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조지 오웰, 카를 마르크스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뛰어난 저널리스트였다. 이들은 저널리스트로서 당시 사회상을 보도하고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리고 전쟁, 인권, 가난의 주제를 이야기하는 데 삶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김영진 역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들의 기사와 칼럼을 소개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이 남긴 교훈을 다시 한번 되짚고, 시대를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된 시리즈. 당돌하게 시작한 시리즈가 4년 만에 전 3권 완간을 맞았다.
책 표지가 참 멋진데요. 이번에 완간된 『더 저널리스트』 시리즈를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더 저널리스트』 는 총 3명의 저널리스트 헤밍웨이와 오웰, 마르크스가 쓴 기사와 칼럼을 선별해 묶은 시리즈예요. 이 세 사람은 젊은 시절에 기자나 특파원이었어요. 마르크스의 경우, 직접 신문을 창간하기도 했고요. 우리는 보통 문학 작품으로만 작가들을 접해 왔는데, 소설가나 학자가 되기 전에는 이들이 어떻게 자기주장을 펼쳤는지 기사를 통해 엿볼 수 있죠. 우리 사회에서도 언론인의 자세에 대해 말이 많잖아요. 100년 전쯤의 기자들이 어떤 자세로 글을 썼는지 확인해 볼 수 있으니 언론 쪽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내용이에요.
번역자로서 시작하신 기획이라고 들었는데요. 먼저 제안하신 건가요?
저는 주로 금융권에서 일해 온 직장인이에요. 전업 번역가는 아니죠. 다만 정치와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편이고요. 그래서 해외 기사들도 종종 살펴보는데, 우연히 헤밍웨이가 쓴 기사 원문을 하나 읽게 됐어요. 다 읽고 나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전쟁터에서 이유도 모르고 죽어 나가는 젊은 병사들의 이야기였어요. 묘사는 담담한데 문장 하나하나가 얼마나 사람을 아프게 하던지.
혼자만 볼 수 없어 몇 단락을 번역해 주위에 소개했는데, 그러다 지금의 편집자를 만났어요. 저널리스트로서도 날카로웠던 작가들이다, 우리 이들을 소개해보자 의기투합했죠. 그때 그 인상 깊었던 기사는 『더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에 ‘아프리카에는 독수리가 난다’는 제목으로 실려 있어요. 그런 글을 독자들한테 소개할 수 있다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모르고 시리즈를 시작한 거죠.
헤밍웨이는 심금을 울리는 표현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저널리스트로서도 그랬나요?
헤밍웨이의 경우, 분명 글을 통해 감정을 자극하는 재능이 있었어요. 전쟁을 비판하며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하죠. “독재자 무솔리니의 지휘 아래 전쟁터에서 죽어 나간 청년들은 무솔리니의 제국주의 오믈렛을 만드느라 희생된 ‘깨진 달걀’이었다.” 너무 적절해서 더 서글픈 표현 아닌가요?
“역사상 전쟁의 갖은 잔혹성 때문에 인류가 전쟁을 포기한 적은 없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는 언제나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만 희생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내가 장담하건대, 당신이 죽을 차례가 온다.” 이런 문장들도 그렇고요.
다른 2명의 작가, 오웰과 마르크스도 저널리스트로서 특징이 있나요?
오웰은 글에서 솔직함이 뚝뚝 묻어나는 스타일이에요. 어떤 내용이든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편이라 원고를 많이 편집 당했다고 하죠. 그런 검열의 기억이 나중에 <1984>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요. 아무튼 기자로서는 꾸미지 않은 직설적인 말투를 주로 썼습니다.
마르크스는 생각만큼 과격하지 않다는 게 특징이랄까요? 우리 일어나 혁명을 일으키자, 그런 얘기가 한가득일 줄 알았는데 사실은 조목조목 자료를 나열하면서 설득하는 기사를 썼어요. 기사가 하나의 보고서처럼 느껴지죠. 마르크스가 이렇게 경제학자가 되었구나, 이해가 가기도 하고요.
시리즈에 들어간 많은 원고가 초역이라고 하던데, 발굴이나 번역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대부분 100~200년 전에 쓰인 기사들이라 영미권에서도 디지털화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해외 도서관 사이트를 뒤져 스캔본 이미지로 찾은 기사도 여럿 있어요. 기사를 찾는 데 정말 시간을 많이 들였어요. 최소 100편 이상의 기사를 찾아야 각 권에 들어갈 스무 편 정도를 고를 수 있거든요. 시리즈 전체로 따지면 대략 70% 이상이 국내 초역일 거예요. 마르크스의 경우, 요즘 말투로 다시 번역해 초역이 아닌 원고도 독자에게는 새롭게 느껴질 수 있고요.
번역 자체보다 언어 외적인 요소가 힘들죠. 당시의 시대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오역하기에십상인 표현이나 명칭이 수두룩해요. 뭐랄까, 지뢰밭 같아요. 그래서 늘 신경을 세우고 있어야 하죠. 『더 저널리스트: 카를 마르크스』 편에 등장하는 경제 용어와 개념도 사실 예민한 주제인데, 제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금융권에서 일한 경력 덕분에 다소 수월히 작업할 수 있었어요.
원고 발굴을 위해 수집한 자료들. 1930년대 자료를 직접 구매하기도 했다.
의외로 세 저널리스트의 공통점이 있다고 하던데요?
저널리스트의 기본 자세라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눈에 들어오죠.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 관찰한다, 근거 없이 말하지 않는다는 신념 같은 것들이요. 거짓말하는 권력자나 가난은 네 탓이라며 모른 척하는 부자, 노동자를 억압하는 자본가들을 가차 없이 비판하기도 하고요. 헤밍웨이와 오웰, 마르크스 세 저널리스트 모두 잘 보이지 않는 곳을 꺼내 보여주는 일에 익숙했어요. 진실을 보도해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거죠. 그래서 시리즈 전반에 걸친 키워드가 ‘전쟁과 평화, 인권과 윤리, 자본과 가난’입니다.
차후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저널리스트 집단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요. 주류 언론의 문제점과 그에 맞서는 대안 언론이 충분히 조명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특히 미국이 그렇죠. 관련해서 출간 논의를 하다 멈춘 원고가 있기도 하고요. 헤밍웨이나 오웰, 마르크스를 읽던 눈으로 오늘날의 언론을 보면 문제점이 딱 보이는 것 같아요. 아마 『더 저널리스트』 시리즈를 펴낸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겠죠.
* 김영진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주로 외국계 금융권에서 일해왔다. 무엇보다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다. 외신 인턴 경험이 있고, 19대 대선에서 한 정당의 외신 팀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더 넓은 시야로 언론을 바라보게 됐다. 기회가 된다면 사회와 정치 분야의 글을 계속 쓰고 싶다. 옮긴 책으로 『맨박스』가 있다. 헤밍웨이의 칼럼 한 편에서 전쟁 중 무의미한 죽음을 맞은 젊은 군인을 목격하고, 이후 여러 작가의 저널리즘 작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지식과 열정이 담긴 저널리즘 작품을 찾고 선별하고 번역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더 저널리스트』 시리즈가 그 결과물이다. 이 시리즈가 우리 사회와 언론을 바라보는 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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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저널리스트 : 카를 마르크스마르크스 저/김영진 편역 | 한빛비즈
마르크스의 장기적, 보편적 관점을 엿볼 수 있는 기사를 선별했으며, 노동 계층과 서민의 삶을 다루는 기사, 외교 문제와 무역 정책에 관한 기사도 포함됐다. 『자본론』을 쓰기 이전, 기자 마르크스가 물질적 이해관계에 눈을 뜨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