이다를 사지 작은 캔으로 사진 않는다. 고로 당신은 알코올 중독자! 범인은 바로 너!

한국에는 셜록 홈스가 없고, 이것은 모두 나의 망상이다. 그러나 내가 버린 것이 곧 나라는 말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무언가 먹어야 하고, 씻거나 입거나 자야 한다. 살아있으려고 하는 모든 행동에서 쓰레기가 나온다. 작은 비닐봉지거나, 무언가 포장했던 랩이거나, 커다랗고 여러 가지 재질이 섞여 있는 플라스틱 복합물이거나. 플라스틱만 생각하니 망정이지, 휴지와 종이와 유리병과 캔, 알루미늄 등 온갖 종류의 재질로 된 쓰레기로 봉투를 채우면서 '나는 쓰레기야...후후 나는 쓰레기...'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버린 것들.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온 편이라고 자평한다. 유리병에 플라스틱 마개가 있고 비닐로 씌운 종이 라벨이 붙어 있는 참기름병을 뜨거운 물에 불리고 세제를 써가며 기름기를 박박 닦아낸 뒤 죄다 분리해 버렸다. 조금이라도 재활용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손톱만 한 플라스틱 쪼가리도 분리수거통에 넣었다. 하루 이틀 하다가 힘들어지면 양심의 가책을 안고 그냥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분리수거 물품이 일반 쓰레기로 다시 직행한다는 뉴스를 듣고 허탈했다. 지금도 작은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손바닥 크기보다 작은 플라스틱은 일반 쓰레기로 버린다. 마음이 안 좋다. 

이 문제는 나뿐만 아니라 다들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음식을 배달하면 쌓이는 플라스틱 용기들과 택배 한 번 받으면 쌓이는 과도한 포장재들. 겹겹이 쌓인 부채감과 짜증. 슬슬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정부와 기업에 요구할 만한 문제라는 인식도 생기고 있다. 문이라도 벌컥 열고 드라마 주인공처럼 소리치고 싶어진다. "나만 쓰레기야? 어? 나만 이래?"

개인적 차원에서 쓰레기를 줄인다고는 하지만, 쓰레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삶(제로 웨이스트)이 가능할까? 무언가 먹어야 사는 것처럼 무언가 버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데, 내가 버린 것들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다. 그나마 괜찮은 삶이 되려면 쓰레기라도 괜찮아져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생필품은 조금이라도 재활용이 쉽게, 좀 단순하게 만들면 좋겠다. 이미 인간은 복잡한 존재라 더 복잡해지고 싶지 않다. 단순하게 버리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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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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