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가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향해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간다. 무슨 꽃이 피었는지, 어떤 곤충이 다니는지, 바람은 어떤지 종알종알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아이들은 종종 양 떼를 만나 걸음을 멈춘다. 적소나무가 오종종하게 이어지는 숲은 아이들의 놀이터다. 바구니 하나씩 들고 아빠를 따라나선 세 아이는 숲속에 소담스레 핀 버섯을 보물찾기하듯 찾아내고, 길목에서 마주치는 야생화들의 이름을 배운다. 겨울에 불쏘시개로 사용할 솔방울을 줍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스페인 해발 1200미터의 고산 마을 ‘비스타베야’에 사는 유일한 한국인 김산들 씨 가족의 어느 하루다.
산들 씨는 이십 대 중반에 네팔을 여행하던 중, 스페인 사람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새로운 인생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평범한 직장을 다니던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은 여행, 그리고 남편과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해 산들 씨는 “자전거를 끌던 곱슬곱슬한 머리의 이방인을 만난 순간, 어쩌면 나는 지금의 미래를 신선한 바람처럼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회상한다. 스페인 고산에 집을 짓고 세 아이를 키우며 생태계를, 자연의 위대함을, 한국과 다른 스페인 문화를 배우며 산 지 어느덧 16년째. 흔치 않은 가족 이야기를 책을 통해 펴낸 산들 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는 요즘 많이 보이는 에세이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책 같아요.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도 살아본 적 없는 동화 같은 삶이 담겼다고 할까요? 작가님 가족의 에피소드를 통해 현실감 있게 전해져서 대리만족의 기쁨과 위로를 주는 것 같아요. 어떤 계기로 한 권의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블로그를 통해 만난 독자 분들이 ‘이 글은 혼자만 읽기 아깝다’고 안타까워하는 일이 종종 있었어요. 자연 속에 살면서 우리 가족이 함께 느끼고 감동한 사연, 이상과 다른 현실적인 라이프 스타일, 향수를 부르는 자연 현상과 재해 등 제 삶이 제 블로그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시골에 산다고 사회관계까지 외면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고,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어떤 이에게는 귀한 조언이, 또 어떤 이에게는 좋은 치유와 위안이 될 수 있기에 용기 내어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책에는 자연에 살면서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써 지구 생태계와 환경 보호, 아이들 교육에 초점을 맞춘 제 삶을 소개했어요. 그렇게 기록한 글이 쌓여가던 도중, 감사하게도 출판사에서 제안이 와 한 권의 책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써왔답니다. 매일 일기를 쓰는 습관이 들어 무엇인가 꼭 기록을 해둬야 마음이 놓이는 버릇이 덩달아 생겼어요. 컴퓨터를 쓰기 전까지는 일기장에 썼는데 요즘은 블로그로 글을 써요. 하지만 누구나 볼 수 있으니 공개된 일기라고 봐야겠죠. 글과 사진, 영상을 같이 기록하니 나중에는 커다란 자료 창고가 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 기록들을 들춰보면서 보다 정리된 언어로 생각과 느낌을 정리할 수 있어 좋습니다. 물론, 그날그날 썼던 글은 독자 분들과 만나는 소통 창구가 되기도 해요.
작가님의 글은 재미있게 술술 읽히면서도 굉장히 편안한 느낌을 줘요. 과장이나 꾸밈 없이, 솔직히 써낸 느낌이고요. 책을 집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이 있었나요?
한마디로 '쉽게 쓰기'입니다. 화려한 어휘를 쓰기 보다는 맥락의 흐름을 깨지 않도록 쓰려고 합니다. 단순하게 묘사하고 단순하게 표현합니다. 누구나 제 블로그 글을 쉽게 읽고 느낄 수 있도록 글을 쓰려고 한답니다. 그날 있었던 순간의 느낌과 생각을 그날그날 정리하고, 훗날 이것들을 바탕으로 글을 다듬어 나가는 게 저의 글쓰기 방식이랍니다.
여행 중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스페인 남편과 함께,200년 된 돌집을 무려 7년 동안 직접 수리하고 그곳에서 세 아이를 낳아 예쁜 가정을 이루셨죠. 고산 생활을 택한 이유가 단순히 자연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특별한 꿈이나 목표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제 꿈은 자연에서 텃밭을 꾸미고 글을 쓰면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제 꿈이랍니다. 그림도 그리고, 도자도 굽고, 글도 쓰고, 맛있는 빵도 만들면서 말입니다. 너무 순수하다며 남편이 저를 놀리기도 하지만 뭐 어때요? 이게 꿈인 사람인데. (하하) 처음에는 고산 생활을 꿈꾸지 않았답니다. 어쩌다 우리 부부가 선택한 자연의 삶이 고산이 되었던 거죠. 그런데 이곳에서 살다 보니 자연이 위대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자연 예찬론자가 되었습니다. 고산 지대에서 발하는 자연과 제 꿈이 저 스스로를 행복해지게 하더라고요.
스페인 해발 1200m의 고산에서의 삶이 불편할 때도 많을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서의 삶을 꿈꾸지만, 문명화된 도시의 '편리함' 때문에 막상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살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곳에서 문명의 편리함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랍니다. 다만 전기를 사용해 식기세척기를 돌릴 수 없고, 토스터, 주전자, TV,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편이 사실은 행복을 주는 첫 번째 요소이기도 합니다. 불편해서 불만만 쌓인다면 인생이 비참해지는 건 한 순간입니다. 스스로가 행복하기 위해서도 불편을 불만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불편은 불편한 대로 행복을 주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불편을 해결하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그 순간 속에서 즐겁게 느껴지는 일들이 많아요. 빵 가게가 없어 시작한 빵 만들기나 인터넷이 없어 시작한 마을 공동 인터넷 협회로 소통하는 일이라든가, 전기 토스터가 없어 시어머니께서 주신 30년도 더 된 수동 토스터를 사용하는 일상 등....... 설명할 수 없는 소소한 행복이 전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게는 불편함이 인생을 즐기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남편 산똘도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자동(Auto) 기어의 차보다 수동(Manual) 기어의 차를 모는 게 더 재미있어. 편리한 자동 기어는 우리를 심심하게 하지만, 수동 기어의 차는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신나거든." 편리하지 않은 곳에서 산다고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철학은 변치 않습니다.
숲과 가까이 살면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리고 가장 외롭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지요.
단순해요. 산책할 때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마음껏 달리는 모습을 보고 행복합니다. 자연에서 꽃과 나비와 각종 곤충을 관찰할 때, 저 멀리 지평선 위의 구름을 바라볼 때 무한한 행복을 느낍니다.
다만 계절이 변하는 시기가 가장 외롭더라고요. 아마 그건 인간이 자연과 밀접해 있다는 증거일 거예요. 그때마다 왜 마음 속에 외로움이 느껴지는지 잘 모르겠어요. 계절이 변하면 바람 냄새와 흙냄새도 급격히 달라지는데, 그 냄새가 유년기의 추억 일부를 불러와 외롭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되더라고요. 신기하죠?
스페인에 산 지 올해로 벌써 16년 차인데, 처음에는 문화 차이 때문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동안 경험한 스페인 사람들은 어떤가요? 또, 작가님에게 비스타베야(Vistabella)에 정착한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스페인이나 한국이나 사람들은 여러 형태로 존재해요. 특별히 한국이라서 더 좋고, 스페인이라서 더 나쁜 것도 없어요. 그저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곳 비스타베야에서도 이방인을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와 성향이 달라서 안 보고 사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면 대부분 좋은 얼굴로 맞아주기 때문에, 일단은 웃으며 상대방에게 인사를 합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제게 마음을 열고 다가옵니다. 그들처럼 행동하고, 그들처럼 당당하게 말하다 보면 어느새 저도 모르게 구성원이 되어 있더라고요.
제 인생에서 비스타베야는 목적지가 아니라 지나가는 한 정거장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역에서 잠시 즐겁게 놀다 가는 것으로 생각하면 고산 생활의 힘든 일도 좀 수월해지더라고요.
언젠가 아이들이 성장하여 부모의 품에서 떠나더라도, 여전히 그 집에서 여생을 보내실 건가요? 산들 씨 부부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요.
여기는 젊었을 때 생활하기 좋은 곳이랍니다. 날씨는 혹독하고, 겨울은 춥고, 해야 하는 집안일도 많고요. 나이가 들면 좀 더 편하고 날씨도 따뜻한 곳에서 살 수 있겠네요. 지중해 연안의 작은 시골집도 좋겠어요. 날씨가 따뜻해 텃밭 채소도 잘 자라는 곳이면 좋겠고, 오렌지와 올리브 나무도 심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놀러 와 해변도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완벽하겠네요.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비스타베야 고산 지대에서 휴가를 보내더라도, 우리 부부는 기후 좋은 따뜻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 상상 한번 해봤습니다. (하하)
그런데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우리 부부 일은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가 없답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날에 감사하며 살아내는 게 우리 부부의 몫이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하루하루 해결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출구가 보일 때가 있거든요. 미래에 뭘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온몸으로 느끼며 성실히 살아가는 게 최선이라고 봅니다. 우리 부부가 말년에 이곳에서 여전히 살 수도 있고, 어쩌면 날씨 좋은 지중해 연안 마을로 옮길 수도 있다는 것,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게 지금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부부는 여전히 비스타베야를 사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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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김산들 저 | 시공사
도시의 번잡한 삶에 지쳐 탁 트인 지평선과 고요한 자연이 그리운 사람, 그리고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찬찬히 돌아볼 여유를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가족을 만나보자.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