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임신의 지속과 중지, 선택할 수 있어야 (G. 류민희, 이유림)
사람들이 임신을 유지하는 게 그냥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임신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신경을 쓰고 의료적인 도움을 받아서 유지하는 거거든요. 임부가 임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몸에 대한 노동과 태아에 대한 노동과 재생산 노동들을 하면서 의료적 기술들의 도움을 받아서 관리를 해가면서 지속하는 거고요.
글ㆍ사진 임나리
2018.12.27
작게
크게

[채널예스] 인터뷰.jpg

 


전 세계적으로 한해 5600만 건의 유산이 일어나며, 네 건의 임신 중 한 건은 (자연유산이든 인공유산이든) 유산으로 종결된다. 이들 중 2500만 명이 고식적이고 비과학적인, 안전하지 못한 낙태 시술을 받고 700만 명이 인공유산 관련 합병증으로 인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보건의료 체계 내에서 낙태가 공식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여성이 원치 않은/예상치 못한 임신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건강이나 앞으로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일 때,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공유산밖에 없다. 이 맥락에서 인공유산은 ‘의료’의 사전적 정의-개인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의사나 간호사, 그 외의 보건의료인에 의해 행해지는 모든 행위-에 합당하다. 따라서 낙태를 제한하는 모든 법적ㆍ제도적 장벽은 여성의 의료 접근권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간주될 수 있다. 100퍼센트 성공률의 피임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낙태 시술은 필요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건강과 안전은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다.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에 대해 말하는 책  『배틀그라운드』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류민희 변호사, 이유림 활동가 편>


오늘은 <측면돌파> 사상 처음으로, 두 분의 저자를 모셨습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활동하시는 류민희 변호사와 여성학, 인류학 연구 활동가이신 이유림 저자님이에요. 두 분은 ‘성과 재생산 포럼’에서 관련 운동을 함께 하시면서 책  『배틀그라운드』 의 공저자로 참여하셨는데요. 국가와 사회가 관리하고 간섭해 온 우리의 몸은 ‘배틀그라운드’이고, 그에 맞서야 하는 이곳은 전장(戰場)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류민희, 이유림 두 저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김하나 : 두 분이 ‘성과 재생산 포럼’에서 활동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으신 건가요?

 

이유림 : 네. ‘성과 재생산 포럼’이 2015년에 ‘장애 여성이 경험하는 재생산-임신, 출산, 양육, 섹슈얼리티 등 성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장애 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라는 사업을 가지고 여러 단체들을 초청했어요. 그때 여러 활동가들, 연구가들, 의료진들, 변호사들이 모여서 사업을 함께 하면서 마음이 맞아서 ‘한국사회에서는 주류 운동의 계열에서도 성과 재생산에 대해 논의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후부터 ‘성과 재생산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하나 : 몇 명쯤 되나요?


이유림 : 열다섯 명쯤 되나요, 우리가?


류민희 : 네.


김하나 : 그러면 열다섯 명 정도가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활동하고 계신 거예요?


류민희 : 저도 변호사이기 때문에 주로 법류적인 측면에만 중점을 두고 여태껏 공부를 해왔는데요. 저희 모임 장점이 의료에 관해서도 더 잘 아시는 분이 있고 현장에 관해서도 더 잘 아시는 분이 있어서, 어디에서든 답이 바로 바로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만한 포럼이 없다’라고 생각을 하고 잘 지내다가, 어떻게 책까지 내게 됐네요.


김하나 : 약간 ‘어벤져스’ 같은 느낌이에요.


이유림 : 저희끼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류민희 :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웃음).


이유림 : 어디에 가서 그렇게 말을 해본 적은 없지만(웃음). 

 

김하나 :  『배틀그라운드』 의 저자들이 많잖아요. 몇 분인가요?


이유림 : 열두 명입니다. 


김하나 : 열두 명이 함께 쓰신 책이고, 그 중에 두 분을 초청했어요. 2018년의 마지막을 낙태죄를 이야기하면서 팟캐스트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류민희 : 아주 잘 된 일 같습니다(웃음).


김하나 : 네(웃음). 그러면 이유림 저자님과 류민희 저자님이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어요?


이유림 : 저는 의료인류학을 공부했고요. 의료인류학 자체가 사람들이 어떻게 질병과 몸의 경험을 해 나가는지 현장을 기반으로 해서 인류학,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인데요. 공부를 하고 나서 여성의 몸을 조금 더 기반에 두고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장으로 오게 됐어요. 이전에는 ‘성과 재생산 포럼’이  조금 더 학술적인 활동들을 훨씬 더 많이 하고 연구물들을 생산하는 작업들을 해왔는데, 갑자기 2016년도에 낙태죄 이슈가 터진 거예요. 그것도 어떤 계시처럼 느껴져요. 왜냐하면 저희가 ‘성과 재생산 포럼’이 꾸준하게 해오던 포럼의 주제로 낙태죄 관련 이슈를 잡아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9월 26일에 갑자기 보건복지부 시행령이 발표되면서 ‘검은 시위’가 일어나고, 여성들이 시위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김하나 : 이 맥락에 대해서 잘 모르실 수 있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2016년의 그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어떤 건가요?


이유림 : 네, 보건복지부가 의료법 상에서 임신 중지를 시술한 것을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지어서 형법 낙태죄와 별도로 보건복지부 장관령으로 이중 처벌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법을 시행하겠다고 예고를 한 거예요.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깜짝 놀랐죠. ‘임신을 중지하지 못하게 해서 저출산을 해결하려는 거냐’, ‘우리가 개, 돼지냐’ 이런 식의 분노가 터져 나오면서 ‘검은 시위’가 시작됐죠.


김하나 : ‘성과 재생산 포럼’에서 낙태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마침 이런 일이 터지면서 똘똘 뭉치게 된 거네요.


이유림 : 네, 뭔가 하라고 계속 연락이 오더라고요(웃음).


김하나 : 그랬군요(웃음). 일반 청취자의 입장에서는 ‘재생산’이라는 말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임신, 출산, 양육을 다 일컬어서 ‘재생산’이라고 이야기하는 건가요?


이유림 : ‘재생산’이라는 말은 훨씬 더 넓은 영역을 가리키는 것 같아요. 좁게는 임신, 출산, 양육을 가지고 인간의 재생산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람이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일을 갈 수 있으려면 휴식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자신을 돌보는 시간,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는 시간, 돌봄 노동이 교환되는 시간도 재생산 노동이라고 해요.


김하나 : 아, 아주 넓은 개념이네요.


이유림 : 네. 그러니까 ‘재생산’이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물질적, 비물질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지탱하게 하는 행위 전체를 가리키는 폭넓은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복지 규범에서 ‘재생산 권리’, ‘재생산 정의’라고 말할 때는 어떤 맥락 안에서 조금 더 분명하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고요.


김하나 : 이유림 저자님은 의료인류학을 공부하신 학자이셨고, 현장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계셨고요. 학자라고 하니까 쑥스러워하시네요(웃음). 그리고 변호사라는 말이 나오면 긴장하신다는 류민희 저자님께서도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해주시겠어요?


류민희 : 저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이라는 NGO에서 일하고 있는 변호사이고요. 조금 더 좋아하는 동료들이랑 일을 하고 싶어서 ‘희망을만드는법’이라는 공익인권을 전담으로 하는 변호사 모임을 처음 여섯 명의 변호사가 만들었고요. 지금 6년 이상 일하고 있고요. 제가 계속 일하는 부분은 보통 성소수자 인권이라고 하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인권’ 분야예요. 사실 성소수자 인권에서 ‘성과 재생산 권리’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그 중에서도 낙태죄의 비범죄화가 거의 초석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2018년은 낙태죄 사건이라는 운명적 사건을 만나서 대리인단(2018년 낙태죄 헌법소원 청구인 대리인단)에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김하나 : 임신 중지라고 하는 게, 갑자기 새로 나타나게 된 윤리적 범죄 행위가 아니잖아요. 인간이 생식을 하고 임신을 할 수 있는 때부터 내려오는 임신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중지할 것인지에 대한 노하우도 있었고 역사도 있었는데, 낙태죄라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윤리의 영역의 문제가 되기도 하고 정치와도 관련이 되어 버리고, 굉장히 복잡한 무언가가 되어 있더라고요.


이유림 : 네, 임신 중지라는 말은 특히 두 가지를 드러내는데요. 첫 번째는, 사람들이 임신을 유지하는 게 그냥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임신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신경을 쓰고 의료적인 도움을 받아서 유지하는 거거든요. 임부가 임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몸에 대한 노동과 태아에 대한 노동과 재생산 노동들을 하면서 의료적 기술들의 도움을 받아서 관리를 해가면서 지속하는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임신 중지와 지속, 두 가지 모두 선택지가 될 수 있는 거죠. 임신 지속도 의지적인 행위라는 거예요. 그냥 아이가 생기면 낳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고 이것도 굉장히 의지적인 행위라는 걸 드러내는 거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인류 문명상 임신을 중지하는 방법은 모든 문명, 모든 부족, 어떤 상황에서든 다 있었어요. 그런데 근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인구라는 것이 국가의 관리 대상이 되기 시작한 거죠. ‘인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부터 낙태죄에 대한 이야기가 출발하게 됩니다.


김하나 : ‘출산 장려’ ‘산아 제한’ 최근에는 ‘저출산 위기 극복’ 같은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아이를 안 낳는데 그것이 위기라서 극복한다는 거잖아요.


류민희 : 그렇죠. 무슨 여성의 몸 바깥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되게 객관적인 말로 쓰고 있지 않아요?


김하나 : 네. 사실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한다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서 너무 어마어마하고 중요한 결정인데, 국가가 나서서 그것을 조금 더 유도하는 결정을 하게 한다든가 제한한다든가 그런 말들을 우리는 당연한 듯이 들어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갑자기 너무 이상하게 들리는 거죠. ‘이게 무슨 말이지?’ 싶은 거죠.


류민희 : 국가가 개인의 선택을 바라보는 관점도 드러날뿐더러, 저출산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적합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저출산을 극복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더 낳을 사람은 없거든요. 지금 국가가 가장 나쁜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사람들이 왜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지 근본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하나 : 두 분 다 연구, 변호, 사회 활동을 하시면서 낙태죄로 인한 피해사례를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그 중에는 ‘낙태죄가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도 있을 텐데,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유림 : 제가 사연을 이야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배틀그라운드』 에 나온 사례들이 그렇거든요. 실질적으로 낙태죄로 처벌까지 받는 경우는 전부 다 고발인이 전 남편, 전 남자친구예요. 다른 법적 상황들에서 그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낙태죄를 많이 이용하고, 이혼 시 양육권 분쟁 상황에서도 ‘저 여성은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저 여성은 과거에 낙태를 했다’고 소송을 걸기도 하고요. 검찰에서 기소가 돼서 처벌을 받는 수준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여성들한테 이런 공포가 있다는 거죠. ‘내가 과거에 임신 중지를 한 적이 있었어’라는 이야기를 어떤 사람과 나눌 때, 지금의 법으로는 그 사람이 나를 신고할 수 있는 거죠. 임신 중지 사실을 알고 있는 누구나 신고를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계속 그 두려움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리고 임신 중지 같은 경우에는 여성들이 불법인 상황에서 굉장히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고, 심지어 그 비용을 병원에 현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로서 대우해주지 않는 상황이에요. 병원에서 이 여성의 건강에 대해서 안전한 진료나 충분한 알 권리를 담보로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임신 중지를 조력하고 있는 행위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임신 중지는 불법이니까 당연히 숨어서 해야 하고, 안전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물어보지도 못하고, 여기가 아니면 받아줄 병원도 없으니까 문제가 있어도 항의하지 못하고... 이렇게 경험되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다는 거죠.


류민희 : 지금 이야기해주신 부분이 정말 중요한데요. 간혹 그런 분들도 있어요. ‘형법 낙태죄, 법전에 있기는 한데 거의 사문화된 것 아니냐’, ‘기소되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뭘 그렇게 난리를 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형법전에 있는 한 사문화라는 건 절대 없어요. 이게 범죄라고 분명히 명시돼 있고, 이것에 대한 법정 효과들이 다 있거든요. 임신 중지는 여성의 인생에 있어서 접근 가능한 의료 행위인데도 의료보험 보장도 못 받고, 의료 사고가 난다고 해도 소송하기도 어렵고, 그런 모든 반사적 효과가 있고요.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배틀그라운드 #류민희 변호사 #이유림 활동가 #책읽아웃
    0의 댓글
    Writer Avatar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