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누군가 진심으로 자기감정에 호소할 때, 왜라고 물으면 안 돼! 그런 사람은 입을 아주 꿰매버려야 해! 벌리지 못하도록.”
이렇게 격분하여 말하는 자 누구인가. “배신이야, 배신!” 영화 <넘버 3>의 송강호처럼, 침 튀기고 눈도 부라리며 말하는 자 누구인가. 나다. 이따금 나는 대화 중에 이토록 흥분한다. 내 말의 취지를 제대로 설명하고 싶어, 빠르게 말하다 끽끽대며 새소리도 낸다. 달리다가 제 속도에 못 이겨 넘어지는 사람처럼 보이겠지?
어떻게 된 거냐. 후배 A가 인간관계로 힘들어 하기에 조언을 해주다 나온 말이다. 이번에야 말로 네 마음 상태를 솔직하게 말해줄 때다, 논리나 이성에 호소할 때가 있고 감정에 호소할 때가 있는데 지금은 딱 까놓고 네 심정을 전달할 때, 라고 말하는데 A가 걱정하는 거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느끼는데?’라고 말하면 어떻게 해.” 나는 대답했다. 100분 토론에 나간 게 아니라면, 그러니까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를 따지고 들 게 아니라면, 누군가 본인 감정에 호소하는 이야기를 할 때, 절대로! ‘왜’냐고 물으면 안 된다고. 그건 배신이니까! 그런 놈은 입을 아주 꿰매버려야…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는 날 보며, 한참을 웃던 A의 다른 질문.
“그럼, 내 감정을 말했을 때 가장 좋은 대답은 뭔데?”
“아, 그랬구나. 아, 네가 섭섭했구나. 아, 내가 미처 몰랐구나. 이게 FM이야!”
며칠 뒤 A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말대로 상대에게 이러저런 게 섭섭하다, 마음이 힘들었다, 심정을 차분히 털어놨더니 효과가 좋았단다. 상대방이 ‘깜짝’ 놀라며 전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했단다. 심지어 늦은 밤 그쪽에서 긴 문자를 보내기까지 했다나? A는 요새 죽을 맛이었는데 관계 개선의 여지가 생겼다며 좋아했다. 순두부찌개를 먹는데, 몇 달 만에 음식 맛을 제대로 느껴봤다나? 침을 튀겨가며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해 준 보람이 있다. 참으로 다행이다! A의 문제가 해결되어서, 그자가 ‘왜’냐고 묻지 않아서, 내가 그이(모르는 사람!)의 입을 꿰매버리지 않아도 되어서.
대체로 인간관계 문제에서 ‘진짜 문제’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말을 들으려하지 않는 데 있다. 귀가 두 개고 귓구멍이 뚫려 있어도, ‘듣기’는 어렵다. 마음을 내 쪽이 아니라 당신 쪽에 두는 일이라 그렇다. 당신이 되어보는 일, 당신이 문제가 있다고 말할 때 그런 당신에게 ‘연민’을 느껴야 하는 일이라 그렇다. 연민은 감정이입의 유일한 입구다. 한때 우리 모두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사용하지 않아, 야위어가는 감정.
“세계 어디서든 모든 아이들에게서 연민을 볼 수 있어요. 아이들은 주변 사람들과, 동물과, 심지어는 장난감과, 이야기책에 나오는 인물과 완전히 동일시합니다. 연민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루기는 어렵죠.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감상적입니다. 하지만 첫 걸음을 내딛는 거죠. 제 생각에는 윤리학만이 아니라 예술도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 존 버거 인터뷰 일부, 『작가라는 사람』 , 311쪽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연유로 그럴까, 고민해봐야 한다. 그가 자기 생각을 말하면 들어야 한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 보아도 납득이 안 될 때 돌아서면 된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달하려 애쓰는데, 당신의 귀가 막혀있다면, 그때 돌아서면 된다. 말하기, 듣기. 우리가 어릴 때 배운 거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교과목에도 있었지 않은가! 그걸 다시 배워야 할 사람이 많다. 특히 듣기! 필요하다면 듣기 평가도 해야 한다. 해서 배워야 한다. 이따금 나는 감옥에 있는 전 대통령의 입장에도 자주 서보곤 한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무슨 연유로… 그러다 이해가 안 되어, 봐줄 수 없어 감옥 문을 꼭 닫고, 총총 돌아 나오지만. 어쨌든 시도는 해봐야 한다.
사람을 진짜 움직이는 건 조리 있는 주장, 지상 명제를 증명하는 논증이 아닐지 모른다. 그보다는 어떤 진심, 감정에 호소할 때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노사문제, 남북문제, 가족문제, 연인문제도 논리와 이성만으로 해결하려 하면 답이 없다. 논리와 이성은 저울과 자, 칼과 같이 등장하니까. 재고 자르고 버려야 하니까. 그러나 상대에게 ‘성토하는 마음, 자기 진심’을 들고 간다면? 서로의 이해뿐 아니라 감정까지 헤아리려 한다면? 들을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다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감상적인 생각인가? 맞다. “하지만 첫 걸음을 내딛는 거죠.(존 버거)” 당신의 귀를 믿고 싶으니까. 당신의 귀는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무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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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사람엘리너 와크텔, 올리버 색스, 가즈오 이시구로, 캐럴 실즈, 에드워드 사이드 저 외 4명 | xbooks
영문학과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30년 가까이 라디오 작가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는 와크텔의 놀라운 인터뷰는 우리에게 익숙한 수많은 작가들을 낯선 눈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박연준(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