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작가의 희열이 느껴지는 책은 언제나 좋다. 최근 읽은 『머나먼 섬들의 지도』 도 그랬다.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들”에 대한 책이 어떤 ‘필요’에 의해 탄생했을 리는 없다. 이런 책은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태어난다. 쓰지 않을 수 없어 쓰는 책이다. 국경을 넘을 수 없는 나라 동독에서 태어난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지도책에 빠져들었다. 낯선 지명을 매만지고 상상하고 마침내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도를 오래 들여다봤기에 발견했을, 너무나 작아서 세계지도에 표시되지도 않는 섬들의 이야기는 50개의 매혹덩어리다. 글을 쓰고 지도를 그리는 내내 작가의 얼굴은 상기되었을 것만 같다.
나를 매혹하는 것이 나의 일이 될 때, 일은 삶의 각별한 일부가 된다. 우리는 대개 누군가의 통제 아래서 일하고, 내 일에 나의 의중을 충분히 실을 수 없지만, 다행히 내 경우는 각별한 작은 일을 발견하거나 만들 수 있었다. ‘많은 판매를 기대할 순 없지만 널리 알리고픈 책’을 소개하는 큰 코너를 반드시 운영할 것, 한 종의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면 그 책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접점이 있지만 색채가 다른’ 세 종의 책을 자세히 소개할 것, 내가 아끼는 책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독자층에게 어필하는 시도를 해 볼 것. 이런 원칙을 세워두고 홀로 공을 들였다.
『섬에 있는 서점』 에서 서점주인이 한 경찰관의 독서취향을 제프리 디버에서 코맥 매카시로 연결해 내는 일 같은 것에 나는 매혹되어 있었다.
램비에이스 소장은 서점에 자주 들렀고, 잦은 방문을 합리화하기 위해 책도 구입했다. 램비에이스는 돈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구입한 책은 읽었다. 처음엔 제프리 디버, 제임스 패터슨의 염가 문고판을 주로 샀는데, 에이제이가 그건 그만 졸업시키고 요 네스뵈와 엘모어 레너드의 페이퍼백으로 전환해주었다. 두 작가 모두 램비에이스의 취향을 저격하자, 이번에는 다시 월터 모즐리를 거쳐 코맥 매카시로 진급시켰다. 에이제이의 가장 최근 추천작은 케이트 앳킨슨의 『살인의 역사』였다.
램비에이스는 서점에 오자마자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게 말이야, 처음엔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점점 좋아지더라니까, 와.”
- 개브리얼 제빈, 『섬에 있는 서점』 (93~94쪽)
루틴한 일에 치여 늘 얼굴에 표정이 지워져 있으면서도 이런 일을 할 땐 희열을 느꼈다. 힘주어 소개할 책을 고르기 위해 이런 저런 책을 검토하고, 베스트셀러에서 다른 책으로 길을 내보려고 방대한 데이터를 이리 저리 쪼개다 보면 그 몰입감이 즐겁다. 내가 사랑하는 책이 누군가의 서가에 꽂히는 상상은 피로를 잊게 한다. 일에 깊이 더 깊이 빠져들고 싶다. 밥 먹기도 귀찮고 퇴근 시간은 너무 빨리 온다. 일이 내 삶에 소중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그래도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적은 거의 없다. 나는 꽤 강경한 칼퇴주의자다. 내 인생은 일 바깥에도 있기 때문이다. 일에 관한 몰입이 과하면 일 바깥의 삶이 허술해진다. 회사일에 대한 책임감이 과하면 회사 바깥의 일에 대해 무책임해진다. 시간의 유한함을 생각해보면 이건 자연법칙이다. 칼퇴를 해도 아이와 저녁 7시에야 첫 대면하는 터다. 더 늦으면 부모로서 아이와 관계 맺는 일,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내 몫의 집안일을 하는 일, 그리고 내게 필요한 휴식을 주는 일에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유연할 필요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일 바깥의 삶에 충분한 시간을 주려고 한다. 나는 주52시간 근무제를 적극 환영한다.
동시에 주52시간제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문제, 혹 주40시간이 되더라도 남겨질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일 바깥의 삶을 구하기 위해 일과 삶을 구분하는 것은 옳지만, 나는 일에서도 희열을 느끼고 싶고 내가 하는 일을 더 의미 있게 잘 하고 싶다. 그런데 일에 몰입하고,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일에 충분한 시간을 쏟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칼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원하는 만큼 일에 매진하기가 쉽지 않다.
주52시간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직장인의 업무는 루틴한 단순반복 작업이다. 희열을 느끼거나 나를 성장시킨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내 일을 돌아보며 점검하거나 새로운 기획을 준비할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한다. 자신의 일에 자신의 인장을 찍는 것은 대개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퇴근 후 각자의 몫으로 던져진다. 나처럼 퇴근 후엔 철저히 일 바깥의 삶으로 넘어가는 경우 일에 관해 생각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서점 직원이라지만 책 읽을 시간도 태부족인 게 현실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 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강조했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비틀즈는 첫 성공을 거둔 1964년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략 1만 시간의 연습을 했고, 빌 게이츠는 1968년 공유 터미널을 이용해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이후 1만 시간을 그 일에 몰두한 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립했다.
주52시간을 대입한다면 약 4년이면 1만 시간에 도달할 수 있지만, 유의미한 시간만 따진다면 1만 시간에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매일 2시간 정도를 의미있게 활용할 수 있다는 ‘급진적 가정’을 해보더라도 무려 20년이 걸린다. 비틀즈나 빌 게이츠가 되려는 건 아니지만, 20년 근속이 결코 쉽지 않은 세상에서 1만 시간의 성취는 손에 잡힐 것 같지 않다. 한 자리, 한 회사, 한 업계에서 오래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어야, 고용이 충분히 안정된 세상이 되어야 비로소 일을 통해 나아가는 것과 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있지 않을까.
20년의 절반 정도를 지나면서, 내가 나의 일을 통해 어디까지 왔는지 자주 생각한다. 20년 근속자가 아직 (아마도) 없는 회사에서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생각이 많다. 물론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다. 그저 한 번 가볼 뿐. 칼퇴주의자의 신념을 유지하면서 내가 꿈꾸는 서점인의 경지에 닿을 수 있기를, 오늘도 바라고 바란다.
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