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봉오동 전투>의 포스터
한국 역사가 기록하는 독립군의 첫 번째 승리는 ‘봉오동 전투’다. 1919년 3월에 벌어진 비폭력 만세 운동에 대해 일본군은 총칼을 동원해 폭력적인 진압에 나선다. 이에 항일 무장투쟁의 움직임이 본격화하였고 그 중심은 중국의 만주 지역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면 만주에서는 무장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흔히 우리가 국사 수업에서 교과서를 통해 접했던 홍범도의 봉오동 전투는 만주의 지린성 일대에서 벌어졌다. 이곳을 출발점 삼아 한반도의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남하하여 세력을 키우면서 종국엔 조선독립을 이루는 것이 목표였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최진동의 대한군무도독부가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했다. 그리고 봉오동에 집결하여 강력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한 결과,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사망자 157명, 부상자 200여 명, 독립군 사망자 4명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봉오동 전투의 전후 사실에 관해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는 영화 <봉오동 전투>의 본문에는 친절하게 묘사되지 않은 까닭이다. (엔딩크레딧에서 당시의 신문 기사를 소개한다!) 영화는 봉오동에서의 전투보다는 첫 번째 승리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봉오동 전투>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의 변이다. “지금까지의 영화들이 피해의 역사, 지배의 역사, 굴욕의 역사에 대해 다뤘다면 <봉오동 전투>는 저항의 역사, 승리의 역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다.”
<봉오동 전투>는 이번 여름 시즌 한국 영화 기대작이면서 개봉 전부터 일본의 한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따른 갈등으로 작품의 성격과 국내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관심을 모았다. 8월 7일 개봉 일만 보면 꽤 적절한 이슈 타이밍에 영화가 등장한 셈이다. 이 영화가 중심에 두고 다루는 인물이 봉오동 전투에서 잘 알려진 홍범도 장군이 아니라 어릴 적 일본군에게 친동생을 잃은 아픔을 품고 있는 황해철(유해진)과 나이는 어려도 비범한 사격 실력을 갖춘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류준열)와 마적 출신의 저격수 마병구(조우진)라는 점도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는 인상이다.
3.1 만세운동도 그랬듯이 지금 벌어지는 한일 갈등의 양상에서 아베가 목소리를 높이는 일본과 다르게 한국의 두드러진 저항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건 아래로부터의 민중이다. “한두 명의 위대한 영웅보다 수많은 독립군의 희생을 다룬 이야기다” <봉오동 전투>를 정의한 원신연 감독의 발언을 놓고 보면 2019년 벌어지는 한일 갈등의 양상에 따른 저항은 ‘민초’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감독의 의도에 관해서는 100%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를 영화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적절했나 하는 데는 의문이 든다. 원신연 감독의 말이다. “일제강점기는 절망으로 점철된 시기가 아니라 희망과 용기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다. <봉오동 전투>를 통해 국권 침탈 시대를 이야기해왔던 그동안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 인터뷰에서 주목하고 싶은 단어는 ‘패러다임’이다. 과연 <봉오동 전투>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봉오동 전투>의 오프닝은 극 중 어린 시절의 황해철이 일본인에 의해 동생을 잃는 장면에 할애된다. 교활한 표정의 일본인이 황해철 형제에게 음식이 든 보자기를 던지듯 건네고 그 안에서 수류탄이 발견되자 동생이 이를 몸으로 막는 중에 폭사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상징의 몽타주로 순화하지 않고 슬로우 촬영으로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일본인을 향한 분노와 이로 인해 일본인에게 품게 된 황해철의 증오심에 동조하도록 한다. 국민적인 감정을 자극적인 이미지와 사연으로 반응하도록 하는 묘사 방식은 패러다임 변화를 언급한 감독의 발언과 다르게 모순적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른 한국의 대응 방식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보이콧 재팬’, 즉 일본 불매 운동이다. 자유무역 원칙을 무시하는 등 국제법을 위반해가며 비이성적인 태도로 이번 사태를 끌고 가는 일본에 맞선 한국의 태도는 차분한 가운데 조직적이고 이성적이면서 전국민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일본 제품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불매의 목소리만 높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체할 수 있는 한국 제품을 함께 소개한다든지 생활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 또한, 일본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반대 의사를 드러내고 비난하기 급급해하는 대신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는 대응으로 흑백 이분법의 논리에 함몰하지 않는다.
<봉오동 전투>가 ‘모두의 싸움, 모두의 승리’ 태그로 포스터에 내세운 것처럼 나 역시 한국인으로서 승리의 역사는 자랑스럽다. 다만, 한국은 선, 일본은 악의 도식적인 설정과 그래서 일본군의 폭력적인 면모를 가혹하고 잔혹하게 묘사한 이 영화의 방식은 사실관계를 떠나 ‘패러다임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드러냈던 감독의 의도를 고려했을 때, 2019년 지금의 시대정신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봉오동에서의 전투가 벌어지기 전 황해철과 마병구가 선두에 선 독립군은 일본군 순찰소대를 습격해 일망타진하는 중에 유독 소년병 한 명만은 살려둔다. 그리고는 일본군이 죄 없는 조선인에게 저지르는 짓을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라며 독립군의 행렬에 동참시킨다. 일본의 야만적인 침략 행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앞으로 일본을 이끌게 될 소년병에게 자각하게 만들고 진심으로 가해의 역사를 사과하게 하여 한국과 건설적인 미래를 도모하자는 의도가 깔려있을 터다. 그게 지금 ‘보이콧 재팬’ 운동에 참여하고 이끄는 대다수 한국인의 심정이다. 이의 시대정신을 <봉오동 전투>는 간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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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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