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 “17년 만에 성장소설 『설이』, 많이 울었다”
아이들이 침묵하는 세상은 옳지 않다. 아이들이 되바라지게 자기 주장을 내뱉을 때,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받아주는 진짜 어른들이 많아져서 세상이 좀 더 시끌시끌한 곳이 되면 좋겠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9.02.07
작게
크게

심윤경작가_설이.jpg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설이』 라서 참 다행이에요.”

소설가 심윤경이 6년 만에 쓴 신작  『설이』 를 쓰고 난 후,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올해로 고3이 되는 딸의 사춘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쓴 소설. 최근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의 소설판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13살 소녀 ‘설이’가 견뎌낸 성장의 시간을 그렸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과 한때 아이였던 사람들에게”로 시작되는  『설이』 는 첫 장부터 독자들을 작품 속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순식간에 읽히지만 ‘설이’의 목소리가 좀체 잊히지 않는 소설, ‘아이가 잘 자란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 질문하게 만든다.

 

소설은 주인공 ‘설이’가 짝짓기 놀이를 하는 꿈을 꾸면서 시작된다. 12년 전 함박눈이 쏟아지는 새해 첫날 새벽,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진 갓난아이로 발견된 설이. 설이는 풀잎보육원으로 보내졌지만 세 번의 입양과 파양을 겪은 후, 보육원에서 일하던 위탁모 ‘이모’와 함께 살게 된다. 설이를 구조한 보육원 원장은 설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훌륭한 교육뿐이라 믿고, 우리나라 최고 부유층의 사립초등학교인 우상초등학교로 전학시킨다. 함묵증을 갖고 있는 설이는 우상초등학교에서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우상초등학교의 짱 ‘시현’이 설이의 출생 비밀이 담긴 동영상을 퍼뜨리면서 둘은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학교 측의 권유로 ‘설이’는 부유한 형편의 시현이네 집에서 살게 된다.

 

지난 1월 28일, 『설이』 를 펴낸 심윤경 작가를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만났다. 심윤경은 “어린 시절부터 학생, 학부모가 되기까지 꾸준히 던져왔던 질문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1.jpg

 

 

피 흘린 소설, 본질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쓴 장편 소설이다.  『설이』 를 쓴 소감은.

 

소설을 쓸 때, 나는 순간을 즐기고 흥겨워 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단 한순간도 즐겁지 않았다. 한줄 한 줄 쓰는 일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왜 고통스러웠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나의 첫 독자인 편집자님께 초고를 보냈을 때, “감동!!”이라는 짧은 회신을 받았다. 아, 해냈구나 싶었다. 쓰는 동안 유예됐던 행복감이 뒤늦게 찾아왔다. 쓰디쓴 견딤의 시간이었다.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것 같은 시기였기 때문에 소설을 쓰면서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가로서 살아온 시간들, 그 삶의 방향이 맞았나? 내가 소설가가 맞나? 라는 의문이 많았다. 그래서 성장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였다.

 

교육 문제를 다룬 드라마 의 소설판이라는 평도 있다. 드라마를 보았나?


4부까지 봤는데 마음이 너무 부대껴서 도저히 못 보겠더라. 안 그래도 소설을 쓰는 내내 피 흘렸는데, 더 이상 흘릴 피가 없어서 못 봤다. 드라마와 소설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의 일부분이 겹치는 것 같다. ‘부모의 교육열은 무엇인가’,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용납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해본 시간이었다.

 

결국 이 작품은 ‘사랑 이야기’라고 말했다.


부모의 코칭이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도 물론 있다. 김연아 선수와 같은. 하지만 코칭은 부대 기능이지 부모의 사랑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정말 단순한 거다. 공기 같은 것이고, 따뜻해야 하는 것이고, 예뻐하는 것이다. 옳지 않은 사랑은 아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동시에 부모를 몹시 불행하게 만든다. 피려던 꽃도 마르게 만드는 게 잘못된 관심과 사랑이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부모 자신의 심리 상태가 행복하고 안정되어야 한다. 부모 스스로 쫓기고 질책 받고 눈치를 받으면, 아이에게도 그 감정이 전달될 수밖에 없다.  『설이』 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아이를 예뻐하는 것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소설에 담고 싶었다.

 

실제 자녀가 올해 고3이 된다고 들었다.


죽을 맛이다. 정말 힘들다. 나름대로 뚝심 있게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쉽지 않다. 고3까지 사교육을 거의 안 했다. 초등학교까지는 완전히 놀게 하자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자유로운 야생의 삶을 주고 싶었다. 아껴둔 에너지가 중고등학교 때 발산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는데, 아니었다. 아이랑 정말 많이 싸웠다. 사교육을 안 할 걸 아이가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택도 없었다. (웃음) 내 착각이었다.

 

왜 성장소설이여야만 했나?


학부모로서의 나보다 어린아이로서의 나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장 강한 자아는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로서의 나보다 소설가로서의 심윤경이다. 격렬한 상황에서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자꾸만 아이 심윤경이 눈에 밟혔다. 내가 과연 좋은 학벌을 갖지 않았다고 해도 사랑 받았을까? 그래도 존중 받았을까? 내가 성취한 것에 기대지 않고, 나 자체로서의 자존감을 가질 수 있었을까? 반문하게 됐다. 초중고를 같이 보낸 친구들에게 “어린시절 나는 불행감을 많이 느낀 아이였다”고 말하면,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안정된 가정에서 공부를 잘한 아이가 불행감을 느꼈으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거다. 지나친 사랑의 일면에는 ‘성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주문이 들어 있다. 실제로 공부를 잘하고 있는 아이에게도 이 주문이 불행감을 준다는 사실을 소설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설이’라는 주인공을 어떻게 그리고 싶었나?


설이는 가차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길 바랐다. 아이들의 되바라지고 인정사정 없는 부분이 어른들의 마음을 할퀴곤 하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깨달은 점은 아이가 좋게 말하면 어른이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게 좋게 말하면 어른들은 설득하거나 깔아뭉갠다. 아이가 어느 정도 싸가지 없게 말하는 건 자연스러운 성장 단계다. 문제는 어른들이다. 아이를 가르치는 척 우아하게 말하면서 진짜 내용을 말하면 귀를 닫으니까. 어른으로서의 내 모습, 부모로서의 내 모습을 많이 반성한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설이’지만, ‘함묵증’을 겪는 ‘설이’이기도 하다.


입양과 파양을 여러 번 겪으면서 설이는 특정한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는 ‘함묵증’을 갖게 된다. 세상과 단절하고 싶은 마음을 ‘함묵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소설을 쓰다 보니, 실제로 어른들은 자기 할 말을 하지 않는 아이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적 장치라기보다는 설이가 갖고 있는 ‘상처’를 강조하고 싶었다.

 

독자, 또는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른들은 사나운 아이들의 용기와 에너지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침묵하는 착한 아이들이 억누르고 있는 감정과 욕망들을 밝고 안전한 곳으로 꺼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침묵하는 세상은 옳지 않다. 아이들이 되바라지게 자기 주장을 내뱉을 때,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받아주는 진짜 어른들이 많아져서 세상이 좀 더 시끌시끌한 곳이 되면 좋겠다. 이 소설  『설이』 로 나는 세상 아이들에게 졌던 마음의 빚을 조금은 갚았다. 그것은 정말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상의 아이들은 모두 소중하고 우리는 모두 한때 아이였으니까 말이다.
- 작가의 말 中

 


 

 

설이심윤경 저 | 한겨레출판
‘아이를 위해서’라는 말 뒤에 숨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짜 사랑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설이 #심윤경 작가 #침묵 #아이들
1의 댓글
User Avatar

찻잎미경

2019.02.11

서평단 신청을 해 두고. 아주 많이 기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요즘 성장소설 - 찐한 휴머니즘 같은 사랑이야기 읽는 게 너무 좋습니다 ^^
답글
0
0
Writer Avatar

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