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하사의 경례 - 역사는 저런 사람들이 바꾸는 것
나는 변희수 하사의 경례 속에서 카운츠의 얼굴을 본다. 세상을 바꾸는 건, 저렇게 편견을 뛰어넘으려 정면으로 달려든 사람들이다.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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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도 마치고 민방위 2년차가 된 지금도, 나는 ‘애국’이나 ‘충성’이란 단어가 다소 불편하다. 오랜 세월 국민에게 나라가 하자는 대로 잠자코 따라오라고 윽박지르던 독재국가였던 한국 현대사의 흔적이 아무래도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나는 군인이 헌정을 파괴하고, 군인이 개헌을 통해 독재기반을 마련하고, 군인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한 역사를 지닌 나라에서 ‘애국’을 강조하는 건 다소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변희수 하사가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눈물 앞에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너무도 절박하게 애국할 기회를 달라고 말하는 그녀[i]의 눈물이 날 온통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되어 국가공동체를 수호하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싶었다던 변희수 하사는, 자신의 지정 성별과 실제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고통 속에서도 목표했던 바를 이뤄내 하사관이 되었다. 함께 복무하는 군 동료들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백했고, 동료들로부터 대한민국 군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지지와 협조를 받았다. 그녀가 성확정수술을 받기 위해 휴가를 내고 태국을 다녀온 것은 소속 부대의 허가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그녀가 있던 남성기와 고환을 버린 것을 ‘장애’로 판단하고 그녀의 강제 전역을 결정했다. 군장을 매고 행군을 하고 총을 쏘고 작전을 입안하고 수행하는 능력이 남성기와 고환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변희수 하사를 군에서 몰아낸 것은, 한국사회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이다.
 
하리수의 데뷔 이후 19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은 트랜스젠더에게 가혹하다. 2020학년도 숙명여자대학교 신입생으로 입학한 MTF 트랜스젠더 여성의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숙명여대 재학생들은 “남성의 성기를 가지고 남성인 채로 살아온 사람이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으니 진정한 여성이 아니”라며 “여성의 몫을 빼앗지 말라”고 격렬하게 반발했다. 정당하게 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법적 여성의 여대 입학이 어째서 ‘여성의 몫을 빼앗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변희수 하사의 기자회견을 보도한 수많은 기사들 아래에도 조롱조의 댓글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하리수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만일 변희수 하사가 군대에 가기 전에 성확정수술을 받고 트랜지션을 거쳤다면 분명 “군대에 가기 싫어서 여자가 된 거 아니냐”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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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수많은 조롱과 혐오의 글들 앞에서 도로시 카운츠의 입학식 사진을 떠올린다. 카운츠는 1957년 9월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의 해리 하딩 고등학교에 입학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었는데, 백인 학생들은 카운츠를 둘러싸고 조롱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카운츠는, 온 어깨로 쏟아져 내려오는 증오와 모멸의 시선을 견디며 굳은 표정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다. 2020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안다. 저 사진 속에서 세상을 바꾼 게 누구고 영원히 편견의 상징으로 남은 게 누구인지를. 나는 변희수 하사의 경례 속에서 카운츠의 얼굴을 본다. 세상을 바꾸는 건, 저렇게 편견을 뛰어넘으려 정면으로 달려든 사람들이다.

 

[i]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되도록 ‘그녀’라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한국어 3인칭 인칭대명사 ‘그’ 하나만으로도 성별중립적인 호명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만큼은 변희수 하사를 ‘그녀’라고 지칭하기로 한다. 혹시라도 내가 그녀를 ‘그’라고 칭하는 것이 그녀의 여성됨을 부정하는 것으로 오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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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 하사 #트랜스젠더 #숙명여자대학교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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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