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현주, 김소영 “불확실한 일 속에서 확실한 영역 만들기”
항상 모든 선택은 객관식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주어진 답안지에서 답을 고르라는 의미 보다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선택지들을 놓고 그중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걸 고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글ㆍ사진 정의정
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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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당인리책발전소에서 제현주 저자와 당인리책발전소 대표 김소영의 『일하는 마음』  북토크가 열렸다. ‘때로는 도망치고 싶지만, 더 잘하고 싶은 우리의 일하는 마음’을 들으려는 40여 명의 독자가 자리를 채웠다.


전작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에서 고정된 일자리가 사라지고, 일에서 만족과 보상을 기대했던 세상의 끝을 말했던 제현주 저자는 4년 만의 신작에서 개인의 경험을 담아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일하기 위한 성장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일을 보는 시야를 확장하는 법, 성취감을 느낄 때, 서로 힘을 주고받을 동료들의 발견, 나를 성장시키는 태도 등 더 유능하고 탁월하게 일하려 노력했던 흔적이 담겼다.


행사는 1부에서 제현주 저자의 책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듣고, 2부에서 사회를 맡은 김소영 저자가 전직이었던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당인리책발전소’를 열어 스스로 일을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질문을 던지는 순으로 진행되었다. 대담을 넘어 독자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으로 이어지자 일하는 마음에 대한 더 풍성한 생각할 거리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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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쓴 책


“<일상기술연구소>를 진행하면서 퇴사유발 방송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도 읽고 나서 회사를 그만뒀다는 사람이 많았고요. 그 책에 분명히 퇴사하라고 쓴 책이 아니라고 적었는데도 그런 이야기가 많아서 스트레스였어요. (웃음) 그것 때문에 다시 직장에 들어갔다고 할 때 많은 사람이 놀랐었죠.”

 

제현주 저자는 회사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한 시간과, 다시 직장에 들어가서 적응하는 시간을 견딜 글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생각이 복잡하고 갈피가 안 잡힐 때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스스로 필요한 일이었기에 “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쓴 책이었다.


“세어보니 이제까지 일을 19년 했더라고요. 19년 간의 생활을 3기로 나누는데, 1기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저 잘나가는 월급쟁이가 되는 게 꿈이었던 것 같아요. 20대 때여서 그런지 불확실성과 정해지지 않은 무언가가 너무 힘들었어요. 선택하고 결정해야 되는 게 어려웠던 시기였죠.”


빨리 어딘가 안착해서 계단을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게 1기의 선택이었다면, 2기에서는 자신이 정작 그런 걸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서늘하게 느끼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세 번째 직장을 나오면서 조직에 속하지 않은 시기가 시작되었고, 그당시 겪었던 이야기는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에 담겼다.


“협동조합의 형태로 롤링다이스에서 각자가 원하는 만큼의 작업을 하는 형태로 일하던 시기가 2기였다면, 3기에 접어든 건 지금 다니는 옐로우독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때였어요. 그래서 <채널예스>에서 했던 인터뷰(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여기 )를  가끔 봐요. 직장에 다시 다니기 하루 전 했던 인터뷰였고 기점이라고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인터뷰 내용을 떠나서 저한테 닥쳐올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요. (웃음) 그 이후로 1년 5개월이 지나고 당연히 알지 못하는 곳으로 밀려나고 있지만, 기꺼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일하는 마음』도 삶에 불어닥치는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정리하는 데에서 시작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 시도할수록 불확실성은 늘어나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을 불편해하면서도 뻔한 건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어떻게든 이 마음들을 이어 붙이고자 하는 시도였다.


“제 인생 모토까지는 아니지만 믿고 있는 게 있다면 ‘운칠기삼’이에요. 사실 인생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은 대개 운이었고 실제로는 너무 많은 것들이 불확실성의 영역에 있죠. 하지만 성공과 실패를 단순히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밀어버리면 너무 무기력해지잖아요. 운과 상관없이 제가 그 운을 어떤 이야기로 해석하느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 붙여 주는 영역은 제 힘으로 가져오고 싶었어요.”


불확실성을 바꾸는 첫 번째 방법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자기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일을 하면서 가설을 증명하거나, 실패할지라도 그 노선이 틀렸음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불확실한 영역을 줄여나가는 방법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일의 실패도 최소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법이 된다.


“불확실성을 줄이는 또 한 가지는 확실성의 영역을 갖는 건데요. 석달 동안 꾸준히 어떤 일을 하면 그 일을 하는 능력이 늘어날 거라는 건 90퍼센트 확실한 영역에 속하거든요. 그 확실성을 확인하는 게 외부의 어떤 승인에 의한 게 아니라 제 몸의 내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안정감이 있어서 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점심시간에는 보통 운동을 하는데, 운동을 하는 시간만큼은 가장 확실한 영역 안에서 저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일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중 하나죠.”


끝으로 제현주 저자는 책에 여러 실명이 등장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사람을 봐서라도 이 일을 하자’ ‘이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해야지’ 라는 생각이 많이 들던 때였고, 일을 하는 동기를 주는 사람들을 하나씩 넣고 싶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불확실성의 영역을 헤쳐나가고 서로 칭찬하면서 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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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와의 대담


김소영 : ‘당인리책발전소’에서 북토크를 연지 1년 정도가 됐는데, 여태까지 제가 만나본 작가님 중에 가장 자기 자랑을 안 하는 분이세요. 자기 소개를 먼저 해주시겠어요?


제현 :  간단하게 요새 하는 일을 설명한다면 투자예요. 돈을 주고 자산을 산 뒤 값이 오르도록 만들거나 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이죠. 그중에서도 창업한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 회사의 주식을 사고 파는 일을 하는데, 수익률만을 고려하는 게 아니라 이 회사가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는지 함께 고려해 회사의 비즈니스가 성장하면 사회적으로도 좋은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판단하는 기업에만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할 수 없는 일이라 이야기를 잘 안 하게 되네요. (웃음)


김소영 : 이제까지 일하는 시기를 3기로 나누셨잖아요. 지금은 3기에 해당하는 일을 하고 계시고요. 1기를 회사에 소속되어서 대리인으로 일하던 시기, 2기를 당사자로 일하던 시기, 그리고 지금 3기를 대리인이자 당사자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움직이는 시기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제현주 : 1기가 어떻게 보면 제가 투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시기였어요. 큰 자산을 사고 파는 일은 매우 부자가 아닌 이상 대리인으로서밖에 할 수 없거든요. 1기는 정말 대리인으로 남의 돈을 관리해주는 사람이었다면, 2기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제 판단에 맞춰서 했던 시기였죠. 3기에서는 다시 투자하는 일로 돌아와서 대리인으로 일을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판단하기 때문에 제가 훨씬 더 당사자성을 가지고 대리인과 당사자의 거리를 좁히면서 일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김소영 : 여기 계신 분들도 1,2,3기 어느 쪽이든 속해 있을 것 같은데, 독자 분들이 지금 어느 시기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해보실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불확실한 상황에서 퇴사를 고민하는 분들은 자신의 전문성이 아직 부족한데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거든요. 이런 걱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현주 : 이런 질문을 많이 받긴 해요. 한 곳에서 오래 일할 기회조차 없는데 어떻게 전문성을 길러야 하는지 질문을 받기도 하고요. 제가 일을 시작했을 때는 지금보다 그래도 안정성이 있던 시기였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한 곳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컸거든요. 요즘 같이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제가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완벽하게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는 직종이 있죠. 변호사라든가 의사 같이요. 하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특정한 위치에서 몇 년 일했다고 해서 회사에서 원하는 조건이 갖춰지진 않아요. 오히려 그 사람이 어떤 관점에서 어떤 주도성을 가지고 일을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대기업에서 오래 일한 사람은 일을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일 수도 있어요. 이미 짜인 조직 체계 안에서 필요한 일을 하면 오히려 자기가 자기 일을 만들어야 하는 조직에서는 불리할 수 있거든요. 한 곳에서 오래 일해야 전문성이 생긴다는 믿음은 옛날에 어른들이 하던 말이 구전처럼 내려오는, 일종의 도시 전설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김소영 : 저도 전문성에 대한 집착이나 계산은 요즘 시대에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책에서 전문성보다는 탁월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제현주 : 지금 세대에서는 사실 특정한 분야와 환경에서만 전문성을 추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탁월성은 누구나 다 추구할 수 있는 종류의 덕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탁월성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자기 만족의 차원에서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파편적인 경험을 하더라도 그 경험을 이어붙여서 자신이 뭘 잘하는 사람인지 알아낸다는 거죠. 자기 일의 경험을 자기 언어로 해석할 때 탁월성이 생겨난다고 생각하고, 저는 적어도 그런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김소영 : 일반 직장에서 개인이 탁월성을 기르게 도와주진 않아요. 당장 시킨 일을 하라는 상황이 훨씬 많은데, 어떻게 하면 직장 안에서도 꾸준히 탁월성을 기를 수 있을까요?


제현주 : 저는 비교적 상명하복이 심하지 않은 직장들에 다녔고, 거의 대부분 제 생각을 요구 받는 조직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말씀하신 고민을 많이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탁월성을 만들어낼 여지가 전혀 없는 직장은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 건 자기가 뭘 하는지 알고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직장에서는 주어진 일이니까,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냥 하게 되는 관성이 있거든요.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목적을 이해하고 일을 해야 이게 자신에게 맞는지 아닌지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점점 더 나은 가설을 만드는 게 일종의 탁월성이 되겠죠. 그걸 모르면 끊임없이 일을 하더라도 계속 앞으로 가지 않으니까요.


김소영 : 탁월성을 추구하는 사람도 일을 하다 보면 소진될 때가 있잖아요. 어제 저녁에 남편이 저를 보더니 작년에는 즐거워 보이더니, 지금은 그만둘 것처럼 힘들어 보인다는 생각을 했대요. 당연히 힘든 시간은 올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 순간을 버티고 살아낼 수 있는지 궁금해요.


제현주 : 말씀하셨듯 탁월성을 추구하고 열심히 일하려는 마음이 365일 늘 같을 수는 없어요. 그럴 때는 그냥, ‘꾸역꾸역’ 하는 거죠. 저도 자기 기준이 엄격한 사람이고, 하고 싶은 수준까지 못해낼 때 놔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분명 있거든요. 그럴 때는 꾸역꾸역 하면서도 그만두지 않는 것 자체가 중요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근본적인 생각을 너무 자주 하면 안 된다는 말이거든요. 힘든데 자꾸 근본적인 생각을 하는 걸 그만둬야 해요. 


김소영 : 이걸 반대로 하시는 분이 되게 많아요. 힘들 때면 왜 이걸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그럼 더 힘들어져요.


제현주 :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몸의 상태와 감정의 상태에 많이 영향을 받아요. 안 좋을 때 근본적인 생각을 하면 근본적으로 안 좋은 결론으로 가고 상태가 좋을 때는 좋은 결론이 나기 때문에 데이터가 잘 안 나와요. (웃음)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일단 잠을 잤나, 배가 고프지 않은가 생각하죠. 그리고 큰 방향 전환은 역시 자주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결정을 하고 전환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 근본적인 걸 바꾸는 게 사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김소영 : 한편으로 저는 왜 이렇지 싶을 때가 있어요. 일하고 성장하고 나의 확실한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데 관심이 없으면 편할 텐데, 왜 힘든 길을 가지? 하는 생각이요. 왜 이렇게 계속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서 힘들어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제현주 : 너무 공감가요. 어머니께서 저한테 ‘너는 네 인생을 스스로 피곤하게 만든다’라고 하셨어요. (웃음) 저는 제가 이런 팔자라는 걸 받아들인 것 같아요. 이거야말로 바꿀 수가 없더라고요.


김소영 : 여기 모인 분들도 여기 오신 걸 보면 그런 특징이 조금씩은 다 있으신 분들이거든요.  바꾸려는 시도를 해보신 적 있나요?


제현주 : 해봤죠. 하지만 시도를 하면서도 뭔가를 하고 있더라고요. (웃음) 저는 제가 언제나 열심히 하니까 스스로 성취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했었거든요. 세상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성취추구형 인간이라고 하니까요. 그런데 2기 때 대관령에 가서 살면서 무엇을 하더라도 다 열심히 하더라고요. 제가 스키 타는 걸 좋아하는데, 스키도 그냥 타지 않고 훈련같이 타요. 철학 공부를 한참 할 때도, 세상에 철학 공부만큼 쓸데없는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 정말 열심히 하는 거예요. 정리하고 글 쓰고 다음 읽을 문헌, 어떨 때는 논문도 다운로드 받아보고요. 그런 일을 하면서 제가 성취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뭔가를 열심히 하고 모르던 걸 알게 되고 못하는 걸 할 줄 아는 과정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깨닫게 됐어요.


김소영 : 방금 해준 말씀이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을 잘하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대충해도 괜찮다는 말이 별로 위로가 되지 않잖아요.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꼭 욕심이 아니라는 게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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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질의응답


퇴사를 결심할 때 어떤 생각이셨는지, 퇴사할 때 다음 직장을 정해두고 퇴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현주 : 세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는 당분간 직장에 다니지 않고 직장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그만뒀어요. 좋은 직장이었고, 직장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렇게 원하던 직장에 갔는데도 3, 4년이 지나니 이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 뒤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이직을 해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라는 건 알았고,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 큰 질문이 남은 거잖아요. 그 질문을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거의 3년 가까이 노력하고, 그 이후에 비로소 회사를 나올 수 있었어요.


고객센터에서 5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팀장이 된지 한 달 째인데, 팀원들의 ‘팀장님은 저희 편이 아니고 윗분들 편을 드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제 윗사람도 실적을 요구하면서 왜 직원들 입장에서 편을 드냐고 하는데, 그 사이에서 관계가 힘듭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제현주 : 처하신 상황이 참 어렵고, 저도 그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일에서 부딪치는 관계에 대해서만 말씀 드리자면, 저도 그런 고민을 할 때가 있어요. 회사 안에서도 대부분 제가 리드해야 하는 상황이고, 외부 사람을 만나면서 상대방이 듣기 싫어할 소리를 해야 할 때도 많아요. 일을 하는 목적과 같이 일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게 항상 일치하지 않잖아요. 그럴 때 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기 바라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얼마 전에 책에 등장하는 분과 ‘나를 사랑해주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사랑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따로 만드는 거죠.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건 정말 중요한 욕구고 가족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가족이 꼭 나를 좋아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웃음) 이해관계와 첨예한 갈등 상황 밖에서 사랑 받게 해주는 모임을 만드는 게 나름 제 방책이긴 했는데, 지금 닥치신 상황은 제 상황보다는 난도가 높은 상황이라 뭐라고 이야기하긴 어렵네요.


김소영 : 질문자님이 팀원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잖아요. 제 생각에는 정말 윗사람만 보는 사람은 그런 말을 들었다고 충격을 받지는 않거든요. (웃음) 제 생각에는 어떤 점이 힘든지 표현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말을 안 하면 잘 모르거든요.


제현주 : 그리고 그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했던 게 꼭 그 사람의 생각이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람이 일관된 판단을 하고 모든 말을 동일하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앞으로 뭐해 먹고 살아야 하나 매일 생각합니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고, 이걸 안 하면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고요.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신 적이 있나요?


제현주 : 이제 미래를 예측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럴 필요도 사실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하고 계신 일을 앞으로 계속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아닐 거예요. 15년 후면 여기 계신 분들 모두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다른 일을 하리라고 생각하고요. 항상 모든 선택은 객관식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주어진 답안지에서 답을 고르라는 의미 보다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선택지들을 놓고 그중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걸 고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음 길이 안 보일 때는 바로 답을 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선택지를 만드는 시기를 가지고 그 후에 골라서 하는 시기가 있는 거죠. 다음에 뭘 할지 모르겠으면 회사 안에서든 어디서든 버티면서 다음에 할 수 있는 보기들을 만드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중 하나를 고르면 거기서 다음 번 답안지가 나오더라고요. 인생을 그런 식으로 단계별로 가는 게 조금 더 쉽고, 지금 막막하다고 느끼시면 일단 정답이 아니라 선택할 만한 답안지를 만드는 과정을 시도하는 마음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현재 직장에 9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변화를 꿈꿨지만 어느 날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갑자기 모든 게 바뀌어서 허덕이고 있는데요. 어느 날은 도망치고 싶다가 어느 날은 잘하고 싶어요. 이런 마음을 놔두고 일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의식에 흐름을 맡긴 채 일을 해도 되는 걸까요?


제현주 : 안 다잡아지지 않나요? (웃음) ‘그래, 오늘 나는 마음을 다잡았어!’ 한다고 다음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항상 51대 49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도망치고 싶은 마음보다 조금 더 큰 거죠. 오히려 잘 하고 싶은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면 그 마음의 힘이 세져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눌러주는 게 아닐까요? 잘하고 싶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놓고, 어디까지는 해보겠다 하는 마음이 저에게는 도움이 좀 되더라고요.

 


일을 선택함에 있어서 가치기준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개인적 성취가 일을 하는 기준일까요? 아니면 일에 대한 유능감일까요?


제현주 : 저는 1,2,3기에 따라 생각하는 기준이 달랐어요. 지금 직장에 와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다시 하고 싶다’였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다 발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2기는 ‘할 수 있을 것 같고 재밌을 것 같으면 한다’였어요. 어느 게 좋은 기준이라는 게 아니라, 시기적으로 달랐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롤링다이스 활동 당시 돈은 어떻게 벌었나요? 이런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는 예시를 알려 주신다면.


제현주 : 의미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직장 다닐 때는 밖에 나가면 굶어 죽을 것 같고, 대체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궁금했거든요. 하지만 한 번 경계를 넘어 몸을 던지면 거기만의 세계가 있더라고요. 롤링다이스가 했던 일은 전자책 출판이 중심이었고, 프로젝트 별로 예산을 받고 진행하는 작업으로 돌아갔었어요. 이북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출판사였고, 그중 다른 출판사와 제휴를 해서 내는 종이책을 내는 방식으로 자본과 재고 부담을 최소한으로 했었어요. 다만 롤링다이스는 조합원 모두가 다른 직업이 있고 첫 번째 수입원이 롤링다이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롤링다이스라는 판이 생기고 나서 그걸 보고 연구 프로젝트 등의 요청이 들어올 때가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번역을 하기도 하고, 프리랜서로 컨설팅을 하기도 했어요.


퇴사를 생각 중입니다. 지인이 퇴사하는 기준을 물어보는데, 매일 기준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계속 다니다보면 익숙해져서 나와야 하는 타이밍을 지나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제현주 : 지금 속한 곳에서 얼마나 참을 수 있냐보다 바깥에서 뭘 할 수 있는지 만들어보시면 그 다음에는 그 시기를 훨씬 더 잘 찾아내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황이 나쁜데도 이 상황에 적응하게 될까 봐 두렵다는 건, 대안이 없을 때거든요. 대안을 만들 준비를 하다 보면 회사에 대한 생각보다는 대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현실의 ‘먹고사니즘’은 역시 무섭죠. 일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성취와 성장을 하고, 너무 많은 요소를 일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걸 다 만족시키는 직업은 세상에 거의 없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 회사에서 충족되지 않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그 욕구를 향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세컨 잡이 될 수도 있고, 사이드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겠죠. ‘나의 일’이 회사 안으로 다 수렴될 필요는 없거든요.



 

 

일하는 마음제현주 저 | 어크로스
끊임없이 업계가, 관계가, 환경이 유동하는 오늘을 살아가며 내 일을 유능하게 해내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단단한 성찰을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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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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