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시스터후드로 쓴 책이에요 (G. 오소희 작가)
엄마를 위로하는 책들, 공감주려고 하는 책들은 많아요. 그런데 여자들은 위로와 공감만을 가지고 체념하면서 살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거든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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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부터 찾아야 한다.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말고 내 방식으로, 꾸준히, 나에게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야 한다. 내가 천천히 맺은 열매(THE 가치)가 육아의 목표가 되며 가정의 문화가 된다. 아이는 배고플 때마다 알아서 그 열매를 갖다 먹는다. 백 개의 문센, 학원보다 흔들림 없이 열매 맺으며 살아가는 엄마의 존재가 더 근본적인 가르침을 준다. 나중에, 아이가 잘 되길 바라기 전에 지금 당장, 나부터 잘 살자.

 

오소희 작가의 책 『엄마의 20년』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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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오소희 작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이 땅의 엄마들이 자유롭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작가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더불어 자유롭고 행복해질 거라고요. 아이만큼 ‘나’를 챙기고 ‘내 아이’만큼 ‘우리 아이들’을 챙기는 ‘새로운 엄마들’과 연대하는 분이에요. 『엄마의 20년』 으로 돌아오신 오소희 작가님입니다.

 

김하나 : 작가님이 드디어 ‘(엄마) 졸업’을 하셨어요. 중빈 군이 대학을 가면서 엄마 품에서는 떠나가는 시기가 되었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오소희 : 좋아 죽겠죠(웃음).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 역할이 차지하는 지분이 거의 99.9% 이다가 점점 줄면서 스무 살 정도 되면 0이 되어야 정상적인 모자, 모녀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0이 됐고요. 그러다 보니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이 들어올 것 아니에요, 원래 저였던 것. 그런 것들을 회복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김하나 : 아이가 나타나기 이전의 나였던 것.


오소희 : 그렇죠. 잠시 20년 동안 엄마라는 잡(job)에 임대했던 거잖아요. 이제 임대업 청산하고(웃음), 거기에 원래의 제가 다시 돌아오는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여러 감정들이 있어요. (원래의 나와)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으니까 약간 서러움 같은 것도 있고, 반가움도 있고, 그런 것들을 재미나게 느껴보고 있습니다.

 

김하나 : 책의 첫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주중에 강연회를 하면 전업맘들이 와서 호소하는 것, 그리고 주말에 강연회를 하면 직장맘들이 와서 호소하는 것이 ‘나를 찾고 싶다’는 이야기라는 거죠. 엄마들이 왜 그렇게 나를 찾고 싶어하는가, 남성 중심 사회와 입시 중심 사회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 있고 자꾸만 나를 잃게 되는 엄마들의 처지 같은 것이 나와 있어요. 앞부분에서 ‘여기에 우리가 균열을 낼 수 있을까요?’, ‘있어요’라고 대답을 하고 시작하는데, 박력이 있는 거예요(웃음). 물론 그 뒤에 구조적인 문제를 찬찬히 짚지만, 일단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균열을 낼 수 있어요’라고 단호한 한 마디를 내기까지 참 생각을 많이 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소희 : 네, 생각할 시간은 20년이나 있었으니까요(웃음). 생각하고 정리하고 다시 쓰고 할 시각이 너무 충분히 있었고요. 그 이전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여행하는 시간도 있었고, 이후에는 학부모로서 여러 엄마들을 커뮤니티 안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여럿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깊이 고민하고 답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수험생도 지나봤고. 거기가 입시 중심 사회의 모든 문제점들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시기거든요. 다 겪어보고 나니 그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조금 알게 될 것 같은 상황에서 이 책은 조금 소명감을 가지고 썼어요. 저의 다른 책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렇게 열다섯 가지 솔루션을 제시하는 책이 전혀 없습니다(웃음). 가능하면 가르치는 태도는 피하려는 책들을 주로 썼었고, 그러나 이 책은 정말 시스터후드(sisterhood)로서 쓴 책이고요. 주로 그런 책을 집필하시는 분께서 써주시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이를) 다 키우도록 그런 책은 안 나오더라고요. 엄마를 위로하는 책들은 많아요. 공감주려고 하는 책들도 많은데. 여자들은 위로와 공감만을 가지고 체념하면서 살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거든요. 그래서도 안 되고.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말을 해주는 책이 너무 없는 거예요. 20년 동안 저도 기다렸는데. 그래서 마지막에는...


김하나 : ‘안 되겠다, 내가 써야겠다’ 이렇게 되신 거군요.


오소희 : 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가 써야겠다(웃음).

 

김하나 : 이 책이 또 좋은 게, 단호하고 구체적이에요. 나중에 열다섯 가지 솔루션에 대한 이야기도 하겠지만, 구체적인 답 같은 것들이 빼곡하게 있어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나한테는 그런 책이 없었고 누가 나한테 그렇게 알려주지 않았단 말이죠. 그런데 나는 구체적인 행동부터 시작해서 그걸 어떻게 확장할지에 대해서 제안을 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습니까?


오소희 : 책 앞머리에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조금 적었는데, 그 중에 ‘계룡산 시절’이 나오죠.


김하나 : 서울 출신이시죠. ‘계룡산 시절’은 왜 시작된 건가요?


오소희 : 그 전까지는 제가 사회에서 조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외부에서 던져주는 목표에 충실하게 살았죠.


김하나 : ‘엄친딸의 최후’라는 챕터가 있었죠.


오소희 : 맞습니다. 엄친딸의 최후는 배를 쭉 째고 백수 선언을 하는 것이 되었죠. 왜냐하면 취업이며 대학이며 순서대로 다 밟아도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야 되는 건데 그게 안 되니까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했을 때, 그때 오래 연애했던 남자친구가 뒤늦게 스물여덟에 군대를 가게 돼요. 학사 장교이고 출퇴근을 한대요. 그 친구가 복무하는 곳에 가까이 가서 출퇴근을 하면 결혼 생활이 가능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부대 옆에...


김하나 : 부대가 계룡산이었던 거군요?


오소희 : 그렇죠. 그래서 계룡산에서 학사 장교로 있었던 3년 동안을 제가 같이 보낸 거죠. 그동안 외부에서 주어진 목표로만 달렸을 때는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면 ‘시끄러워, 지금 이거 하기도 바빠’ 했던 것을 거기에서는 충실하게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줬던 거죠.

 

김하나 : 계룡산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이 충만했겠어요.


오소희 : 하고 싶은 것을 양껏 했고, 제가 거기에 내려갈 때 ‘나는 절대 아무것도 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자꾸 이거 돼라 저거 돼라 하는 사회에서 있다가 배 째고 내려간 거였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거야, 그리고 그게 무엇이 될 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한 시간이었어요. 인생에서 한 젊은이가 굉장한 유예를 둔 거죠, 자기 자신한테.


김하나 : 그런 기간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오소희 : 네, 꼭 필요해요. 사실 청소년기에 가지면 아주 바람직한데 우리가 그러지 못하니까요.

 

김하나 : 중빈이가 태어나게 되면서 다시 서울로 오셨죠?


오소희 : 그렇죠, 임신한 상태에서 왔어요. 두 백수가 아무 대책 없이 서울로 온 거고. 그런 상황에서 남편은 면접 보러 다니고 직장을 얻게 된 거고 저는 아이를 낳게 됐죠.


김하나 : 독박 육아가 시작이 된 거죠.


오소희 : 네, 그랬어요.


김하나 : 그러다가 ‘정상이 아닌 엄마’가 됩니다(웃음).


오소희 : (아이가 생후) 36개월 됐을 때 주변 피드백이 제가 어렸을 때 겪었던 것들, 교육 환경에서 파생된 질문들과 유사했어요. ‘아직도 한글나라 안 시켜?’ 같은 질문들이 시작되고. 그동안 나는 ‘계룡산 시절’을 보냈고 내 목소리도 들어줬는데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거야’를 평생 지속할 수는 없잖아요. 내 안에 쌓인 것들이 있고, 거기에서 일정 정도의 힘도 생겼고, 어떻게 사회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했을 거예요. 이제 아이도 사회화 과정을 겪게 되는데 여전히 바뀐 게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김하나 : 입시라고 하는 것으로 뭔가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득하고 있는데 이제부터 준비해야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셨군요.


오소희 : 그거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있었죠. 그 길로 아이의 등을 떠밀고 ‘자, 이제 여기에서부터 잘 달려. 그러면 좋은 일이 벌어질 거야’라고 말할 수 없는 엄마라는 생각은 확실했기 때문에 ‘그러면 뭐가 있을까’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요즘 같으면 샘플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당시 주변에는 그런 일관된 길을 확신에 차서 가시는 분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저만의 확신을 만들어야 했어요. 대안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주변에서 볼 수 없으니 ‘다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야’, ‘다른 뭔가가 있을 거야’ 하면서 다른 나라를 가보게 되죠. 36개월 아이와 배낭여행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김하나 : 처음에 여행을 갔던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오소희 : 한 달이요. 세 돌 때였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나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고요. 그때 이후로 계속 한 달에서 두 달, 길게 남미 여행할 때는 세 달이었고, 그 정도 매년 여행을 갔어요.


김하나 : 아들과 단 둘이 가는 여행인 거죠.


오소희 : 네, 단 둘이.

 

김하나 : 이 책에는 세 여행이 있습니다. 세계 여행, 시간 여행, 성장 여행이 있는데 시간 여행에는 할머니와 엄마와 나에 대한 이야기가 있죠. 그 세 세대의 다른 점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을 하셨겠어요.


오소희 : 네, 우리나라는 정말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세 세대가 각기 다른 여성의 삶을 살았잖아요. 그걸 더듬어 보는 과정은 의도적이었어요. 우리가 굉장히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서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고,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너무 약하니까 약자가 약자를 미워하기도 하고...


김하나 : 할머니가 딸 낳았다고 구박하고...


오소희 : 그런 식인 거죠. 지금은 직장맘이 전업맘을 부러워하고 전업맘은 직장맘을 부러워하는 식으로. 전체를 보는 힘을 가지고 바라보면, 우리도 시어머니가 자라온 시절과 그 분이 갖게 된 가치관을 생각하면  시어머니가 저렇게 할 수밖에 없음에 대해서 이해 가능한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인데, 어쨌든 이해할 수 있고. 그래도 우리는 첫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 세대로서 다음 여성 세대들이 조금 더 나은 길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스스로 생각해 내야 하는 책임을 질어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하기 위해서 세 세대를 더듬은 거예요. 그러려면 우리가 연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거고요.


김하나 : 여행은 한 번 더 있었죠. 성장 여행이 있습니다. 7080 엄마들 세대는 어떻게 성장해왔고, 성장 과정에서 미디어라든가 교육이라든가 결혼이라고 하는 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도 본인의 생각을 명쾌하게 정리를 해두셨어요.


오소희 : 우리가 여성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한 번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그 앞에서는 세 세대를 더듬어 봤다면 (성장 여행에서는) 7080 세대만.

 

 

엄마의 20년오소희 저 | 수오서재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을 잘 가꾸는 법, 그 잘 가꿔진 인생 안에서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는 법까지! “20년 동안 뜨겁게 사랑하고 20년 후 쿨하게 독립하라”는 그녀의 말처럼, 때론 뜨거워야 하고 때론 냉정해야 하는 엄마로서의 삶에 대한 절절한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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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