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의 사막을 걷는 KBS <거기가 어딘데??> 탐험대원들에게는 온도계가 두 개 있다. 차태현의 손에 들린 디지털 온ㆍ습도계가 하나, 그리고 조세호의 입이 하나. 자기 전에 2만 단어는 사용해야 비로소 하루를 알차게 산 기분이 든다는 조세호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꺼내며 말의 공백을 채운다. 조세호는 MBC <무한도전>을 통해 안면을 익힌 동생 배정남의 의욕과잉을 받아주고, 맏형 지진희가 목표를 제시할 때마다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해주며 탐험대 전체의 사기를 돋운다. 행여 분위기가 처질세라 끊임없이 말을 거는 조세호가 아니었다면 대원들의 걸음은 한결 더 무거웠으리라. 해서 대원들은 조세호의 입이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걱정부터 한다. 조세호가 지치면 탐험대 전체가 심적으로 지쳤다는 얘기니까. 탐험대장 지진희의 눈이 탐험대가 걷는 물리적 거리를 잰다면, 보건담당 조세호의 입은 탐험대가 겪는 여정의 심리적 온도를 잰다.
그가 늘 이처럼 세심한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KBS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 대신맨 시절이나 KBS <웃음충전소> ‘타짱’ 시절, 그는 말보다는 슬랩스틱과 분장으로 상대를 웃기려 무리하는 사람이었다. 무리를 해서 얻은 인기였으니 늘 호오가 갈렸지만, 전성기를 누리던 20대 초반의 사내는 그런 걸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은 그 짧았던 전성기가 끝난 뒤에 찾아왔다. 소집해제 후 그는 양배추라는 예명 대신 제 본명을 들고 돌아왔지만, 분장쇼 대신 말로 상대를 웃기는 건 좀처럼 쉽지 않았다. 입담을 증명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말이 꼬이기 일쑤였고, 토크에 과장을 얹거나 습관처럼 성대모사를 꺼내는 패턴은 쉽게 질렸다. 그는 오랜 시행착오 뒤에야 비로소 일단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기 시작했다. 상대의 말 속에 이미 웃음을 끌어낼 단초가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다짜고짜 안재욱의 결혼식에 왜 불참했느냐고 묻는 김흥국의 말에,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을 내놓으면서 조세호는 비로소 양배추라는 예명 없이 제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웃길 수 있게 됐다.
체력적으로 최약체인 조세호는 얼핏 탐험대에 짐이 될 것만 같지만, 상대를 걱정하고 세심하게 살피는 그의 면모는 탐험대를 이끄는 또 다른 동력이 된다. 그는 배정남에게 짚고 갈 만한 나무 막대기를 찾아주려 사막 한 가운데 버려진 나무 더미들을 뒤지고,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서 어떻게 풀이 피어 올랐는지 궁금하다며 걷다 말고 풀뿌리를 파는 배정남을 위해 함께 모래를 퍼낸다. 혼자서 앞장서서 가는 지진희를 믿으면서도 “그래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하루치의 여정이 끝날 때면 동행해 준 베두인 가이드에게 제일 먼저 고생했다고 말한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형편을 짐작해 염려해 주는 조세호 덕분에 사막은 조금은 더 걸어볼 만한 곳이 되었다. 결국, 길은 어떤 사람과 함께 걷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hanseon19
2018.07.09
비춰지는 모습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쓰는 글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