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세상에서 찬찬히 산책하듯 사는 법
어렵고 힘든 일에도 한 걸음 떨어져서 ‘괜찮아.’ 혹은 ‘다 지나갈 거야.’라고 할 수 있는 태도. ‘오늘 바빴지만 아까 회의 중에 마신 커피는 참 맛있더라.’ 하면서 좋았던 점 찾아보기. 그게 가볍게 산다는 것 아닐까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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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에 혼자 공부하는 여자라는 짐을 짊어지고 떠나왔는데, 오히려 삶이 가볍게 느껴진 이유는 무엇일까? 『두 도시의 산책자』  장경문 작가는 익숙해질 듯하면 또 낯선 것과 부딪쳐야 했던 유학 생활은 역설적으로 삶에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정말 좋아하는 것과 싫어서 견디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결혼과 임신, 육아를 비롯한 여자의 삶, 그리고 공부하는 목적 등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그렇게 찬찬히 산책하듯 들여다본 일상을 통해 비로소 가볍게 사는 즐거움을 찾았다는 장경문 작가. 그녀에게 치열하고 바쁜 삶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법을 물었다.

 

서른 살에 공부하러 뉴욕으로 떠나 4년을 살았습니다. 스물아홉 살에 유학을 결심하기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그 당시에 저는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어요. 계속 석사 과정, 학교 미술관, 학교 연구소, 이런 식으로 학교와 관련된 일만 했기 때문에 유학이 제가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한계였던 것 같기도 해요. 만약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또 다른 길을 택했을지도 모르죠.


완전히 낯선 곳에, 의지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작정 가려니 걱정되기도 했어요. 서른 살은 어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성숙해서 노련한 것도 아닌 애매한 나이였으니까요. 그런데 저희 아버지가 “나는 서른여섯 살에 유학 갔다. 서른이면 새파랗게 젊다!” 하시는 거예요. 삼십 여 년 전에도 그 나이에 시작할 수 있었는데 저라고 못할까란 생각을 했어요. 약간은 ‘어떻게든 되겠지! 해 보고 못하겠으면 돌아오면 되지 뭐.’하며 밀어붙인 것도 있었고요.

 

제목 ‘두 도시의 산책자’에서 두 도시는 뉴욕과 서울을 말하는 것일 텐데, 산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책은 ‘굉장히’ 뉴욕 중심이에요. 책을 읽으면 ‘두 도시 이야기가 아니고 한 도시만 나오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제목을 지은 건, 저라는 사람의 기본적인 배경과 성향이 모두 서울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기에, 뉴욕이라는 도시를 바라보고 경험하는 것에 ‘서울적인 것’이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서울 사람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서울을 떠나 뉴욕이란 낯선 도시에서 생활하며 겪은 이야기인 거죠. 그렇다고 (서울 사람의 시선으로) 뉴욕이란 도시를 깊게 파고드는 것도 아닌,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치는 방관자도 아닌, 그 중간적인 시선으로 뉴욕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게 ‘산책자’의 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바라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산책하면서 찬찬히 생각하듯 거기서 의미를 찾아보려 했거든요.


또 (감히) 보들레르의 산책자 같이 되고도 싶었고요. 도시 중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뉴욕 거리를 걸으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일상을 관찰하는 그런 산책자요.

 

책 속 『시리얼이 사라졌다』 를 보니 뉴욕에서 혼자 살 때 쥐와 벌레 때문에 소동을 벌이는 내용이 나오는데 혼자 살아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많이 공감하실 거 같아요. 집에서 멀리 떨어져 그것도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혼자 산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혼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그리고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혼자 살며 딱히 힘들었던 점은 잘 생각나지 않아요.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할 때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끙끙댔던 것 정도? 대신 벌레 치워 줄 사람 없단 것도 있네요. 그런 것 말고는 나름 즐기며 잘 지냈습니다. 매번 저 혼자 집안일, 끼니를 알아서 챙기며 내 일도 알아서 다 해야 한다는 게 처음에 생소하긴 했지만요.


이건 사실 대학생 때 혹은 그 전부터 자취하던 친구들은 이미 다 해 본 거였는데 제가 늦은 것도 있어요. 힘들다기보다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혼자 지내며 장아찌도 담가 먹고, 이런저런 새로운 요리도 시도해 보고, 살면서 필요한 소소한 살림팁도 생겼고요.


가장 좋았던 점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늦잠을 자도,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 놓아도 전부 제 맘대로 할 수 있었으니까요. 한밤중에 잠이 깨면 일어나서 잠깐 미뤄둔 과제도 하고요. 지금 애가 둘인 상황에선 상상도 못할 생활이죠. 아이들 눈치 살피느라 바쁘니까요.

 

책에서 뉴욕의 다양한 슈퍼마켓을 소개하는데 나중에 뉴욕에 갈 일이 있으면 꼭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혹시 뉴욕의 슈퍼마켓처럼 뉴욕에 가면 한 번쯤 가 보면 좋겠다고 추천하시는 곳이 있나요?

 

여러 곳이 생각나지만 한 군데를 꼽으라면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요. 그것도 한낮과 밤, 두 번의 방문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뉴욕 곳곳엔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많이 있고 각각이 모두 나름의 매력과 특색이 있는데, 브라이언트 파크는 맨해튼 중심가에 위치해서 잠깐의 뉴욕 방문 중에라도 들러 보기 쉽거든요.


이 공원의 매력은 정말 복잡한 도심 속 한가운데, 그야말로 높은 빌딩숲 가운데 파묻힌 풀밭이라는 것입니다. 제법 높은 나무들이 공원을 둘러싸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도심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지는 않아요. 공원에 발을 딛는 순간 마법처럼 고요해진다는 건 전혀 아니지만, 공원 밖과는 다른 세상이거든요. 그게 이 공원의 매력이에요.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하고,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수다 떨고,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바로 몇 발자국 너머 공원 밖은 정말 정말 분주한 세상인데 말이죠.


밤의 공원은 한낮의 공원과 다른 매력이 있어요. 오히려 밤의 공원이 활기가 느껴진다 할까요. 재밌는 건 똑같이 사람들이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도 낮에는 여유롭게 보이고 밤에는 막 활기차 보이더라고요. 거기선 테이블에 앉아 물만 마시고 있어도 꼴깍 넘김과 동시에 ‘아,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거 같아요.

 

뉴욕대(NYU)에서 박사 학위까지 하셨지만, 공부는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새로운 길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시라고요.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커리어를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혹시 후회가 된 적은 없나요? 

 

나중엔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후회되지 않아요. 학위는 못 받았지만 박사 과정을 경험한 것만으로도 좋은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다 그만두고 논문을 쓰겠다고 하면 사실 질은 형편없을지언정 뭔가를 만들어 낼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아등바등 겨우 해서 받는 학위가 무슨 소용인가 싶어요.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도 하나의 업이라서 남들보다 잘하거나 끈기가 있거나 열정이 있거나 뭔가 있어야 할 수 있는데 전 ‘좋아한다’ 밖에 없더라고요. 그에 비해 논문을 (제대로) 쓰는 건 정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거고요. 대충하고 싶진 않고, 제대로 하기엔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어요. ‘아, 공부를 직업으로 삼는 게 나한테는 무리구나. 그러면 좋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테니 그걸 찾아서 하자.’ 싶었던 거예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공부하는 건 지금도 좋아해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이긴 하지만 아는 교수님과 박사 과정생들이 하는 책 세미나에도 나가고는 있어요. 이렇게 즐거운 정도로만 하는 게 좋아요.

 

책 속에 다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편하다고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난 후에 더 편했다는 내용이 있어요. 여자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서울과 뉴욕을 오가는 것보다 더 큰 변화였을 것 같아요. 혼자일 때와 아이가 있을 때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너무 당연한 거지만 ‘시간’이요. 정말 예상 불가능한 시간을 살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혼자일 때도 생각지 못한 일들이 생겨나곤 하지만, 아이는 늘, 언제나, 항상 그렇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죠. 특히 이제 어린이집을 다녀서 나름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시간표’가 생긴 첫째와 달리 아직 백 일이 안된 둘째는 정말 예측 불허예요. 첫째 때 한 번 겪었지만 이건 겪었다고 익숙해지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생활에 패턴이란 게 아직 없어요. 책 서문에도 썼듯이 정말 날마다 새로운 시간이에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아까와 지금이 다르고요.


단적인 예를 들자면 매일 자는 시간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거고요. 제가 원래 시간 약속을 잘 지키거든요. 약속이 있으면 미리 나가 있는 그런 스타일이었는데, 아이가 생긴 뒤로는 자꾸 늦거나 약속을 미루거나 하는 일이 잦아져요. 나만 챙기면 되던 때랑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또 새롭게 달라지겠죠. 열 살 아이, 스무 살 딸의 엄마는 저도 매번 다 처음으로 겪을 테니까요. 

 

인생을 산책하듯 가볍게 살자고 하셨는데, 가볍다는 것이 ‘대충’과는 다른 것 같아요. 가볍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실 저에게도 하루하루는 치열합니다. 특히 이제 아이가 둘이 되고 보니 내 시간, 내 체력 모든 걸 다 쪼개서 써야 하고, 정신마저 쪼개지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그런 치열함에 지지 않는 것, 지치지 않는 것이 가볍게 산다는 것의 핵심 아닐까 싶어요. ‘아 너무 힘들어, 시간도 힘도 정신력도 다 모자라.’ 푸념하고 ‘나 힘들었어요, 위로해 줘요.’ 하기보다는 그 와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내 일상을 예쁘게 보고 그 가치를 찾는 것, 그런 거요.


누구도 인생이 쉬운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나만 그런 게 아님을 알면 좀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이를테면, 오늘 하루만 해도 제가 일하는 사무실 나가서 배송 나갈 그릇 포장하고, 오후에는 파주로 회의 가고, 다녀오는 길에 어린이집에서 큰애 데리고 와서 저녁을 먹이고, 곧바로 작은애 분유 먹인 후에 놀아 주다가 그 녀석 재우고, 눕히자마자 작은애 깨기 전에 (아직 수시로 깨거든요) 큰애 목욕시키고… 그 사이사이 설거지며 이런저런 것들 정리도 해야 하고요. 정말 집 안에서만 만보는 거뜬히 걷는 것 같아요.


이런 생활이 진짜 힘들긴 하지만 ‘힘들어’로 끝나지 않고 이런 분주한 일상이 나중엔 없을 잠깐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뭐 다 그런 거지.’ 해 버리거나 (사실 쉽지 않아요) 아니면 이렇게 나열하면서 ‘난 좀 슈퍼우먼인듯!’ 하고 스스로 칭찬해 주고요. 치열함을 즐기면 그 안에서 좀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좀 어렵고 힘든 일에도 한 걸음 떨어져서 ‘괜찮아.’ 혹은 ‘다 지나갈 거야.’라고 할 수 있는 태도. ‘오늘 바빴지만 아까 회의 중에 마신 커피는 참 맛있더라.’ 하면서 좋았던 점 찾아보기. 그게 가볍게 산다는 것 아닐까요.

 


 

 

두 도시의 산책자장경문 저 | 혜화동
꼭 낯선 도시로 떠날 필요 없이 나를 가둬 둔 틀 안에서 눈을 들어 조금 떨어져서 주변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인생이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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