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2년 동안 예과에서 이런 저런 수업을 들었는데, 솔직히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다. 본과로 진급하면 시간이 없으니 예과 때 실컷 놀아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충실히 따랐던 터라 그때는 틈만 나면 영화 보고, 책 읽고, 음악 듣고, 노래 부르고,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빈둥거림의 시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냐 하면... 바로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산들을 올랐던 것이다. 등산을 잘하거나 즐긴다고 감히 말 할 수도 없지만 그때 나는 유명하다는 산들을 꽤 많이 올랐다.
고등학교 때까지 제대로 된 등산 한 번 하지 않다가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고등학교 선배들을 따라 지리산에 갔다. 지리산 종주가 나의 첫 산행이다. 마치 구름 속에서 산봉우리를 타고 넘듯 걸었던 그때의 느낌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지금 떠올려 보면 치악산을 오를 때 가장 큰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더 험한 산도 많지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치악산 등산로에는 굵은 돌들이 많아 발이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암벽타기 하듯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아래로 가파른 낭떠러지가 보였다. 그때 다리가 후들거렸던 체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해 겨울에는 설악산에 갔는데 폭설이 내려 산 아래 민박집에서 3박 4일을 갇혀 있어야만 했다. 지붕에 이를 정도로 눈이 쌓여 오도 가도 못 했다. 꼼짝 없이 좁은 민박집에 십여 명의 남자들이 모여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죽여야만 했다. 민박집에 갇혀 3일째 되던 날에는 배낭에 넣어간 쌀과 반찬마저 떨어졌다. 마지막 남았던 3분 짜장 몇 개로 십여 인분의 밥을 비벼 먹어야 했을 때, 선배의 밥은 새까맣고 내 밥은 회색이라는 걸 발견했을 때 느꼈던 배신감이란... (같이 갔던 선배들은 입만 열면 후배들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했었는데)
소백산(출처_ 영주시청)
지치고 기운 없고 우울할 때면 유독 소백산이 생각난다. 딱 한 번밖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마치 여러 번 가본 사람마냥 소백산의 광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산 정상에 그렇게 넓은 평지가 있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그리고 그곳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꽃들. 내가 그곳에 올랐을 때 꽃이 만발했었다. 깔딱 고개를 넘어서 산중턱에 이르렀을 때 짙은 회색의 꼬꾸라지듯 박혀 있는 고사목의 강한 인상도 잊을 수가 없다. 소백산을 어머니의 산이라고 하는 건, 죽은 나무도, 작은 꽃들도, 가파른 오르막뿐 아니라 넓은 평지도 산이 모두 품고 있어서일 것 같았다.
그렇게 올랐던 소백산에 딸려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으니... 그 당시 소백산 밑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산을 올라 오후에 내려와서 기차를 타고 밤 늦게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3~4시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이 갔던 선배가 역에서 조금 쉬었다가 아침에 버스 타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선배 2명과 나까지 해서 돈을 모으면 택시비 정도는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선배는 왜 굳이 기차역에서 아침을 기다려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자고 했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있다 보니 졸음도 밀려오고 다리도 아파서 역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서 잠시 눈을 붙이다가 집으로 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기차역에서 노숙을 했던 거다. 지금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거니와 어떤 이는 "왜 그렇게 지저분하게 바닥에 신문 깔고 잤느냐"라며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나름 그렇게 나를 혹사하며 여행하는 게 멋있다고도 생각했다. 사실 혹사도 아니다. 꼬질꼬질했을 뿐. 하지만 이런 경험이 낭만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요즘은 머리가 꽉 막혀 생각이 흐르지 않을 때면 언제나 우면산을 오른다. 오른다, 라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로 야트막한 산이지만, 그래도 그곳 정상인 소망탑까지 쉬지 않고 한달음에 도달하면 맑은 기운이 온 몸에 퍼진다. 아웃도어용 의자를 배낭에 넣어가서 그늘 아래 펼치고 앉아 풀과 나무와 구름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딱딱했던 뇌가 서서히 말랑말랑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다가도, 산과 나무와 함께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거다” 하고 머리에서 전등이 켜진다.
비록 현실에 발이 묶여 서울 남쪽의 작은 산에 오르지만, 그래도 그것이 내 정신을 깨우는 건 스무살의 산행 경험들 덕택이라고 믿고 있다. 긴 시간이 흐르고 내가 사는 공간은 달라졌지만 지금도 내 몸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산이 그리워지는 건 그때의 추억이 내 몸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몸으로 다시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가 나를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공간 속에서 내 마음이 움직였다면 "왜 그랬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자. 결핍, 욕망, 잠재력, 울분과 콤플렉스, 온갖 감정들이 마음에서 숨죽여 있다가 공간을 만나 제 소리를 내는 것일 테니까. 잃었던 동심일 수도, 주변을 의식하느라 묻어두고 살아야 했던 자아일 수도 있고, 무의식에 침잠해 있는 그림자가 마음 놓고 드러낼 장소를 만났다고 기지개를 펴는 것일지도. 내면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공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공간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맺기에 이런 감동을 느꼈는지, 이유를 찾아야 한다. 공간과 화학작용을 일으킨 감정이 깨운 나를 찾아가는 것이 나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니까.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공간은 삶에서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나의 노력, 나의 저항, 나의 지속으로 내가 쟁취한 것이다. 작은 발걸음, 꾸준한 노력으로 내가 얻어낸 것이다. 소유와는 다르다. 공간을 느끼는 것, 공간 속에 있는 건 모두 내 몸과 행동으로 얻어낸 것이다. 공간 속에 있다는 건, 내 존재를 확인 받는 것이다. _<일상의 지리학> 중에서
김병수(정신과의사)
정신과의사이고 몇 권의 책을 낸 저자다. 스트레스와 정서장애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진료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수 생활을 9년 했고 지금은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의 원장이다.
hsryutt
2018.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