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땀과 열정
7월 25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레드슈즈>는 <겨울왕국>, <모아나>, <라푼젤>, <빅 히어로> 등의 작품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약한 한국인 최초의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김상진 캐릭터 디자이너가 참여해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할리우드 배우 클로이 모레츠가 ‘레드슈즈’의 목소리를, 샘 클라플린이 ‘멀린’의 목소리를 연기한 <레드슈즈>는 특히 해외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피노키오 등 다양한 동화를 변주해 모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애니메이션 <레드슈즈>. 약 10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마침내 개봉을 앞둔 <레드슈즈>의 모든 과정을 담은 아트북 『The art of 레드슈즈: <레드슈즈> 아트북』 가 영화 개봉과 함께 동시 출간되어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한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지난 7월 4일, 신사동 로커스 사옥에서 김상진 캐릭터 디자이너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김상진 캐릭터 디자이너는 먼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영화의 아트북 제작이 “미국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며 『The art of 레드슈즈: <레드슈즈> 아트북』 출간의 남다른 의미를 전했다.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죠. 애니메이션은 100% 창조하는 거거든요. 아티스트들이 일종의 창조주 역할을 해요. 애니메이션을 잘 모르는 분들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편안하게 보잖아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이런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땀과 열정을 쏟아 만든 아트워크들이 있다는 걸 보셨으면 했어요. 그럼으로써 애니메이션을 좀 더 깊이 있게 다시 볼 수 있고,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영화 <레드슈즈> 개봉을 앞두고 김상진 캐릭터 디자이너는 “무척 긴장된다”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갔다. “디즈니의 많은 인력과 엄청난 예산을 생각하면 지금 한국의 환경과는 차이가 있다. 수평적인 의사소통이나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 등 문화적인 차이도 있는데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경험이 축적되면 언젠가는 디즈니, 픽사에서 나오는 정도의 작품이 탄생할 거라고 믿는다”고 말하며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부탁했다.
“미국에서 제가 참여했던 작품이 개봉할 때 이렇게 긴장되거나 설렌 적이 없었는데요. 이번에는 기대가 많이 되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됩니다.(웃음) 처음에 <레드슈즈>를 시작할 때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았어요. 사실 어려웠습니다. 경험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봤고,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희망을 볼 수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 <레드슈즈>가 남다릅니다.”
흥미를 유발하는 캐릭터 디자인이란
모든 아티스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김상진 디자이너는 ‘매력’이라고 말했다. 아티스트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과 교감하고, 즐거움을 얻고, 뭔가를 생각하게 되길 바라는데 이는 캐릭터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었다. 또한 이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리듬, 실루엣, 형태, 흥미로운 비례, 직선과 곡선의 조화로움 등을 꼽았다.
“감정을 자극해서 우리를 즐겁게 만드는 것을 매력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관적이라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가 중요하겠죠. 먼저 ‘리듬’입니다. 그림 안에서의 리듬을 더해주는 것 중 하나는 인물의 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상상의 선’이거든요. 그리기 전에 이 선을 미리 상상한 후에 자세나 힘, 운동감을 그림에 넣어줍니다. 이 선은 단순하고 명료해야 하고요.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는 안 돼요. ‘실루엣’이 중요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보면 각 씬이 대부분 짧죠. 그 안에 캐릭터가 등장했다 사라지곤 하는데 실루엣이 불분명하면 관객들이 캐릭터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형태, 비례, 크기나 색깔 등이 다른 다양한 캐릭터를 쓰는 것이 좋다는 김상진 디자이너는 이런 요소가 “시각적으로 더 많은 흥미를 유발한다”며 작업할 때 “흥미로운 비례를 찾는 데 시간을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섬세한 캐릭터일수록 비례가 중요하죠. 어떤 사진을 보고 따라 그려본 경험 있으시죠? 다 그리고 보면 어딘가 달라요. 아주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캐릭터를 만들 때도 눈 사이 거리도 조금 바꿔보고, 얼굴형도 조금씩 바꾸면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걸 찾는 거죠.”
『The art of 레드슈즈: <레드슈즈> 아트북』, 44쪽
캐릭터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단순성’이라고 말하는 김상진 디자이너는 따라서 작업을 시작할 때 늘 “단순하게!”를 되새긴다고 말했다. 원형, 삼각형, 사각형이라는 단순한 형태 안에서 작업했던 여러 영화 캐릭터들을 보여주며 이 단순한 형태 안에 디자이너가 부여하는 상징이 있다는 점 또한 설명했다.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 내 캐릭터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가 무엇인가를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데요. 사각형은 과거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원형은 미래를 상징해요. 비행접시도 보면 원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영화 <월E>의 캐릭터도 이해가 되시죠? 또 원형은 친근함, 따뜻함, 선함을 상징할 수 있고요. 사각형은 튼튼함, 견고함, 고지식함, 정직함 등을 의미할 수 있어요. 삼각형은 위험, 날카로움, 긴장, 똑똑함을 상징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레드슈즈> 작업 스토리
영화 <레드슈즈>는 10년이라는 긴 제작 기간이 흐르는 동안 이야기의 배경이 중세에서 현대로 바뀌기도 하고, 그에 맞춰 만들어놓은 인물을 버리고 새로 만들어야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간단히 설명한 김상진 디자이너는 어느 순간 한 배우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바로 오드리 헵번이었다.
“짧은 머리의 오드리 헵번을 보신 적 있나요? 그 모습이 우리 영화의 주인공과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쭉 뽑아서 캐릭터 작업을 했죠. 개인적으로는 이 짧은 머리의 주인공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스토리가 바뀌면서 또 다시 디자인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등장한 배우가 클로이 모레츠예요. 이때부터 캐릭터 디자인에 속도를 내게 됐고, 표정을 잡기 시작했는데요.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은 미세한 표정을 담아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클로이 모레츠라는 배우가 가진 특징, 눈웃음 등을 담아낼 수 있었으면 했고요. 찡그린 표정에서도 주름을 한 개 넣을 것인가, 두 개 넣을 것인가, 이런 것까지 신경을 썼어요.”
『The art of 레드슈즈: <레드슈즈> 아트북』, 52쪽)
김상진 디자이너는 “영화를 두 번 보시길 바란다(웃음)”며 이런 미묘한 표정 변화를 잘 봐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디테일을 잘 살려주고, 좋은 디자인을 입히면 화면이 풍성해진다”며 캐릭터 디자이너가 관심을 두는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주었다.
『The art of 레드슈즈: <레드슈즈> 아트북』, 42쪽
특히 김상진 디자이너는 레드슈즈와 멀린이 서로에게 처음으로 호감을 느끼는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으며 영화의 감상 포인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아주 중요한 장면인데 어쩌다보니 작업을 초반에 하게 되어서 애를 먹기도 했고, 걱정하면서 작업한 장면인데요. ‘레드슈즈’와 주인공 ‘멀린’이 첫 번째 위기 상황을 겪은 후 헛간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어요. 한쪽에는 호롱불이 빛나고 있고, 두 인물이 처음으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싹트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아주 중요한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빠르고 멋있는 액션 씬보다 거의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상태에서 미묘한 눈빛이나 아주 작은 움직임 등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씬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시퀀스를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장면에 재미있는 것들이 들어있으니 영화를 보실 때도 눈 여겨 보시고, 미묘한 캐릭터들의 움직임을 잘 살펴 보시면 영화를 더 즐길 수 있을 거예요.”
『The art of 레드슈즈: <레드슈즈> 아트북』 에는 <레드슈즈>의 각본과 감독을 맡은 홍성호 감독의 인터뷰와 스토리 발전 과정, 영화 속 세계를 창조하는 모든 과정과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제작진의 코멘터리와 함께 담겨 있다. 김상진 디자이너는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보면 좋겠다. 서가 한 켠에 꽂아놓고 봐도 좋을 거다. 그림을 보며 즐거움을 얻고, 행복감을 맛보길 바란다.”며 아트북에 대한 애정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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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레드슈즈 : 레드슈즈 아트북싸이더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정삼성, 김상진, 양우석 공저 | 시공아트
아트북에는 영화에는 담기지 못한 10여 년 동안의 수많은 아트워크, 여러 버전의 시나리오, 주연을 맡은 클로이 모레츠와 샘 클라플린의 인터뷰와 캐스팅 비하인드, 그리고 감독과 제작진의 코멘트가 빼곡하게 들어 있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