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린 오리아나 팔라치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그 이름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었는데, ‘신화’ 혹은 ‘전설’ 같은 최고의 찬사였다. 당연히 그의 인생을 다룬 전기와 평전의 형식의 책들이 사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팔라치는 자신에 관한 그 어떤 전기도 인정한 적이 없다. “언젠가 내 인생에 관해 누군가 쓴다면,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일 것이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팔라치는 자서전을 발표한 적이 없다. “내 모든 책에는 내 일생의 행적이 들어 있다.”라는 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가 꼼꼼하게 인터뷰를 준비한 노트에는 자서전적 메모가 빼곡했고, 이 메모들은 다시 책으로 옮겨졌다. 팔라치가 기자로서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글을 쓴 것은 자신과 인생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이 책은 오리아나 팔라치의 글을 재구성해서 자서전으로 만든 것이다. 완벽하고 깐깐한 작가였던 팔라치의 뜻을 존중하여 그가 자신의 생애를 직접 기술한 내용만 실었다.
이 책에 실린 글의 출처는 아주 다양하고 방대하다. 자전적 소설,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와 칼럼, 에세이, 팔라치가 작성한 인터뷰 초고와 다른 기자나 작가가 여러 기회에 팔라치를 인터뷰한 기사 및 TV 인터뷰, 여기에 강연 원고,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일지, 토론 초고, 타자기로 작성하거나 팩스로 보낸 원고, 담화문, 개인 소장 미공개 메모에 이르기까지 팔라치의 글과 말이 남긴 자취를 오랫동안 세심하게 좇았다.
오리아나 팔라치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이탈리어판 편집자가 밝혔듯이, 이 책은 한 여자의 인생에 대한 오마주이다. 팔라치와 인연이 깊었고 그의 저서 대부분을 출간한 리촐리 출판사가 이 작업을 했기에 더욱 의미가 있고 믿음이 간다. 깊은 안목으로 선별한 글을 통해 탄생한 팔라치 자서전은 가장 진솔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으며, 뛰어난 문학성도 갖추고 있다. 팔라치는 긴박한 현장을 전달하면서도 특유의 지적이고 문학적인 필체를 구사한 저널리스트였는데 이 책에서도 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리아나 팔라치는 1929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깨달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가치를 평생의 신념으로 삼았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가난과 불행, 전쟁의 공포와 냉혹한 현실이 엄격한 자기 훈련으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팔라치는 열여섯 살에 돈을 벌기 위해 피렌체 지역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데에는 언론인이었던 브루노 삼촌의 영향이 컸다. 그는 삼촌의 권유로 종군기자에 지원했고,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주간지 〈레우로페오L’Europeo〉 특파원으로 1967년 베트남 전쟁에 가게 되었다. 이후 그는 멕시코 반정부 시위, 중동전쟁, 아프가니스탄 내전, 방글라데시 전쟁, 걸프전 등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전쟁의 참상을 폭로하며 인간의 잔인함과 어리석음을 증언한 기사는 세계인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팔라치 스타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터뷰 기자로서의 경력은 1954년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향하면서 시작됐다. 팔라치는 로마와 밀라노, 뉴욕에 머물며 할리우드 스타들과 영화계 인사들을 취재했으며, 상대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능숙한 인터뷰 역량을 드러냈다. 이후 그의 인터뷰 상대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확대되었다.
인디라 간디, 골다 메이어, 달라이 라마, 야세르 아라파트, 줄피카르 알리 부토, 빌리 브란트, 헨리 키신저, 레흐 바웬사, 덩샤오핑, 이란의 팔라비 국왕과 그의 정적 아야톨라 호메이니 등 수많은 정치인과 권력가, 유명인이 그와 인터뷰했고 거기서 나온 여러 에피소드는 큰 화제가 되었다. 그의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이었던 그리스의 혁명가이자 시인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도 처음에 인터뷰이로 만났다.
팔라치는 작가로서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취재 경험에서 나온 르포르타주와 자전적인 내용의 소설을 주로 썼다. 대표작 열두 권은 전 세계에서 2천만 부 넘게 팔렸으며, 특히 유산과 가정, 사랑 문제를 다룬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Lettera a un bambino mai nato』(1975), 파나굴리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집필한 『한 남자Un uomo』(1979), 레바논 전쟁을 배경으로 쓴 『인샬라Insciallah』(1990)가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9ㆍ11 테러 사건을 조명한 『분노와 자긍심La rabbia e l’orgoglio』(2009)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으며, 그가 죽고 2년 뒤에 출간된 미완성 소설 『버찌로 가득한 모자Un cappello pieno di ciliege』(2008)는 집필에 10년이 넘게 걸린 장편역사소설로 팔라치 가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책에는 팔라치의 성공담이나 역사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매우 사적이고 소소한 일화, 정치사회적인 이슈, 실존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 등도 실려 있어 흥미롭다. 유년기와 청소년기, 가정사와 가족, 여성의 현실, 일과 사랑, 두려움과 용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은둔과 고립, 창작의 고통, 병마와 죽음에 관한 고찰, 연민과 절망과 분노, 조국을 향한 사랑……. 담담하게 써 내려갔지만, 이야기 하나하나에 내면의 다양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를 읽다 보면 세상에 알려진, 강인하고 단호하고 엄격한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의 팔라치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의 이탈리아어판에 달린 부제는 ‘불편한 한 여자의 자화상’이다. 팔라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살았고 세상사에 무관심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껄끄럽고 거북한 존재로 비쳤을 것이다. 팔라치는 어떤 경우에는 침묵이 죄가 되고 말이 의무가 된다고 했으며, 허공에다 말하는 카산드라에 자신을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날카로운 말과 펜으로 진실을 폭로하고 역사를 증언한 투사이자 독설가였고, 이슈 메이커였다. 유명세는 팔라치를 신화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신화’라는 말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긍정적일지라도 대상의 본질을 흐리고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팔라치도 자신의 신화를 믿지 않는다고, 무엇보다 오해받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다. 그런 의미에서 팔라치가 직접 쓴 글로 꾸려진 이 책은 가장 진실한 그의 모습에 다가가는 안내서라고 하겠다.
김희정(이탈리아어 전문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