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4> 포스터
(* 결말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본 게 벌써 24년 전이다. <토이 스토리>(1995)는 무슨 이런 신세계가 있지! 넋을 놓았고, <토이 스토리 2>(1999)는 속편도 재밌단 말인가!! 할 말을 잃었고, <토이 스토리 3>(2010)는 장난감들에 감정 이입해 내가 눈물을!!! 감격하면서 보았다. <토이 스토리 4>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재미에 더해 전혀 예상 밖의 감정적 울림으로 또 한 번의 놀람을 선사한다.
<토이 스토리 4>는 9년 전의 사연으로 오프닝을 연다. <토이 스토리 3>에서 잠깐 언급이 됐는데, 어딘가로 떠난 보핍(애니 파츠 목소리)을 아쉬워하는 우디(톰 행크스)의 풀 죽은 얼굴이 과연 둘 사이에 어떤 이별의 사정이 있었을까 궁금증을 자아냈다. <토이 스토리 4>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보핍이 몇몇 장난감들과 함께 앤디와 몰리 남매를 떠나 다른 주인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갔던 것. 9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극적 만남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사랑의 오작교 역할을 하는 건 포키(토니 헤일)이다. 포키는 앤디를 대학으로 떠나보낸 우디가 새로 주인으로 맞이한 보니의 핸드메이드 장난감이다. 보니가 유치원에 입학한 첫날 쓰레기통에 있던 일회용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포키를 직접 만들었다. 장난감으로 재활용된 셈인데 포키는 자신의 출신이 쓰레기(?)라며 쓰레기통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다가 거리에서 길을 잃게 됐고 우디는 포키를 찾아 나섰다가 놀이공원에서 보핍과 우연히 만난다.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4>의 한 장면
극적 만남도 놀라운데 보핍의 변화는 더 놀랍다. 나풀나풀 핑크 드레스일랑 저 멀리 처분해 버리고 활동하기 편한 바지 복장에, 지팡이를 들고 ‘나를 따르라!’ 동료 장난감들을 진두지휘하는 보핍은 그야말로 그 누구의 딸도 아닌, 아니, 그 누구의 장난감도 아닌, 아니아니 그냥 걸크러쉬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20년 넘게 장수하면서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시대를 반영한 변화, 즉 성장이다.
‘성장’은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주요한 테마다. <토이 스토리>뿐인가, 픽사의 작품들은 첨단의 컴퓨터그래픽을 앞세우면서도 우정, 가족애, 사랑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로 형식과 이야기의 균형을 유지하며 전 세대가 즐기는 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성장과 관련,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 한정해 얘기하자면, <토이 스토리>는 미국 아이들 장난감 계의 ‘구관’ 카우보이 우디와 ‘신관’ 우주비행사 버즈(팀 알렌)가 신구 조화의 ‘우정’을 나누었다.
<토이 스토리 2>에서는 일본 장난감 박물관에서 편하게 품격있게 각종 서비스를 받으며 여생(?)을 보낼 수 있었던 우디가 창고에 갇히기 싫어하는 친구 장난감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연이 중심에 놓였다. 대학에 입학해 집을 떠나는 앤디와의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던 우디와 버즈와 장난감 친구들은 <토이 스토리 3>에서 새 주인 보니를 맞아 ‘새 출발’을 경험했다.
우정과 희생과 이별과 새 출발은 인간이면 모두 자라면서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성장’의 가치다. <토이 스토리 4>에서도 우디는 버즈와의 콤비 플레이 속에서 기존의 장난감과 ‘다른’ 재질의 포키를 포용하고, 장난감의 가치를 잃어 골동품 상점에서 갇혀 지내 강박적으로 인간의 손길을 갈구하는 개비개비(크리스티나 헨드릭스)와 고전 복화술 인형 벤슨을 달래 친구로 맞이한다.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4>의 한 장면
장난감을 의인화해 보편적 인간의 가치를 드러내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가장 두드러진 감정은 우정이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본분이면서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장난감 홍수 속에서 모여 지내야 하는 운명 공동체의 특성은 장난감으로 우정을 강조하기에 제격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주제곡은 ‘너의 친구가 되어줄게 You’ve Got A Friend In Me’이다. 가사 또한, ‘눈앞에 길이 험해도/ 따뜻하고 좋은 침대에서 수백 수천 마일 떨어져 있어도/ 너의 친구가 한 말만 기억해/ 내가 친구가 되어줄게’ 우정 예찬이다.
우정이 좋은 가치라는 건 변함이 없어도 성장은 우정 외의 감정을 필요로 한다. 우디가 평생 앤디의 장난감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늘 버즈를 비롯하여 친구들과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디는 <토이 스토리 4>에서 그동안 함께했던 버즈와 9년만에 재회한 보핍 사이에서,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인간은, 장난감은, 생명을 가진 존재는 언젠가 가족을 떠나 한 개인으로 독립하듯 친구들과 익숙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사랑으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야 하는 법이다.
보핍이 우디에게 전하는 말은 “눈을 뜨고 세상을 봐”이다. 보핍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며 리더로 성장한 것처럼 인간의 가족애와 장난감 친구들과의 우정의 울타리 안에서 지내던 우디는 <토이 스토리 4>에 이르러 더 넓은 세상과 감정을 경험할 때를 맞이했다. 그것은 보핍과의 러브 스토리이면서 버즈의 트레이드 마크 격인 대사를 빌리자면,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To infinity and beyond!’이다. 인간 나이로 치면 스물네 살이 된 우디와 보핍 커플 앞에 펼쳐질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일까. 나도 모르게 부모의 마음이 되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게 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