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앨범 1집 <화분> 사진
아이돌 전문 저널리스트 박희아가 아이돌 한 명 한 명의 매력을 소개하는 <박희아의 비하인드 아이돌>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세정의 시작은 여느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처음보다 화려하게 빛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인기를 끌었던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1>에서 그는 방송 내내 전소미와 1, 2위를 다투며 단 한 차례도 상위권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연습생들의 팬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연습생의 방송 분량이 적다며 분개할 때도, 세정은 혼자 연습을 하는 모습으로든 리액션으로든, 다른 연습생을 도와주는 모습으로든 늘 자신이 해낸 몫만큼은 화면에 비쳤다.
1996년생으로 2016년 당시 갓 스물을 넘긴 세정은 늘 웃고 있었다. 미소를 지을 때보다 호탕하게, 몸이 뒤로 넘어갈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명랑한 성격을 드러내던 날이 더 많던 그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키워드는 늘 행복, 기대, 설렘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였고, 세정은 그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면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힘차고 씩씩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예인, 특히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수행하면서 늘 밝게 웃던 그에게서 웃음 뒤에 가려져 있던 이야기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떤 동화 속 주인공도 매일 웃지는 못한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서사가 있고,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고난의 과정이 있다. 아이오아이 활동이 끝난 뒤에 이어진 구구단 활동은 세정에게 녹록치 않은 연예계의 무게를 실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구구단, 구구단 세미나를 통해 다양한 콘셉트를 소화하면서도 아이오아이 때만큼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고, 연기자로 활동하면서도 당혹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연기할 때 그가 보여준 섬세한 감정 연기는 아이돌로서 세정이 보여준 밝은 모습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꽃길'을 통해 자신과 어머니의 삶을 함께 이야기했던 속 깊은 청년의 모습은 웃는 얼굴 뒤로 자꾸만 가려져 갔다.
세정의 첫 솔로 앨범 <화분> 은 동화책처럼 꾸며져 있다. 하지만 이 동화는 결코 아름답고 평화롭지만은 않다. 조그만 화분에 담긴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 부단히 들인 공은 겉으로 보이는 명랑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흐리고 서글픈 순간까지 비료로 삼아 완성된 것이다. "사람들이 모르는 그늘진 마음 내게만 들리는 나를 달래주는 목소리." '화분'의 가사는 '오리발' 속 "평온한 듯 보이는 나의 이 표정엔 너는 모르는 비밀이 있어 눈에 보일 리 없겠지 발밑에 숨긴 사실을 넌 전혀 모르게 했어."로 그가 비밀스럽게 숨길 수밖에 없었던 진짜 김세정을 드러낸다.
미니앨범 1집 <화분> 사진
<화분> 에 실린 곡들을 모두 듣고 난 뒤에 그의 얼굴을 다시 보기를 권한다. 신기하게도 마냥 웃지만은 않는 세정의 얼굴에서 깊은 속내와 맑은 에너지, 그리고 더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웃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웃고 있는 청년의 웃음이 왜 소중한지 세정은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도, 웃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기 자신의 노력을 살펴주라고. 동화보다 멋진 현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