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형의 직선 –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전력질주하는 윤리적 주체의 탄생
김서형의 날렵하고 강인한 인상이 마법을 부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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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아무도 모른다>의 한 장면

 

 

SBS <아무도 모른다>의 가장 큰 볼거리는 의문의 여지없이 주인공 차영진의 얼굴이다. 영진이 친구의 전화를 안 받았던 어느 밤, 친구는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되어 목숨을 잃었다. 제 손으로 범인을 잡겠다는 마음으로 경찰이 된 영진에겐 다른 감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동료들은 그를 일 밖에 모르는 독종이라 생각하고, 세상을 떠난 친구의 어머니조차 이제는 네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마 애착하던 것을 지키지 못했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걸 지키지 못했다 자책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영진을 연기하는 김서형 특유의 인상은 영진이 보낸 세월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개연성을 뒷받침해준다. 곡선 없이 마르고 날렵한 직선으로 조각된 이마와 콧대, 강인한 광대뼈와 단호한 하관이 주는 인상은 강렬하다. 자신이 잘 하고자 싶은 일에 온전히 몰두한 탓에 세상의 나머지 일들엔 무심한 듯한 인상. 김서형의 얼굴이 주는 스펙터클은 조용히 강렬하다.
 
김서형의 날렵하고 강인한 인상이 마법을 부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JTBC <스카이 캐슬>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이나, SBS <자이언트>의 로비스트 유경옥, 영화 <악녀>의 인간병기 육성 총책임자 권숙에 이르기까지, 김서형이 맡아왔던 배역의 상당수는 자신의 일에 능한 강인한 전문직이었으니까. 그러나 인물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를 보면, 영진은 김서형이 지금껏 맡아왔던 다른 인물들과는 그 결이 다르다. 김주영을 추동한 힘은 비뚤어진 욕망과 시기였고, 유경옥은 살아남겠다는 생존본능으로 사채시장의 거물이 되었으며, 권숙은 조직이 바라는 바를 충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영진은 다르다. 영진은 제 도움을 요청하던 친구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윤리적 책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미룬 사람이다. 시간의 힘을 빌어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 테고, 친구의 죽음이 온전히 제 잘못은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진은 그러는 대신 친구를 살해한 범인을 잡아 정의를 묻는 것으로 제 몫의 윤리적 책임을 온전히 지는 길을 택한다. 영진은 욕망이나 본능으로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지기 위해 전력을 다 하는 윤리적 주체인 것이다.
 
가족처럼 지내던 아랫집 소년 은호(안지호)의 투신 소식을 듣고 영진이 절박하게 진상 추적에 매달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의 이유다. 은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영진이 다 눈치 채고 알아야 했을 책임 같은 건 없다. 모두에겐 각자의 삶과 제 몫의 비밀이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영진은 그렇게 쉬운 길로 도망가는 대신, “도망칠 곳이 없다”고 말하며 은호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을 온몸으로 떠안고 다시 달린다. 이 탁월한 윤리적 주체인 영진은, 자신이 목표한 바를 향해 전력으로 몰두하는 인물의 초상을 그리는 데 압도적인 재능을 보였던 김서형의 몸을 빌어 제 시간에 우리에게 도착했다. 제 책임을 인정할 줄 아는 어른이 간절한 황량한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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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