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뒤바뀔 거예요 - 연극 <오슬로>
서로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가지고 현재를 꿰뚫어 보는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글ㆍ사진 임수빈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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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

 

그간 접해본 적 없는 다소 낯선 나라를 배경으로 한 번에 기억되지 않는 긴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사방이 큰 벽으로만 가득한, 어딘지 모르게 중압감을 주는 무대 위에서 그들은 생소한 용어를 쏟아 내며 3시간 동안 긴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칫 하면 진부하고 지루하게 흘러갈 수 있는 이 상황을  <오슬로> 는 아주 영리하게, 그리고 아주 흡인력 있게 그려나간다. 낯설고 생경했던 배경 속에 던져졌던 관객들은 극이 진행 될수록 숨 소리 마저 조심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다.

 

연극  <오슬로> 는 1993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맺은 오슬로 협정의 숨은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미국이 주도한 평화 협상은 도돌이표 될 뿐이고, 양측 사이의 분노와 증오는 극에 달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 3국, 노르웨이가 중재를 시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노르웨이 정부가 아닌, 한 부부, 사회과학자 티에유와 외무부 외교관 모나 두 사람이 나선다. 분쟁지역에서 두 나라의 대립을 생생히 목격한 두 사람은, 이 비극적인 상황을 끝낼 방법을 고심하게 되고 단 한 번도 진행된 적 없던 두 나라간의 직접적인 협상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두 사람은 이를 위해 각 나라의 실무진들과 긴밀히 접촉하고, 마침내 비밀 협상 채널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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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작부터 모든 일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어렵게 만든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한 두 나라의 실무자들은 적대감만 가득하고, 서로를 ‘괴물’이라 규정하고, 한 치의 양보 없는 논쟁을 벌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양측 사이의 기싸움은 아슬아슬하고, 분위기는 냉랭하고 딱딱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서로임을 알기에, 자신만큼 상대방도 절실하게 이 비극을 끝내고 평화를 맞이하고 싶음을 알기에, 두 나라는 비밀 협상을 이어나간다. 실무진이 바뀌고, 협상 내용이 바뀌고, 수 많은 난관에 부딪치면서 이 길고 긴 여정은 쉽사리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슬로> 는 주로 국제적인 사건에 투쟁하는 사람들과 정치적 붕괴에 대항하는 모습 등 사회적인 작품을 창작해온  J.T 로저스의 작품이다. 로저스는 토니상, 드라마 데스크 최우수상, 뉴욕 드라마 비평가 협회 상 등을 수상하며 언론과 평단의 인정을 받은, 지금 가장 뜨거운 극작가 중 한 명이다. 아시아 최초로 국립극단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지난 해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새로 취임한 이성열 예술감독의 첫 번째 연출 작이기도 하다.


연극 작품으로는 제법 긴 3시간의 러닝타임이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곳곳에 적절하게 녹여 놓은 블랙 유머로 인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긴장과 이완, 그 두 사이를 오가며 작품의 전체적인 중심을 단단히 세웠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역시 작품의 완성도를 더해준다. 모든 배우들은 각자가 맡은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 들어 팽팽하게 전개되는 이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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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답답한 협상이 이어지지만, 그 속에도 조금씩 변화는 생겨난다. 양측의 실무진들은 때론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각자의 가족과 고향 이야기를 나누며 인간적으로 서로를 알아간다. ‘괴물’로만 생각했던 상대를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고, 둘 사이에 존재하던 레드라인을 넘어선다. 작품은 수 많은 등장인물, 즉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초점을 맞춘다. 평화를 이뤄내는 일은 신념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실현될 수 있음을, 상대를 향한 적대감과 날선 비난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가지고 현재를 꿰뚫어 보는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을 통해 보여준다.


어딘가 낯설지 만은 않은, 두 나라 사이에 일어난 영화 같은 실화는 오래도록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다. 오슬로 협정 이후 두 나라 사이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오지만, 그로부터 2년 후 당사자들은 살해당하고 양국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자신의 행동이 옳았는지에 대해 혼란을 느끼는 모나에게 티에유는 말한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를 보라고. 티에유가 건넨 한 마디는 단순히 그녀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라 지금, 2018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충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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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