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휴일에게 더 기대할 건 없어 보였다. 이방인으로의 긴 방황 끝에 달콤하고 낭만적인 로맨스를 노래하던
‘사랑 3부작’의 두 번째
앨범의 기괴함은 역설로부터 온다. <201>을 연상케 할 정도로 사운드는 생기가 넘치는데 그 메시지는 허무한 하룻밤과 고독하게 헝클어진 애정이다. 나른한 전작처럼 출발하는 「섬」을 보자. 중간 발랄한 전자음으로 변신을 암시하더니 뜻 모를 읊조림과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경쾌한 모던 록으로 태세를 전환하고 무아지경의 기타 솔로로 절정에 치닫는다. 조휴일의 미덕은 본래 발칙이었다.
레게 리듬의 신스팝 「상수역」의 사내는 하룻밤 여인을 떠나보낸 뒤 정처 없이 방황하고 가벼운 로커빌리 트랙의 제목은 「광견일기」다. 방종한 관계 속에도 ‘우리 정분 났다고는 생각지도 마’라 단정하며 이 미친개의 삶이 결코 행복할 수 없음을 냉정하게 암시한다. 차분한 포크 트랙의 「빨간 나를」의 불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이다. ‘더러워질 대로 더러운 영혼’은 ‘천박한 계집아이’와 함께 이성으로 이해될 수 없는 젖은 밤을 보낸다.
조휴일은 정처 없는 발걸음의 이 사내를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뒀다. 이국의 화려한 춤사위와 음악으로 눈과 귀를 멀게 하는 「Bollywood」의 축제는 새벽 길거리의 붉은 네온사인을 닮았다. 「Fling; fig from france」와 닮은 슈게이징 「Put me on drugs」가 선사하는 무아지경의 쾌락을 즐기던 주인공은 「하와이 검은 모래」로 순진한 반려자에게 ‘내 지은 죄가 너무 무겁네요’라 조용히 흐느낀다. 그마저도 스탠더드 리듬으로 진행되는 곡 후반부 관능의 색소폰이 추가되니 욕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걸 암시한다.
로맨틱한 「맑고 묽게」로 배덕한 관계를 이죽거리며 고백하는 남자는 결국 검은 노이즈의 안개로 뿌옇게 칠해진 「그늘은 그림자로」에서 ‘이제 우리 다시 나란히 누울 순 없겠지’라며 엉엉 울고 만다. 상처만 남고 황망하게 비어버린 영혼은 최후의 순간에도 ‘피와 갈증’을 갈구한다. 전작에서 ‘사랑이 전부’라며 「우리 둘만 남아있다」를 노래하던 그가 ‘줄은 처음부터 없었네 / 나를 기다릴 줄 알았던 사람은 너 하나였는데 / 이제 난 혼자 남았네’라며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은 처절한 비극의
아마 그 흉측함이 낯설지 않은 건 그의 파격이 누구에게나 있는 비밀, 부정하려 하나 숨길 수 없는 일상의 검은 한 페이지인 탓일 테다. 천박하고 더럽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빌려야만 설명할 수 있는 순간과 감정이 있다. 아, 정말이지, 얄궂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