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나는 서로에게 자유입니다
고양이는 고양이로서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니까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냥이에게 그런 마음으로 대합니다. 너는 너의 자유의지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다, 하고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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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스님까지 고양이를!’ 스님과 길고양이의 겨울 한 철 이야기를 담은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가 출간되었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다. ‘고양이 나만 없어!’라는 유행어가 돌 만큼 고양이가 대세라지만 수행하는 스님까지 고양이를 키우다니! 살짝 꼬인 마음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스님과 고양이의 조합은 특별했다. 스님은 난생 처음 고양이 사료를 사고 잠자리를 마련하고 상처를 치료해주었고, 고양이는 스님에게 아침인사를 하고 돌아올 때를 기다려주었다. 독(獨)대 독(獨),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바라보고 기다리면서, 둘의 관계는 무르익었다.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는 ‘고양이가 스님에게 가르쳐 준 것들’로 갈음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혼자’ 살아가야 하는 삶이 익숙해지는 시대에 이 책은 홀로움의 미덕, 관계 맺기의 비결, 성숙한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고양이를 통해 우리는 종교란 잘 살기 위한 수단이며, 그 믿음은 교회나 절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따듯한 커피를 곁에 두고 후루룩 좔좔 읽으면서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어른을 위한 동화가 아닐까. 저자 보경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에도 걸림 없는 살아가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라고 들었습니다. 정신 수행하는 스님에게 고양이는 어떤 의미입니까?

 

수행의 초기에는 걸리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더 깊은 단계에서는 걸림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기꺼이 문제의 본질 속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지요. 엄마는 귀신이 나타나면 귀신 속으로 뛰어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귀신이 사라질 거라면서요. 그러자 아이가 말했어요. “그 귀신아이도 엄마귀신이 사람이 뛰어들 땐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지 않았을까요?” 나에게 방법이 있으면 상대에겐들 방법이 없겠습니까? 순간순간이 문제해결의 연속입니다. 삶이란 게 그래요. 걸림 없이 산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걸림은 극복의 문제지 귀찮다고 생각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봐요. 물론 고양이가 수행에 ‘걸림’이 되지 않겠냐는 의미의 질문이겠지요. 한 생각 차이라고 봅니다. 거치적거리게 보면 거치적거리는 것이고 이타행으로 보면 이타행이 되지 않을까요? 정진은 정진이고 고양이는 고양이입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고양이로서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니까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냥이에게 그런 마음으로 대합니다. 너는 너의 자유의지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다, 하고요.

 


냥이와 나는 서로에게 자유입니다.
 
아무래도 동물을 키우다보면 신경 쓸 거리가 굉장히 많습니다. 좋을 때는 한없이 좋고 사랑스럽지만 귀찮거나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관계의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스님은 어떻게 마음 관리를 하시는지요?
 
아주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저도 이 부분을 재미있게 생각했거든요. 제가 고양이와 지내보면서 느낀 특이한 점은 고양이는 결코 화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든 동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역을 사수하기 위한 결투는 하지만 욕구불만 같은 짜증이나 화는 내지 않아요. 굶주림이나 추위를 해결하기 위해 골몰할 뿐이지 누구를 탓할 만큼 생존환경이 호락호락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고양이에게 화를 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왜 그럴까요. 바로 사랑의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교에서 자비는 사랑의 마음과 연민의 마음을 함께 의미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그 무엇을 대하더라도 친절과 배려의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의 감정을 극복하려면 우선 자신이 항상 평정심을 갖고 균형감각을 길러야 합니다. 감정이 일어난 후에 다스리려고 하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이미 폭발한 수류탄과 같으니까 수습이 어려워요. 답은 간단합니다. 감정은 미리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로 내공이 쌓이면 이 힘이 균형감을 갖는 방향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저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으려고 깊은 노력을 합니다.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도시 사찰 주지 소임을 마치고 시골 사찰로 내려가신 뒤 ‘걷기와 읽기’로 일상을 단단히 시작한다고, 책에 쓰셨습니다. 스님만의 ‘걷기와 읽기’ 노하우를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철칙입니다. 걷기는 타고난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몸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지요. 우리는 몸을 너무 혹사해요. 적당한 운동과 알맞은 식생활을 통한 올바른 섭생, 몸을 청결히 하고 컨디션을 잘 관리하면 육신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몸을 잘 관리해줘서 고마워요’하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립니다. ‘걷는 것은 여섯 번째 장기’라는 말이 있어요. 오장육부가 있는데, 걷는 것은 또 하나의 장기가 된다고 하니 적당한 운동은 매우 유익하고 소중한 습관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읽기’는 곧 독서가 되겠지요. 배우는 즐거움을 안다면 독서를 멈추지 못합니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애초에 배움에 대한 의지가 없지요. 교육은 곧 계몽이고 계몽은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우면서도 정작 고양이를 알려하지는 않는 듯이 보여요. 모르는 것은 배워야하고 배우려면 책을 봐야 하잖아요. “학문은 법칙을 만든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말인데,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나름의 법칙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 법칙은 학문으로 체계화되어 있고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만약 동물들이 글을 쓴다면 그 첫 주자는 고양이가 아닐까?’ 글을 쓰려면 마음이 고요해야 하는데, 고양이는 그런 자질이 있어요. 공부를 해가면서 동물을 키우면 더 흥미로울 것입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밑줄을 많이 긋게 된다고 합니다. 스님이 이 책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해 주십시오.
 
“그동안 나, 참, 많이 힘들었답니다.”

제 자신이 써놓고 좋아한다고 하니 좀 머쓱하지만, 주인 잃고 살아가는 야지의 동물들은 모두 이런 심정이 아닐까 해서요.
 
“숲은 백로의 바람에 시들고 꽃은 청명의 비에 피도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를 표현한 말이니까 더 없이 좋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진리는 시간의 팔에 기대어 절뚝거리며 언제나 맨 마지막에 온다.”

삶의 은근한 끈기와 집념을 말한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이 말이 또한 좋습니다.
 
책을 쓰면서 ‘불교가 엄숙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떤 의미인지요? 또 불교에서는 삶을 고(苦)로 보는데, 삶의 고단함 속에서 즐거움, 기쁨을 어떻게 조화롭게 가꿀 수 있을까요?
 
자, 장미꽃 한 송이가 피어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바람이 불어도 그렇고 해와 달이 교차해도 그렇습니다. 자연만물의 법칙은 자연스러울 뿐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아가고 마음을 깨달아간다면 보다 더 자연스러운 만물의 법칙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유를 느낄 것입니다. 종교의 엄숙함은 교리적인 형식을 나타내기 위함이고 정작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생명 본연의 존귀함과 행복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삶의 근간을 ‘고’로 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물의 큰 속성은 무상하여 변하기 때문에 생겨나고 소멸하기를 반복합니다. 이것이 중생에게는 괴로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고 죽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괴로움이 아니라 그런 행위를 보는 우리의 마음이 괴로움과 고통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그런 생각과 무지를 극복하면 얻어집니다. 태양이 뜨면 열이라는 에너지를 얻는 것이지요. 삶은 누구에게나 고단한 것입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자신이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지요. 일상에서 이타행을 실행하는 것도 그 중의 한 덕목이 되겠습니다.
 
스님은 수행자로서 혼자 살기를 선택하셨습니다. 고양이도 혼자 살아가지요. 현대인들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점점 익숙해지고, 또 혼자 견뎌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출가 수행자라고 해서 혼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지요.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우리 삶의 방향입니다. 현대인들의 소외와 고독은 사회적인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개개인이 인간관계의 불편함을 원치 않는 것도 한 요인이 될 것입니다. 옛날에는 가족이 삶의 중요한 근간이지만, 지금은 직업이나 개인의 취향에 따른 사회활동에서 오는 만족감이 그 위치를 대신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유산을 후대에 남김으로서 사회에 공헌을 할 수 있고, 이런 행위 속에서 생명은 영속성을 획득합니다. 자기 자신만 보고 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안목이 좁은 것이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세상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나는 남을 위해 한 일이 뭐가 있지?’ 이런 생각을 해본다면 보다 분발하여 의욕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송광사에서 고양이를 만난 지 두 해가 지나고 있는데, 요즘 냥이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습니까?
 
처음 왔을 때에 비해 의젓하고 안정감이 있습니다. 탑전이 자신의 왕국이 되었으니까요. 지난여름 이후로 쥐는 전혀 잡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고 다닙니다. 큰절에서 넘어오는 어린 자매 고양이가 냥이 여친이 되었습니다. 그 고양이들은 사람에게는 가까이 오지 않지만 사료는 몰래 와서 먹기 때문에 그들 몫까지 준비해줍니다. 살이 좀 쪄서 걱정이긴 하지만 내 눈엔 여전히 예뻐 보입니다. 저를 너무 잘 따라다녀서 ‘개냥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소리를 달고 다닐 정도로 많이 친해지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라는 말을 하는데 책이 나온 이후로 냥이가 이 인사를 독차지 합니다. 그래서 나도 냥이를 소개할 때는 힘주어 말합니다.


“우리 냥이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답니다!”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보경 저 | 불광출판사
겨울 한철, 스님이 고양이를 바라보고 고양이가 스님을 바라본다. 삶은 혼자도 좋고 둘이어도 좋지만, 함께하는 만큼 다른 무엇을 느끼게 되는 것, 그 내면의 소소한 기록이 담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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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