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를 출간한 김미란 저자는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로서 현재 전 세계로 나가는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캐릭터 아트를 담당하고 있다. 저자의 독서 스펙트럼은 소설부터 에세이 그래픽노블, 사진집까지 넓고, 방대하다. 지금의 김미란 아티스트를 만들었다고 말할 만큼 아끼는 책들과 책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자.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어릴 때부터 책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책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언니 오빠들보다 훨씬 책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이 때도 취향이 확실한 편이어서 위인전 세트, 세계 명작 같은 걸 좋아했고 SF나 판타지는 취향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이미 사 놓은 것 말고는 아이가 읽을 만한 책을 사주진 않아서 읽은 책을 거의 외우다시피 할 만큼 반복적으로 읽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부모님이 서점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집에서는 책을 사주지 않으니 그 서점에 가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었어요. 제가 시골에서 자랐는데, 장이 서는 날에는 시내가 붐벼요. 사람은 많은데 아이가 갈 생각은 안 하고 계속 서점에서 죽치고 앉아 책을 읽고 있으니 나중엔 친구 부모님이 저희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미란이 좀 데려가라고 한 적도 있었어요. 아마 태생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DNA가 내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책 읽는 시간은 그냥 제 삶의 일부인 것 같아요. 그냥 너무 자연스러워서 왜 소중한지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할까요? 유학 생활하면서 힘들었을 때가 여러 번 있었어요. 칼아츠 들어가기 전에는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는데, 입학하고 조금씩 적응할 무렵, 첫 방학을 했어요 그때 우울증이 생겼어요. 매일 밤을 울면서 자다가, 울면서 깼어요. 한 달 동안 신발을 한 번도 안 신을 정도였어요. 유학하면서 외롭다고 느낄 때가 정말 많은데, 그때의 외로움은 한국에서 외로운 것과 색깔이 전혀 다른 외로움이에요. 땅이 계속 꺼지는데 바닥이 없는 느낌이랄까요. 그때는 달리 병원에 갈 형편도 안됐고, 그런 생각도 못 했었어요.
그즈음 막내 형부가 제가 책을 좋아하는 걸 아셔서 책을 한 10권 정도 보내줬거든요. 그때 책 중에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마음을 다잡게 되었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지게 되었어요. 그 외에도 타지에서 살면서 힘들었던 많은 순간을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면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책은 아주 어린 꼬꼬마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나의 베스트 프렌드고, 좋은 책과 작가를 만난 덕분에 인생도 많이 달라질 수 있었어요.
요즘 저자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저의 관심사는 여전히 그림입니다. 하지만 좀 달라진 건 분명히 있어요. 그전에 했던 개인 작업이 제가 하는 일에 좀 더 도움이 되려는 목적이었다면 지금 그리는 그림은 디즈니를 떼어두고서 온전히 제 이름을 건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목적이에요. 그래서 예전엔 피사체를 보고 그리는 그림 위주였다면 지금은 저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가 생활을 굉장히 심플하게 보내요. 출퇴근 시간을 아끼려고 집도 회사 근처에 구했고, 평일엔 약속도 거의 잡지 않습니다. 시간을 아껴서 저의 개인 작업을 조금이라도 더 하기 위해서예요. 대부분의 개인 시간을 온전히 그림으로 보내는 편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그리는 이유는 더 좋은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성장하지 않는 아티스트는 아티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방울 그림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물방을 그림만 주구장창 그리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아요.
그런 저의 관심사를 위해서 유명한 화가, 클래식 음악가, 혹은 요즘 뜨고 있는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책들을 꾸준히 보고 있고, 앞으로도 챙겨보려고 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조지 벨로스’라는 화가가 있어요. 그의 권투 장면을 그린 그림은 따라올 사람이 없어요. 그는 화가가 되기 전에 권투를 했었죠. 이런 사람들의 책을 보는 편입니다. 그게 저만의 주관과 영감이 담긴 그림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신간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와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책을 출간하고 나서 개인 SNS 쪽지나 출판사를 통해 메일을 꽤 받고 있습니다. 흥미로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연락이 오는 경우는 대부분 실제로 애니메이터나 캐릭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10대, 20대 친구들입니다. 이 말은 그런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20대는 정말 겁이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저의 책으로 인해서 어떤 영향을 받고, 무언가를 배우는 건 좋은데 구체적인 것을 너무 따라 하다 보면 힘들 수 있습니다. 칼아츠를 졸업하고, 디즈니에서 애니메이터나 캐릭터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거든요. 책에도 썼지만 저는 정말로 운이 좋은 케이스입니다. 앞으로도 이민법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어떤 소프트웨어가 아티스트들의 도구로 나오느냐에 따라 서 이 직업의 전망이 어떻게 될지는 사실 모르는 일이에요. 물론 준비되어 있어야 기회나 운도 잡을 수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 점에서 처한 환경에 맞게 큰 그림을 잘 짜는 것이 먼저고, 제 책은 그냥 조금만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유학은 정말 많이 준비해야 해요. 저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고 해서 일단 나왔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만큼 정보도 많이 알아보고, 미국의 문화도 미리 좀 공부하면서 준비를 찬찬히 해서 오면 좋겠습니다. 유학 생활은 정말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어요. 하지만 미국회사의 장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유리천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실력을 보여주고, 한 번 인정받으면 아시안이고, 여성이고 상관없이 깔끔하게 받아들여요. 거기까지 가는 것이 힘들 수 있겠지만. 그런 점에서 유학을 준비하고 꿈을 위해 도전하는 모든 이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고, 제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정말로 기쁠 것 같습니다.
명사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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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저 / 박찬일 역 | 민음사
20~30대에 여러 차례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했던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니나’는 내가 여성으로서 독립적이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좋은 책은 좋은 영향을 준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각각 다른 색깔로 줄을 쳤는데, 줄 쳐놓은 것이 읽을 때마다 달랐다. 20대 후반에 『삶의 한가운데』를 읽을 때와 30대 후반의 느낌이 달랐고, 40대 초반에 읽을 때가 또 달랐다. 좋은 책이 대개 그렇다. 평생을 두고 아끼며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
Eyewear
Moss Lipow 저 | Taschen
캐릭터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아티스트이자 동시에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양한 디자인 관련 책을 보는 것은 직업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이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수백 년간의 아이웨어의 디자인에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140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아이웨어들을 한눈에 보면, 하늘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을 절감케 된다. 또한, 수십 년 전의 디자인이 지금보다 더 모던한 것을 볼 때면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Winsor McCay. The Airship Adventures of Little Nemo
Alexander Braun 저 | Taschen
‘애니메이션’이란 것을 초기에 발전시킨 윈저 맥케이가 그 분야에 발을 들이기 전에, 뉴욕 헤럴드지에 컬러로 이 만화 ‘리틀 니모’를 20년이 넘게 연재했다. 당시 인쇄기술이 부족해 몇 색밖에 쓰지 못했지만, 지금 보아도 예술성이 넘치는, 그래픽 노블의 시초격인 책이다. 그의 엄청난 건축공학적 요소나 타고난 구도 감각은 그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Art Masters # 83: Eyvind Earle
Stursberg, Dirk 저 | Createspace
이바인드 얼은 디즈니의 전설적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배경 디자인을 전부 스타일링 했다. 고딕 양식과 중세 미술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그는, 50세 이후엔 상업 영역을 떠나 유화, 수채화, 판화 같은 자신의 작업 활동을 활발히 한다. 그의 디자인 감각은 감히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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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ackle of the Frost
Mattoti, Lorenzo
색과 구도, 디자인의 마술사 마토티의 2012년 작 그래픽 노블. 이 책의 일러스트는 그의 색에 대한 능력이 어디까지 인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스토리텔링은 최소한의 필요한 디자인의 구도를 지향한다. 그런 단순한 구도 위에 캐릭터의 액션을 통해 화면에 생명력을 심어주는 능력은 정말로 대단하다. 그의 놀라운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눈과 마음이 호강하는 책이다. 가끔 캐릭터 아티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답은 이것뿐이다. 많이 그리고, 좋은 그림을 많이 볼 것. 좋은 그림의 예를 묻는다면 가장 처음으로 마토티를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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