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타케 치사코 작가
“사랑이니 연애니, 그건 잠시 빌린 언어일 뿐. 그런 언어로 말하고 싶지 않다. 슈조는 내가 반한 남자였다. 푹 빠진 남자였다. 그럼에도 슈조의 죽음에 한 점 기쁨이 있었다. 난 오직 내 힘으로 혼차 살아 보구 슾와. 생긴 대루 멋대루 살아 보구 슾와. 그게 나야. 나라는 인간이야. 이 얼마나 죄 많은 인간인가. 하지만 나는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탓해선 안 된다. 슈조와 나는 이어져 있다. 지금도 이어져 있다. 슈조는 날 혼자 살게 하려고 죽었다. 슈조의 배려, 저 멀리에 살짝 비쳐 보이는 거대한 존재의 배려다. 그것이 슈조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찾은, 의미입니다.” -135쪽
지난 8월 29일,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의 와카타케 치사코 작가의 방한 기념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와카타케 치사코 씨는 63세에 쓴 첫 번째 소설이자 데뷔작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로 2007년 제54회 문예상을 받고, 2018년 제158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는 남편 슈조의 죽음 이후, 끊임없이 말을 거는 내면의 목소리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74세 여성, 모모코 씨에 관한 소설이다.
모모코 씨는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다. 마음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모모코 씨가 태어난 도호쿠 지방의 사투리로 말을 건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에는 도호쿠 지역의 지리상 위치를 고려하여 강원도 사투리로 번역했다. 모모코 씨는 내면에서 소용돌이 치는 존재와 대화하며, 남편이 죽기 전까지와 이후의 삶을 고찰한다. 마음의 전부로 여겼던 존재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후의 삶을 살아갈 힘을 온전한 자신에게서 찾은 74세 모모코 씨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라는 문장 하나를 남겼다.
정수윤 번역자는 옮긴이의 글에 “앞으로 늙어갈 길 위에서 분명 잘 챙겨 뒀다고 생각한 인생의 지도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을 때, 이 책이 당신과 나에게 꼭 필요해지리라는 예감이 든다.”라고 밝혔다.
와카타케 치사코 작가(왼쪽)와 정수윤 번역가
“나를 부정하는 존재와 싸우고, ‘혼자’이면서 함께 가겠다”
한국에서 책을 출간한 소감이 어떤가?
긴장하고 있지만, 행복하다. 63세에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가정주부이기만 했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엇을 써야할지 고민했다. 지금까지 그 테마를 찾는 과정이었다. 벌써 나이가 이렇게 들었으니 늦었다고,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생각한 것을 74세 할머니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를 깨닫고 이 테마를 정했다. 이렇게 한국에까지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럽고 행복하다.
74세 할머니 주인공을 통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과 작가의 인생 철학은?
지금까지 여성은 어떤 역할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였다. 아내, 어머니 등 자신의 역할 때문에 날개를 펴고 싶지만, 마음껏 날개를 펴지 못하고 어떤 경우에는 날개를 접으며 살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그런 여성이 많다고 느꼈다. 하지만 할머니는 사회에서 요구받는 역할이 없고, 자유롭게 해방될 수 있는 존재다. 할머니는 자신이 살고 싶은 방향대로, 마음속에 품은 뜻과 의지대로 살 수 있다. ‘나는 나를 따른다.’라는 인생 철학을 표현하고 싶었다. 또 모모코 씨의 인생을 통해 ‘나는 아직 싸울 수 있다, 나의 인생은 지금부터다.’라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싸울 수 있다’고 했는데 싸우는 대상은 누구인지?
먼저 자기 자신 안에서 ‘나는 이제 안 돼, 끝났어, 약한 존재야.’라고 말하는 존재와 싸우는 것이다. 또 여성을 낮은 위치로 바라보는 남성 위주의 사회와도 싸우고 싶었다. 여성도 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일본에서는 여성이 꿈과 희망을 억누르고 사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말하고 싶은 것은 말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책에는 ‘남편이 원하는 여성상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남편을 위한 삶을 살았던’ 모모코 씨가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겼다. 페미니즘 이슈와 맥락이 닿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 화제가 된 이유도 이런 이슈에 반응한 것인지, 한국에서는 어떻게 읽히길 바라는지?
노년의 일본 독자들에게 모모코 씨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 같다는 편지를 자주 받는다. 많은 독자가 늙음 이후에도 뭔가 해나갈 수 있다는 의지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한국 상황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일본에서도 페미니즘 이슈가 화두다. 일본 의과대에서 점수를 조작해 여성 합격자를 줄여서 화제였는데, 사회 전반적으로 분노하지 않는 분위기다. 여자니까 할 수 없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여성을 억제하는 문화를 이야기하지 않는 게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어도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와 동시에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같이 가자는 의지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소설에서 사투리를 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화자 안에 여러 명의 화자가 이야기하는 구조인데, 어떻게 구상했는지 궁금하다.
여러 목소리가 들려오는 건 실제 내게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동북지방 이와테현 출신인데 이와테 사투리로 여러 목소리가 들린다. 표준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말을 걸어오기 때문에 늘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이 든다. 정신 나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웃음) 하지만 모든 사람이 고독하게 자기 자신의 내면과 맞서게 되면 대부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고독하거나 힘들 때 ‘괜찮다, 괜찮다.’라고 입 밖으로 내뱉으며 말을 걸곤 한다.
여러 목소리가 들린 건 언제부터인지?
남편이 죽고 난 이후 본격적으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하니 더 강하게 많은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과 사별 이후에 독립하는 과정이 작품에 많이 녹아든 것 같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졸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둔다. 이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싫어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55세에 남편이 떠났을 때 많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 남편이 내게 시간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새롭게 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는 게 소설을 쓰는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배우자가 죽지 않고 살아있더라도, 혼자를 돌보는 시간을 주는 게 따뜻한 배려일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을 이루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격려와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작품이 굉장히 성공적이다. 차기작 구상하는 게 있는지?
그래서 지금 난처하다. (웃음) 이 작품은 상상 이상의 효과를 얻은 작품이다. 노년을 주제로 쓰고 싶다. 노년의 여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사랑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 어려서 나는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여기까지 오니 내게도 신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포기하지 않고 와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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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와카타케 치사코 저/정수윤 역 | 토마토출판사
남편을 잃고 자식과는 소원해진 74세 모모코 씨의 독백으로 진행되는 작품으로, 홀로 남겨진 늙은 여성이 고독과 외로움의 끝에서 눈부신 자유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절절하면서도 통쾌하게 그려 냈다.
이수연
재미가 없는 사람이 재미를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