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MAY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냐고 물을 참이었다. 일상을 제쳐두고 떠났고, 돌아와서는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버린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한 문장을 읽고 머릿속에서 그 질문을 지웠다. 여행자MAY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의미는 없어. 그저 좋을 뿐. (193쪽)”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누군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의미’에 대해 물어오면 특별한 의미 없이 단지 그것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한없이 덧없게 느껴지는 때 말이다.
- 190쪽
고된 업무, 반복되는 하루에 지쳤던 여행자MAY는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고 퇴사 후 세계 일주를 시작했다. 딱 1년만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갖기 위해 내린 결심. 그 후 300일간 30개국, 60여 도시를 여행했고, 진솔한 여행의 순간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 해 현재는 구독자 수 5만 명을 지닌 여행 크리에이터가 됐다. 여행자MAY의 일상을 바꾼 것은 사실 여행이 아니라 여행 내내 되뇐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다. 앞만 보고 달리기 전, 먼저 나에게 물었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싶은지. 여행을 통해 그녀는 ‘자유’라는 답을 얻었고, 그 순간순간의 마음이 『때때로 괜찮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에 담겼다.
책과 영상을 분리하고 싶지 않다
글과 영상은 서로 다른 성격의 콘텐츠잖아요. 두 가지 모두를 해 본 소감이 어떤가요?
비슷한 듯 달라요. 상호보완적인 것 같아요. 영상은 좀 더 가볍게 볼 수 있고, 실제 상황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훨씬 생생해요. 하지만 제가 그 당시 어떤 마음을 느끼고 있었는지는 표현하기 힘들죠. 자막 처리를 할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 갈증을 책으로 채울 수 있었어요. 매체는 다르지만 어쨌든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같아요. 최근에 업로드 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에피소드’ 영상은 책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영상에 옮겼어요. 책과 영상을 함께 보면 훨씬 더 좋을 거예요.
열차에서 만난 러시아 친구 ‘P’와의 에피소드죠? 그렇지 않아도 영상과 책을 함께 보며 뭉클했어요.
현지인들과 헤어질 때는 특히 더 슬퍼요.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렇지만 P는 꼭 다시 만나러 갈 생각이에요.
브런치에 먼저 글을 연재한 걸로 알고 있어요. 책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부터, 여행에세이 같은 영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영상을 하나둘씩 만들다 보니, 영상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아쉬워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여행에서 돌아와 출판사 문을 여기저기 두드렸어요. 이 여행기를 책으로 엮고 싶었거든요.
글 쓰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저는 아침에 있었던 일도 밤이 되면 가물가물해요. 특히 감정적인 부분은 더 그렇고요. 그래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자주 메모해뒀어요. 순례길을 걷다가도 한 마디 적고, 산을 오르다가도 한 마디 적고 그랬거든요. 작은 노트를 늘 가지고 다니면서 적어둔 말들이 많아서 그걸 꺼내 보며 연결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리 어렵거나 힘들진 않았어요.
여행의 순간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과 유튜브에 공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에요. 여행 영상을 업로드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처음 영상을 찍고 편집한 목적은 여행을 기록하기 위함이었어요. 그런데 여행에 관해 검색하다 보니 여행 정보를 적어 둔 블로그는 많지만, 여행기를 다룬 유튜브 채널은 거의 없더라고요. 당시에는 1년짜리 세계여행을 한 영상 안에 집약해 예쁘게 편집해 놓은 것 정도밖에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여행을 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마음인지, 얼마나 행복한지 등을 이야기해주는 영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내 생각을 촬영해 올리면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막연히 한번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웃음)
여행 중간중간 영상을 편집하는 모습이 담겨있었어요.
오랜 기간 여행을 했기 때문에 체력을 비축해야 하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숙소에서 쉬곤 했거든요. 그런 날을 저는 ‘쓰레기 데이’라고 불렀는데(웃음), 쓰레기 데이마다 짬짬이 영상을 편집하곤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촬영한 동영상을 자르고 붙이는 방법부터 일일이 검색해가며 만들었어요.
때때로 괜찮지 않아서 더 괜찮았던 여행
여행 중 제일 좋았던 순간이 언제인가요?
신기하게 이 질문은 받을 때마다 제 대답이 바뀌어요.(웃음) 지금은 사하라 사막이라고 답할게요. 사하라 사막에서 웃고 있는 여인의 사진 한 장을 보고 여행을 결심했거든요. 그래서 사막에 도착하자마자 ‘와 내가 여기를 진짜 왔구나’라고 감탄했어요. 머무는 9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내내 사막만 바라봤죠. 보고 또 봐도 너무 좋더라고요.
어떤 사진이었나요?
‘10년, 20년 후에도 이런 삶을 살고 있으면 어쩌나’하는 불안과 함께 회사생활에 회의가 들던 시점에 우연히 사하라 사막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사진을 보았어요. 사진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이 행복한 척을 하는 건지, 진심으로 행복한지 단숨에 알겠더라고요. 그 표정은 어떤 불순물도 없는 순수한 행복이었어요. 그걸 보고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이런 미소를 지을 수 있지? 나는 저렇게 웃어본 적이 언제였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곧장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준비 기간도 없이 2017년 1월에 퇴사해서 몇 주 뒤에 바로 베트남으로 떠났죠.
혼자 떠나는 여행의 장점은 뭔가요?
제가 여행 전에는 다수가 옳다고 이야기하는 가치에 치중해서 살았거든요.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삶의 중요한 가치는 무얼까?’를 깊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 끝에 얻은 답은 자유였어요. 자유를 가장 또렷하게 만끽하는 것이 혼자 하는 여행이에요.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먹고 싶으면 먹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아무 거리낌 없이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해질 수 있으니까요.
여행을 통해 수많은 것을 깨닫고, 얻었잖아요. 그중 가장 소중하게 느껴지는 게 무엇인가요?
삶의 길을 걷는 자세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그 생각을 했어요. 과거의 저는 그저 빨리 달려가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그 길을 누구와 갔는지, 길 위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내가 원하는 걸음이었는지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해요. 지난 1년 사이에 여행 크리에이터가 무척 많이 생겼어요. 과거의 저였다면 그들을 다 경쟁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은 그분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같은 길을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걷는다는 자체가 즐거워요.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이라는 자부심도 느껴지고요.
제목처럼 여행의 모든 순간이 괜찮을 수는 없어요. ‘때때로 괜찮지 않’을 때, 힘든 마음을 어떻게 이겨냈나요?
두 가지로 나뉠 것 같은데요. 고산병처럼 신체적 한계가 찾아왔을 때는 ‘열 걸음만 걷고 포기하자’라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어요. 열 걸음을 채우고 나면 ‘마지막 열 걸음만 더’라고 되뇌면서요. 그 외에 감정적으로 우울하거나, 외롭거나, 집이 그리워지는 순간에는 ‘나 오늘 그래도 돼’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생활을 할 때는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여행 와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죠. 사실 초반에는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힘들었어요. 수많은 것을 포기하고 행복을 찾아 떠나온 길인데, 우울하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나는 꼭 즐거워야 한다’는 마음을 놔버리니까 오히려 자유가 찾아오더라고요. 그런 날이 오면 우울한 순간을 잔뜩 만끽했어요. 아예 BGM부터 제일 우울한 것으로 틀고 ‘오늘은 우울한 여행을 하는 날이야!’라며 작정하고서 혼자 바닷가 앞에 앉아 청승맞게 울고 술 마시고.(웃음) 감정에 흠뻑 젖어 들곤 했어요.
그렇게 세계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수많은 감정이 오갔을 것 같아요.
옛날에 유럽 여행을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땐 돌아올 때 되게 우울했거든요. 여행하는 동안의 나는 반짝반짝 빛이 났는데,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 그 빛이 탁 꺼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더라고요. 아마 유럽 여행을 했을 때는 여행에서 행복한 순간을 찾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여행에서는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도 그 행복을 일상으로까지 끌어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돌아가는 길이 마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확연히 다른 새 삶이 시작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다시 돌아가도 떠날 거예요
퇴사 전에는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를 했다고요.
스타트업에서 근무를 했어요. 업계 특성상 굉장히 바쁘고 야근도 많았어요. 누구나 다 비슷하겠지만, 저는 20살 때부터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을 살았거든요. 직장생활도 그 연장 선상이었어요. 집에 갈 시간이 없어서 찜질방에서 출퇴근을 하기도 했고, 책임감 때문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 일을 처리한 날도 많았어요. 모두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거라고 이야기하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지냈어요.
“장난이 아니라 나 지금 정말 움직일 수가 없어. 오 분 정도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딱 오 분만 쉬면 안 될까?” 내가 정말 괴로워하자, 내내 수더분하고 밝은 인상이던 가이드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올라오면서 내가 몇 번이고 괜찮으냐고 물었지? 너는 그때마다 괜찮다고 말했고. 네가 내려갈 힘이 없었다면, 내가 물었을 때 괜찮다고 하면 안 됐어. 올라오면 안 됐다고.”
무섭게 내뱉은 그의 말에, 나의 6,088미터는 순식간에 부끄러운 정상이 되었다.
- 213쪽
볼리비아의 고산을 등반하고 얻은 깨달음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어요. ‘애초에 내게 10을 주었을 때, 9밖에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내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했어야 했다.(중략) 꾸역꾸역 일의 성과를 내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내가 거둔 것은 아름다운 성공이 아닌 못난 성공이었다.(218쪽)’는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산을 오르는 순간 그걸 알게 됐어요. 산은 내려가는 것까지가 끝이고, 가이드의 “괜찮아?”라는 말은 “팀원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정도의 체력과 자신이 남아 있어?”라는 물음이었다는 것을. 저 하나 때문에 모든 팀원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었잖아요. 회사생활을 돌아봐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말하고 포기할 줄 알았다면 저와 제 팀원들에게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못난 성공을 거둘 바에는 아름다운 포기가 더 의미 있을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여행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바꿔버려서 예전 생활로는 결코 못 돌아갈 것 같은데요? (웃음)
맞아요.(웃음) 원래 딱 1년만 나를 위해 쓰고, 그 뒤에는 다시 취업할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계속 “1년만!”을 외쳤었는데, 그 1년이 2년, 3년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아마 평생 그러지 않을까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시점은 언제인가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구독자분들께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거든요. 여행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가슴에 묻어두고 살다가 제 영상을 보고 용기를 얻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우울한 일상에서 힐링이 되고 있다는 말씀들이 제게 여행과는 또 다른 치유가 되더라고요. 구독자분들이 들려주신 이야기들 덕분에 유튜브가 계속 하고 싶었어요. 감사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책임감이 생기고, 자연스레 크리에이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요즘 일과는 어때요? 회사 생활을 할 때와는 확연히 다를 텐데요.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요.(웃음) 저는 새벽에 영상 작업이 잘 되더라고요. 보통 일주일 중 4일은 영상을 제작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발전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영상 기술을 공부하고 있어요. 혹은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거나 지금처럼 인터뷰 하고, 책과 관련된 행사에 참여해요.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친구들을 정말 자주 만난다는 거예요. 억지로라도 약속을 잡으려 노력해요. 회사 다닐 때는 서로 얼굴을 거의 못 봤거든요.
‘퇴사 후 세계일주, 그 이후의 삶에 대하여’라는 영상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이상적 삶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가능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라고 말했어요. 이제 그 삶이 실현 가능할지, 윤곽이 좀 잡힐 것 같아요.
그때는 돈을 한 푼도 못 벌 때여서 중고나라 전전하고 그랬거든요.(웃음) 좋아하는 일만 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건 가능하다고 느껴요. 물론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있죠. 제가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려면 지금도 여행지에 있어야 할 테니까요. 지금처럼 자유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스스로 기준을 잡고 최소한의 타협은 해요. 광고 영상도 조금씩 제작하고요. 언젠가 제 친구가 “수학을 하지 않고 시를 읽는 사람이 좋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시를 가슴에 품고 수학을 하는 사람이 더 멋지다”고 했거든요. 저는 지금 시를 읽으면서 수학도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요즘은 크리에이터가 연예인처럼 여겨지는 느낌이 있는데, 저는 그걸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구독자 분들께 늘 저를 막 대해달라고 이야기해요. 저는 구독자를 팬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구독자분들도 저를 어떤 우상화 된 존재보다는 여행을 같이하는 동료나 동행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꽃으로 비유하자면 들꽃이요. 여행지에서 아무렇게나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들꽃 같은 여행자, 들꽃 같은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요.
고시원을 정리하는 영상에서 앞으로 본인이 거쳐 가는 곳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했어요. 독립생활의 시작은 고시원이었는데, 여행자MAY가 꿈꾸는 마지막 거처를 상상해 본다면 어떤 공간일 것 같나요?
외적인 조건은 아무래도 상관 없고요. 여행하면서 게스트하우스를 많이 옮겨 다녀서 그런지, 그저 ‘내 공간’이라는 느낌이 물씬 났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여행한 곳들의 지도와 사진이 가득한 여행자MAY의 느낌이 막 묻어나는 곳이요. 무엇보다 그 공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었으면 좋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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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괜찮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여행자 May 저 | 더시드컴퍼니
통장 잔고가 바닥날수록 행복의 잔고가 복리로 불어나는 짜릿함을 알아버린 그녀는, 두 평짜리 고시원 쪽방에서도 평생 여행하는 삶을 꿈꾸며 오늘,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성소영
쓸수록 선명해지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