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괴물이고, 누가 추한 자 인가
양쪽 귀까지 찢어진 입, 기괴한 걸음걸이,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빛, 진실을 감추는 미소. 존재 자체 만으로도 공포심을 불러오는 인물. 인간이 창조해 낸 셀 수 없이 많은 ‘캐릭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인물 ‘조커’. 많은 이들이 조커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온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 악으로 뭉쳐 자신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또 다른 ‘악’을 무조건 처단하는 그의 모습에서 묘한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
뮤지컬 <웃는 남자> 는 그 ‘조커’의 모티프가 된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 를 원작으로, EMK 뮤지컬 컴퍼니가 세계적인 수준의 스태프들과 함께 만들어낸 한국 초연 창작 뮤지컬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조커’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기이하게 찢어진 입, 그 뒤에 감추어진 상처와 슬픈 미소에 대한 스토리는 기존의 조커의 이미지와 결을 같이한다.
17세기 영국, 사치와 향락을 일삼던 귀족들은 잔혹한 인신 매매단인 콤프라치코스를 통해 납치된 아이들을 자신들의 놀잇감으로 삼았다. 주인공 그윈플렌은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되어 기이하게 입이 찢겨지고, 양쪽 귀 끝까지 붉게 묽든 상처를 가진 추한 ‘웃는 남자’로 살게 된다. 가까스로 인신 매매단을 벗어난 그웬플렌은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에게 거둬지고, 앞이 보이지 않아,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하다고 믿는 순수한 데아와, 우르수스가 운영하는 유랑극단의 단원들과 함께 거리 공연을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그웬플렌의 기형적인 미소와 데아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우르수스의 유랑 극단은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얻게 되고, 그웬플렌 역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가 되며 그의 소문이 왕실까지 퍼지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조시아나 여공작의 유혹을 받게 되고, 감춰져 있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소박하지만 평화롭던 그웬플렌, 데아, 우르수스의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뮤지컬 <웃는 남자> 는 그웬플렌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거기에 3시간이라는 긴 러닝 타임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함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특히 오프닝에서 콤프라치코스 집단이 바다 위에서 배를 타는 장면을 재현해 낸 장면이나, 그웬플렌의 미소를 본 따 곡선으로 만들어진 의회장면은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놀랍고 경이롭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수준이 세계적인 뮤지컬과도 견줄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두 장면이 아니더라도 유랑극단이 공연을 진행하는 극중 극 장면, 신분이 뒤바뀐 그웬플렌의 왕궁 생활 등 작품의 모든 무대, 의상, 조명, 세트는 관객들을 압도한다.
허나 스토리 라인이 그 눈부신 화려함에 완벽히 부합하지는 못한다. 귀족들 앞에서 당당하게 그들을 비판하고, 부자들의 낙원이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그웬플렌이, 의회에서 개혁을 실패하고 다시 극단으로 돌아오게 되며 끝나는 결말은, 메시지를 던지긴 했으나 충분히 해결하지 않고 회수되지 않은 찝찝함을 남긴다. 그 과정 속에서 귀족들의 추악함, 무지함, 모순으로 가득찬 그들의 면면을 낱낱이 고발하긴 하지만, 그 시도가 단발성으로 끝나 버리며 끝내 벽을 넘지 못한 점이 약간의 허무함을 안긴다.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충분한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소비되는 조시아나 여공작, 데아에게 가해지는 성적인 위험성을 그려낸 부분 등 여성 캐릭터를 활용하는 서사성 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허나, 아름다운 넘버와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그 아쉬움을 충분히 채워낸다. 자유로운 ‘광대’이자 미소 뒤에 가려진 슬픔을 동시에 연기해내야 하는 그웬플렌 역의 박강현은 탄탄한 연기력과 안정적인 노래로 작품 속에서 매력을 발산한다. 양준모, 신영숙, 이수빈 등 모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또한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준다. 뮤지컬이 줄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와 화려함에서 압도적인 감동을 주는 <웃는 남자> 는 오는 3월 1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다.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